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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BL이 종료되면서 서서히 FA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정해진 것이 없지만, 벌써부터 KBL판 에어컨 리그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KBL의 과거 FA들은 어땠을까? 바스켓코리아는 매해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한 선수를 되짚어보려 한다.
FA가 시작된 첫 해인 2001년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한 선수는 오성식이었다. 그의 FA 이전과 이후 활약에 대해 알아봤다.
[2001년 최대 인상률을 기록한 오성식]
3년 재계약, 1억 7백만원 → 1억 6천만원, 인상률 50%
2000~2001 시즌 기록
45경기 평균 20분 출전 5.5점 4.8어시스트 2.2리바운드 야투율 55.8%
2001~2002 시즌 기록
50경기 평균 16분 52초 출전 5.6점 3.1어시스트 1.5리바운드 야투율 56.2%
부산 중앙고는 동아고와 쌍벽을 이루는 경남권 농구 명문 학교이다. 추승균 전 KCC 감독과 박훈근 삼성 코치, 강병현, 천기범 등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시작은 오성식이었다. 고교 시절 전국에서 1,2등을 다퉜던 오성식은 중앙고의 위치를 한 단계 높였다.
이후 오성식은 연세대를 거쳐 상무, SBS에 농구대잔치 시기를 보냈다. 프로 출범 직후에는 SBS와 한 시즌을 같이 한 뒤 LG로 이적했다.
김태환 감독 체제에 합류한 오성식은 조성원, 조우현, 에릭 이버츠 등과 함께 ‘닥공 농구’의 중심에서 활약했다. 오성식은 포인트가드 역할을 수행하며 LG의 공격농구를 지휘했다. 특히 현재까지 회자되는 2000-2001 시즌 평균 103.3득점은 이때 만들어진 기록이다.
당시 같이 선수 생활을 했던 조우현은 “어렸을 때 보았던 대단한 선수와 같이 뛸 수 있어 좋았다. 노장에 가까운 시기였으나 여전히 힘이 좋았다. 돌파, 패스, 슛 등도 이전보다는 아니어도 충분히 통할 정도의 기량이었다”며 오성식을 회상했다.
2000-2001 시즌 오성식은 엄청난 기록을 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20분이라는 출전 시간을 생각하면 5.5점 4.8어시스트는 분명 준수함 이상의 스탰이었다.
오성식은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FA 계약에서 대박을 쳤다. 1억 7백만원에서 50%가 인상된 1억 6천원에 LG와 도장을 찍었다. 5천 3백만원 오른 금액이었다. 인상률은 현재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치이지만, 당시에는 FA라도 연봉이 줄어드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때문에 오성식은 FA 첫 해 가장 높은 인상률을 올린 선수로 기록 되었다.
하지만 오성식은 FA 다음 시즌 기록이 하락했다. 줄어든 출전 시간과 함께 어시스트 수치도 떨어졌다.
이는 김태환 감독의 운용 때문이었다. 그는 공격적인 농구를 좋아했던 탓에 조우현에게 포인트 가드 역할을 맡기는 것을 선호했다. 김 감독이 원하는 빠른 템포의 공수전환은 오성식과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팀 내에서 위치를 잃은 오성식은 최희암 감독이 이끌던 모비스로 트레이드됐다. 하지만 모비스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고, 결국 2003-2004 시즌 서울 SK에서 선수 생활을 끝으로 은퇴했다. FA 원년 대박을 쓴 인물의 아쉬운 ‘마지막’이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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