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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BL이 종료되면서 서서히 FA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시즌 FA 시작은 5월 1일부터지만, 벌써부터 KBL판 에어컨 리그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KBL의 과거 FA들은 어땠을까? 바스켓코리아는 매해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한 선수를 되짚어보려 한다.
FA 시작 후 두 번째 해,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한 선수는 양희승이었다. 그의 FA 이전과 이후 활약에 대해 알아봤다.
[2002년 최대 인상률을 기록한 양희승]
3년 재계약, 1억 7백만원 → 1억 6천만원, 인상률 50%
2001~2002 시즌 기록
54경기 평균 30분 13초 출전 15.8점 2.5리바운드 1.8어시스트 야투율 51.3%
2001~2002 시즌 기록
51경기 평균 31분 52초 출전 15.8점 2.9리바운드 1.9어시스트 야투율 56.2%
고려대를 졸업한 뒤 LG에 입단한 양희승은 2000년 여름 대전 현대(현 전주 KCC)로 트레이드됐다. 그는 계속된 팀과의 마찰로 인해 조성원과 유니폼을 바꿔입었다. 이상민, 추승균과 트리오를 이룬 양희승은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2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2002년 5월 FA 시장이 열렸다. 해당 시즌은 KBL FA 역사에 있어 서장훈, 이상민, 조성원, 문경은, 주희정, 추승균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모두 시장에 나왔다. 서장훈은 SK에서 삼성으로 적을 옮겼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소속팀과 재계약을 했다.
스타들이 즐비했던 FA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던 선수는 따로 있었다. 바로 양희승이었다. 그는 SBS로 이적을 선택했고, 1억 천만원이었던 연봉이 2억 6천만원까지 올랐다. 136%라는 기록적인 인상률이었다. 이는 2010년 표명일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FA 대박 첫 해인 2002-2003시즌 양희승은 SBS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득점력은 수준급이었고, 슈팅 정확도도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그를 받쳐줄 선수가 없었다. 이로 인해 팀 성적은 8위로 쳐졌다.
다음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양희승은 여전히 15점에 가까운 평균 득점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그를 받쳐줄 선수가 없었다. SBS는 9위로 한 단계 더 내려앉았다.
2004-2005 시즌, 드디어 양희승은 지원군을 얻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성철(현 원주 DB 코치)이었다. 양희승과 김성철 쌍포는 팀을 중위권으로 이끌었다. 시즌 막바지에 단테 존스도 합류하면서 SBS는 3위로 정규리그를 끝냈다. 그러나 4강 플레이오프에서 KCC에게 막히면서 챔프전 진출 꿈은 좌절됐다.
이후에도 양희승은 평균 15점 정도를 기록하며 팀 공격을 주도했다. 하지만 SBS는 우승은 물론이고, 챔프전과도 인연이 없었다.
우승은 없었지만, 양희승의 FA만큼은 모범 사례였다. 5년의 계약 기간 동안 평균 득점은 14.9점이었다. 같은 기간 135경기 이상 뛴 선수들 중에는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꾸준한 활약을 보인 양희승은 팀에서 가장 믿을 만한 선수였다.
아쉽게도 양희승과 SBS의 인연은 한 번의 계약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양희승은 2007년 추일승 감독의 부산 KTF로 향했다. 그러나 노쇠화 때문인지 활약이 저조했고, 데뷔 후 줄곧 지켰던 평균 10점대의 벽도 허물어졌다. 결국 그는 2시즌 만에 웨이버 공시되면서 쓸쓸히 은퇴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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