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KBL이 지난 1일부터 4주 동안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을 계속 주시할 계획이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을 수립했고, 대처법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KBL이 당분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KBL 경기 현장을 갈 수 없고,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사실, 코로나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적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시즌이 재개될 때까지, KBL 역대 MVP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번에 이야기할 선수는 2011~2012 시즌의 오세근(안양 KGC인삼공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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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근, 2011~2012 시즌 기록]
1. 정규리그 : 52경기 평균 31분 43초, 15.0점 8.1리바운드 1.5어시스트 1.5스틸 1.3블록슛
- 2점슛 성공률 : 약 55.8% (경기당 약 6.3/11.3)
- 자유투 성공률 : 약 74.5% (경기당 약 2.3/3.1)
* 국내 선수 중 경기당 페인트 존 득점 성공 2위 (5.5)
* 국내 선수 중 리바운드 3위 & 블록슛 3위
* 국내 선수 중 득점 5위
2. 플레이오프(4강) : 4경기 평균 34분 5초, 13.8점 9.0리바운드 2.5어시스트 1.7블록슛
- 2점슛 성공률 : 약 59.2% (경기당 약 7.3/12.3)
- 자유투 성공률 : 약 62.5% (경기당 약 1.3/2.0)
* 4강 PO 출전 국내 선수 중 경기당 페인트 존 득점 성공 1위 (5.5)
* 4강 PO 출전 국내 선수 중 리바운드 1위
* 4강 PO 출전 국내 선수 중 득점 2위
3. 챔피언 결정전 : 6경기 36분 39초, 17.5점 5.3리바운드 2.2어시스트 1.0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56.0% (경기당 약 7.8/14.0)
- 자유투 성공률 : 약 61.1% (경기당 약 1.8/3.0)
* 챔피언 결정전 출전 국내 선수 중 득점 1위
* 챔피언 결정전 출전 선수 중 경기당 페인트 존 득점 성공 1위 (4.8)
* 챔피언 결정전 출전 국내 선수 중 리바운드 3위
KGC인삼공사는 리빌딩 작업을 착실히 했다. 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양희종을 얻었고, 2010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권 2장을 갖고 있었다. 2개의 지명권이 1순위와 2순위로 나오는 로또급 대박을 맞았다. 박찬희(인천 전자랜드)와 이정현(전주 KCC)을 뽑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KGC인삼공사의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KGC인삼공사는 주전 포인트가드였던 주희정(고려대 감독)을 서울 SK로 보내고, 군에 있던 김태술(원주 DB)을 데리고 왔다. 젊은 김태술한테 활동량과 센스 있는 플레이를 원했다.
KGC인삼공사는 1~3번 포지션과 외국선수 라인업을 어느 정도 완성했다. 문제는 국내 빅맨의 부재. 이는 KGC인삼공사 리빌딩의 마지막 퍼즐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퍼즐도 맞춰졌다. KGC인삼공사가 2011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었고, 한국 농구를 이끌 빅맨인 오세근을 지명했다. KGC인삼공사의 리빌딩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KGC인삼공사는 ‘김태술-박찬희-양희종-오세근’을 주전 라인업으로 활용했다. 백업 멤버도 탄탄했다. 김성철(원주 DB 코치)-은희석(연세대 감독)-김일두-이정현 등이 벤치를 지킬 정도였다. KGC인삼공사는 순식간에 강팀으로 거듭났다.
KGC인삼공사는 36승 18패로 정규리그 2위를 기록했다. 원주 동부(현 원주 DB)는 당시 정규리그 최다승(44승)을 기록할 정도로 강했다. KGC인삼공사는 동부와 상대 전적에서 1승 5패로 밀렸다. KGC인삼공사는 플레이오프에서 반전을 노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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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근, 2011~2012 시즌 챔피언 결정전 일자별 기록]
- 1차전 : 38분 6초, 19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 -> KGC인삼공사 패
- 2차전 : 36분 54초, 19점(2점 : 8/13) 5리바운드(공격 5) 3어시스트 1스틸 1블록슛 -> KGC인삼공사 승
- 3차전 : 36분 56초, 16점(2점 : 8/13) 7리바운드(공격 2) 2블록슛 1어시스트 1스틸 -> KGC인삼공사 패
- 4차전 : 32분 10초, 23점(2점 : 11/16) 6리바운드 2어시스트 1스틸 -> KGC인삼공사 승
- 5차전 : 35분 55초, 16점(2점 : 7/12) 9리바운드(공격 2) 3어시스트 2스틸 -> KGC인삼공사 승
- 6차전 : 39분 52초, 12점 2리바운드(공격 1) 2어시스트 1스틸 -> KGC인삼공사 승
오세근은 신인이었다. 그러나 오세근은 웬만한 선배들보다 훨씬 완성된 선수였다.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포스트업에 이은 골밑 공격과 미드-레인지 점퍼, 상대 공격을 예측하는 높은 수비 이해도와 탄탄한 박스 아웃 등 빅맨으로서 지녀야 할 모든 것을 갖췄다. 팀의 정규리그 2위를 견인한 선수였다.
오세근이 활약한 덕분에, KGC인삼공사는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KGC인삼공사의 4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부산 kt. KGC인삼공사는 첫 경기를 51-54로 패했지만, 그 후 3경기를 내리 이겼다. 상대 전적에서 열세였던 동부를 최후의 무대에서 만났다.
KGC인삼공사는 1차전에서 75-80으로 패했다. 하지만 오세근은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큰 무대였지만, 긴장을 하지 않은 듯했다. 2차전에서는 양 팀 선수 중 최다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냈고, 2차 공격 기회 창출로 동료들에게 힘을 실었다. KGC인삼공사는 74-71로 역전승했다. 1승 1패.
KGC인삼공사는 3차전에서 79-80으로 패했다. 하지만 4차전을 잡았다. 오세근이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고, 양 팀 선수 중 가장 많은 2점슛을 성공했다. 특히, 후반전에만 16점을 퍼부으며, KGC인삼공사의 73-70 승리를 주도했다.
마지막 2경기가 중요했다. 한 경기만 밀려도, KGC인삼공사가 답답할 수 있는 상황. 오세근은 가장 중요한 두 경기에서 존재감을 뽐냈다. 5차전에서는 더블더블에 가까운 활약으로 팀의 승리(80-72)를 이끌었고, 6차전에서는 4쿼터에만 7점을 넣으며 KGC인삼공사의 역전승(66-64)을 만들었다. KGC인삼공사는 4승 2패로 창단 첫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했다.
공격과 수비, 리바운드에서 모두 활약한 오세근은 플레이오프 MVP가 됐다. KBL 역대 신인 선수 중 최초의 기록. 물론, 신인왕 역시 오세근의 차지였다. 오세근은 데뷔 시즌부터 많은 기쁨을 누렸다.
오세근은 “동부가 당시 워낙 강팀이었다. 우리 팀이 동부한테 한 번 밖에 못 이겨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렇지만 젊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어서, 패기로 부딪혀보자는 마음이 컸다. 우리가 이길 거라는 평가가 거의 없었는데, 그런 걸 뒤집고 우승해서 좋은 기억이 있다”며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그리고 “신인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도 부딪혀보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대선배인 (김)주성이형과도 그런 마음으로 대결했던 것 같다. 져도 본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웃음)”며 ‘겁없고 당당한 움직임’을 챔피언 결정전에서의 활약 이유로 꼽았다.
오세근의 팀 선배였던 김성철 DB 코치는 “대학 때부터 주목 받는 빅맨이었다. 프로에 와서 영향력을 바로 행사할 수 있는 선수였다. 체격 조건이 좋은 데다가, 두뇌와 센스로 하는 플레이를 많이 했다. 체격 조건에 비해, 힘을 쓰는 플레이보다 방향 전환이나 머리를 쓰는 플레이를 많이 했다”며 오세근의 2011~2012 시즌 활약 이유를 말했다.
이어, “크리스 다니엘스가 대체 외국선수로 오면서, (오)세근이가 부담을 덜었다. 동부랑 만나면 세근이가 혼자 하기 힘들었는데, 다니엘스의 가세가 세근이를 힘내게 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는 한 팀과의 장기 레이스인데, 세근이가 몸이 좋을 때라 그 레이스를 잘 버텼다”며 플레이오프에서 더욱 활약했던 이유를 덧붙였다.
2011~2012 시즌 정규리그 MVP이자 동부산성의 중심축이었던 윤호영(원주 DB)도 “(오)세근이가 원래 센스가 좋은 데다가, 그 때는 워낙 활동량이 많고 활동 범위도 넓었다. 코트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선수였다”며 오세근의 존재감을 높이 말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오세근을 만났던 박상오(고양 오리온) 역시 “신인이었다고 하지만, 대학교 때 이미 완성된 선수였다. 당시 (오)세근이를 뽑는 팀은 10년은 갈 거라는 말도 있었다. 실제로 그게 맞아가는 상황이 아닌가”라며 오세근을 범상치 않은 신인으로 이야기했다.
오세근은 부상으로 2012~2013 시즌에 나오지 못했다. 2013~2014 시즌에 복귀한 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대표팀의 일원으로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선사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영광의 시기를 누린다. 그 시기는 2016~2017이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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