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 역대 MVP] ‘늦깎이 KBL 데뷔’ 박상오, MVP 반열에 올라서다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0-03-19 06: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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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KBL이 지난 1일부터 4주 동안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을 계속 주시할 계획이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을 수립했고, 대처법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KBL이 당분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KBL 경기 현장을 갈 수 없고,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사실, 코로나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적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시즌이 재개될 때까지, KBL 역대 MVP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번에 이야기할 선수는 2010~2011 시즌의 박상오(현 고양 오리온)다.


[박상오, 2010~2011 시즌 기록]
1. 정규리그 : 54경기 평균 31분 24초, 14.9점 5.1리바운드 1.5어시스트 1.0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58.1% (경기당 약 4.8/8.3)
- 3점슛 성공률 : 약 40.0% (경기당 약 0.7/1.7)

* kt 국내 선수 중 평균 득점 & 평균 리바운드 1위
2. 플레이오프(4강) : 4경기 평균 24분 12초, 8.0점 2.5리바운드 1.0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58.8% (경기당 약 2.5/4.3)
- 3점슛 성공률 : 약 66.7% (경기당 약 0.5/0.8)


박상오는 1981년생이다. 동기로는 양동근(울산 현대모비스)-김도수(고양 오리온 코치) 등이 있다. 원래 2004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해야 했다. 그러나 박상오는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중앙대 시절 김주성(원주 DB 코치)-송영진(휘문고 코치) 등 쟁쟁한 선배들에 가려, 출전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결국 현역병으로 가는 선택을 했고, 제대 후 중앙대 농구부로 복귀했다. 프로 진출 시기가 다른 동기보다 늦을 수밖에 없었다.


힘겹게 복귀한 후, 더욱 절실히 농구했다. 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전체 5순위로 부산 KTF의 부름을 받았다. 자신 있고 전투적인 마인드, 골밑과 외곽을 넘나드는 플레이로 팀에 필요한 선수로 거듭났다.


2009~2010 시즌. 전창진 감독이 새롭게 부임한 후, 박상오는 뛰어난 동료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냈다. 송영진-김도수-김영환(현 부산 kt) 등 쟁쟁한 포워드와 출전 시간을 나눠 뛰었지만, 박상오는 코트에서 제 역할을 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전 경기에 나섰고, 평균 17분 12초 동안 8.0점 2.7리바운드 1.2어시스트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2010~2011 시즌. 박상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이 박상오에게 호재로 다가왔다. 두 배 가까이 출전 시간을 얻은 박상오는 더욱 자신 있게 뛰었다. 코트에 굶주린 듯, 적극적으로 몸을 날렸다.


kt는 창단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1위(41승 13패)를 차지했다. 2009~2010 시즌에 이어, 두 시즌 연속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09~2010 4강 플레이오프(vs. 전주 KCC, 1승 3패)의 실패를 원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챔피언 결정전을 원했다.


[박상오, 2010~2011 시즌 4강 플레이오프 일자별 기록]
- 1차전 : 11분 33초, 2스틸 1블록슛 -> kt 승
- 2차전 : 33분 51초, 9점(2점 : 3/5) 3리바운드(공격 1) 1어시스트 1스틸 -> kt 패
- 3차전 : 30분, 16점(2점 : 5/6) 6리바운드(공격 1) 1스틸 -> kt 패
- 4차전 : 21분 23초, 7점 1리바운드(공격) 1어시스트 -> kt 패


kt의 4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원주 동부. 김주성(현 원주 DB 코치)-윤호영(현 원주 DB)-로드 벤슨을 주축으로, ‘동부산성’이라는 별명을 구축한 팀. 확실한 빅맨이 없는 kt에 껄끄러운 상대 중 하나였다.


kt는 핵심 외국선수인 제스퍼 존슨을 부상으로 잃었다. 홀로 남은 찰스 로드(현 전주 KCC)에 많은 걸 의존했다. 하지만 로드 혼자서는 힘들었다. 국내 포워드 라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국내 포워드의 물량도 부족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 뛸 수 있는 핵심 포워드는 송영진과 박상오 밖에 없었다. kt가 1차전에서는 73-68로 이겼지만, 로드와 송영진이 40분을 소화했다. 로드와 송영진의 체력 부담이 컸다. 이는 kt의 불안 요소였다.


박상오는 1차전에서 10분 남짓 뛰었다. kt는 박상오의 분발을 원했다. 그러나 박상오도 쉽지 않았다. 김주성-윤호영-벤슨이 버틴 동부 페인트 존 수비는 빈틈이 없었기 때문. kt는 2차전을 70-75로 내줬다.


그리고 3차전. 승부의 분수령이었다. 박상오는 더욱 집중했다.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kt는 벤슨과 김주성한테 각각 22점 8리바운드와 12점 8어시스트 6리바운드를 내줬다. kt는 57-58로 졌다. 석패였기에, kt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4차전. kt는 흔들렸다. 1쿼터부터 18-29로 밀렸다. 찰스 로드가 37점 15리바운드로 분투했지만, kt는 결국 한계를 보였다. 또 한 번 4강 플레이오프에서 무릎을 꿇었다. 박상오의 도전도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박상오는 2010~2011 시즌 정규리그 MVP가 됐다. kt의 첫 정규리그 1위를 이끈 공이 컸다. 박상오는 동기들보다 늦게 프로에 데뷔했지만, ‘KBL 최고 선수’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박상오는 “외국선수가 1명이 뛰었고, 부상자가 많았다. 그래서 출전 기회가 많았다. 출전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수비자 3초룰이 있어서, 나 같은 장신 포워드한테 유리했던 것 같다”며 2010~2011 시즌에 잘 풀렸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 팀은 A팀과 B팀으로 나눠질 정도로 탄탄한 선수층을 자랑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멤버가 좋은 팀으로 인식됐다. 우리 팀에 부상자가 없었다면, 식스맨 역할을 했을 거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코트에 나가면 잘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런 마음을 먹고, 코트에 나간 것도 좋은 결과로 나온 것 같다”며 또 하나의 이유를 ‘마음가짐’으로 덧붙였다.


박상오는 2011~2012 시즌 종료 후 서울 SK로 이적했다. 2012~2013 시즌 SK에 KBL 역대 정규리그 최다승 타이 기록(44승)을 안겼고, 해당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도 나섰다. 2012~2013 시즌부터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를 밟았다.


2015~2016 시즌부터 친정 팀인 kt에 돌아왔다. 세 시즌 동안 kt에서 뛰었다. 그리고 2018~2019 시즌부터 고양 오리온 소속으로 코트를 밟고 있다. 팀의 최고참으로서 궂은 일을 자처하고 있다. 코트에 나서는 시간은 짧지만, 시간 대비 뛰어난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 가끔은 2010~2011을 기억하게 할 정도로, 뛰어난 득점력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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