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KBL이 지난 1일부터 4주 동안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을 계속 주시할 계획이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을 수립했고, 대처법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KBL이 당분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KBL 경기 현장을 갈 수 없고,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사실, 코로나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적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시즌이 재개될 때까지, KBL 역대 MVP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번에 이야기할 선수는 2008~2009 시즌의 추승균(전 KCC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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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승균, 2008~2009 시즌 기록]
1. 정규리그 : 54경기 평균 31분 59초, 13.0점 4.1어시스트 1.9리바운드
- 2점슛 성공률 : 약 51.8% (경기당 약 3.4/6.6)
- 3점슛 성공률 : 약 41.6% (경기당 약 1.3/3.2)
2. 플레이오프(6강+4강) : 10경기 평균 35분 28초, 17.0점 3.3어시스트 2.1리바운드
- 2점슛 성공률 : 약 57.7% (경기당 약 4.1/7.1)
- 3점슛 성공률 : 약 43.6% (경기당 약 1.7/3.9)
3. 챔피언 결정전 : 7경기 37분 25초, 14.6점 2.5리바운드 1.8어시스트
- 2점슛 성공률 : 약 46.9% (경기당 약 3.3/7.0)
- 3점슛 성공률 : 약 41.7% (경기당 약 1.4/3.4)
* 챔피언 결정전 출전 국내 선수 중 득점 2위 (1위 : 하승진, 14.9점)
* 챔피언 결정전 출전 선수 중 어시스트 2위 (1위 : 강혁, 5.0개)
추승균은 이상민(서울 삼성 감독)-조성원(명지대 감독)과 대전 현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현대가 연고지와 팀명을 바꾼 후에도, 이조추 라인은 KCC에 플레이오프 우승을 선사했다. 이조추 라인은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다고 했는가. 조성원은 2005~2006 시즌 이후 은퇴했고, 이상민은 2007~2008 시즌 서울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추승균 혼자 KCC에 남았다. 추승균의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KCC는 2007~2008 시즌 자유계약 신분이 된 서장훈을 영입했고, 2008~2009 시즌 전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하승진을 선발했다. KCC는 순식간에 우승후보로 평가받았다. 추승균 역시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하지만 서장훈과 하승진이 공존하기 어려웠다. 높이는 압도적이었지만, 스피드가 문제였다. KCC 경기력에 기복이 있었다. KCC는 결국 서장훈을 인천 전자랜드로 보내고, 전자랜드에 있던 강병현(창원 LG)을 데리고 왔다.
KCC는 시즌 중반 8연패에 빠졌다. 9위까지 떨어졌다. 희망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연패가 줄고, 연승이 늘었다. 새롭게 짜여진 멤버가 힘을 발휘한 것. KCC는 정규리그 3위(31승 23패)로 플레이오프에 나섰다.
추승균은 “정규리그 초반에 좋지 않았다. 9위까지 하면서 힘든 상황이 있었다. (서)장훈이와 (강)병현이가 맞트레이드되면서, 시스템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런 요인과 어린 선수들이 잘 따라와줘서, 마지막에 3위를 할 수 있었다”며 후반 상승세를 보인 이유를 설명했다. 추승균도 플레이오프 모드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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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승균, 2008~2009 시즌 챔피언 결정전 일자별 기록]
- 1차전 : 32분 45초, 13점 4어시스트 2리바운드 1스틸 -> KCC 패
- 2차전 : 40분, 21점(3점 : 2/3) 7어시스트 3리바운드 1스틸 -> KCC 승
- 3차전 : 38분 31초, 10점 7어시스트 3리바운드 1스틸 -> KCC 승
- 4차전 : 44분 41초, 19점(3점 : 2/4) 4리바운드(공격 1) 3어시스트 1스틸 -> KCC 승
- 5차전 : 40분, 7점 2어시스트 1리바운드 1스틸 -> KCC 패
- 6차전 : 29분 20초, 8점 2어시스트 -> KCC 패
- 7차전 : 36분 36초, 24점(2점 : 6/8, 3점 : 2/4) 3어시스트 2리바운드 1스틸 -> KCC 승
단기전. 경험 많은 팀이 유리하다. 한 팀과 계속 맞붙기에, 서로의 약점을 잘 공략해야 하는 플레이오프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하고 리더십 뛰어난 선수가 있는 팀이 플레이오프에 유리하다.
추승균은 KCC에 그런 존재였다. 한국 나이로 36살이었지만, 체력-기량-강인한 멘탈-리더십 등 모든 것을 갖췄다. 특히, 강병현과 하승진 등 어린 선수들의 멘토가 됐고, 임재현과 함께 마이카 브랜드-칼 미첼 두 외국선수를 잘 조율했다.
KCC는 6강 플레이오프부터 치렀다. 상대는 서장훈이 있는 전자랜드. 뭔가 미묘한 관계였기에, 두 팀의 경기는 치열했다. KCC는 2차전과 3차전을 내줬지만, 1차전과 4차전을 따냈다. 마지막 승부에서 95-88로 전자랜드를 이겼다. 추승균은 5차전에서 팀 내 최다인 28점을 퍼부었고, KCC를 4강 플레이오프로 올렸다.
KCC의 4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원주 동부. 김주성(원주 DB 코치)-표명일(양정고 코치)-이광재(상무 코치)-웬델 화이트-크리스 다니엘스로 이뤄진 빈틈 없는 팀. KCC는 또 한 번 접전을 펼쳤다. 다시 한 번 5차전까지 갔다. KCC는 5차전에서 87-64로 완승. 챔피언 결정전으로 향했다. 4년 만의 챔프전이었다.
그러나 불안 요소가 너무 많았다. KCC가 6강 플레이오프 5경기와 4강 플레이오프 5경기를 꽉꽉 채운 반면, 상대인 서울 삼성은 6강 플레이오프와 4강 플레이오프 합쳐 8경기만 치렀기 때문. KCC가 체력 면에서 불리했다.
추승균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정규리그 전 경기 출전에 플레이오프 전 경기 출전. 짧지 않은 출전 시간. 그리고 자신을 향한 기대와 후배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 하지만 추승균은 모든 걸 이겨내야 했다.
KCC는 순항했다. 첫 경기를 패했지만, 그 후 3경기를 모두 따냈기 때문. 추승균의 역할이 컸다. 상황 판단과 템포 조절로 동료들을 이끌었기 때문. 덕분에, KCC는 남은 3경기 중 1경기만 잡아도,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KCC는 5차전과 6차전을 모두 내줬다. 테렌스 레더의 골밑 장악과 애런 헤인즈(서울 SK)의 득점력을 막지 못했다. 3승 3패. 승부는 7차전까지 갔다. 쫓기는 쪽은 KCC였다.
7차전. KCC는 1쿼터를 23-29로 밀렸다. 그렇지만 2쿼터부터 반전을 만들었다. 전반전을 46-44로 마친 KCC는 한 번 잡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3쿼터에 점수 차를 벌린 후, 천신만고 끝에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했다.
추승균은 7차전에서 가장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팀 내 최다인 24점을 퍼부었다. 야투 성공률 66.7%(2점 : 6/8, 3점 : 2/4)과 자유투 성공률 100%(6/6)로 순도 높은 활약을 펼쳤다. 정규리그부터 챔피언 결정전까지 팀을 이끈 공로로 플레이오프 MVP를 받았다.
추승균은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정규리그 전 경기에 6강과 4강 모두 5차전, 챔프전도 7차전까지 꽉꽉 채웠다. 많이 힘들었다.(웃음) 그래도 선수들이 후반부부터 잘 맞아갔고, 포지션 별로 선수들이 제 역할을 해줬기에 우승이라는 결실을 맺었다”며 체력적인 어려움을 말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이라, 경험이 부족했다. 하지만 젊기 때문에, 체력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상황별 대처 요령을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칼 미첼로 외국선수를 교체하면서, 높이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며 자신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이어, “대화를 많이 했다. 어린 선수들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어떻게든 경기장에서 신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어린 선수들이 신이 나면, 경기장에서 훨씬 뛰어난 경기력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핵심 역할을 ‘소통’으로 꼽았다.
추승균 본인이 모범을 보이지 않았다면, 어린 선수들도 따라올 수 없었다. 특히, 7차전이 그랬다. 추승균은 “5차전과 6차전 패배로 다운될 수 있는 분위기였다. 7차전 초반만 잘 넘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병현이가 2쿼터에 3점 버저비터를 넣으며 분위기가 살았고, 3쿼터에 점수 차를 벌렸다. 그리고 그 흐름을 유지했다”며 7차전을 떠올렸다.
추승균은 2010~2011 시즌에도 KCC의 우승을 함께 했다. 2011~2012 종료 후 은퇴했고, KCC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2015~2016 시즌부터 KCC의 정식 감독이 됐고, 해당 시즌 KCC의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 결정전 진출을 이끌었다.
2018~2019 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했다. 지금은 엘리트 바스켓볼 아카데미를 설립해, 어린 선수들한테 기본기를 가르치고 있다. 자신의 35살 시절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35살에도 뛰어난 경기력을 보일 수 있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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