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코리아 = 편집부] 어느덧 20년이 넘은 KBL. 수많은 선수들이 KBL을 거쳐갔다. 그만큼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들도 많이 나왔다.
수많은 세대의 선수들이 KBL을 거쳐갔다는 뜻이다. KBL 초창기의 주축 선수였던 1960년대생 선수들과 1970년대생 선수들부터 현재의 1990년대생 선수들까지. 많은 선수들이 농구 팬의 기억을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준비했다. 우선 출생년도(1960년대생+1970년대생 vs 1980년대생+1990년대생) 기준으로 선수들을 추린 후, 포지션별로 역대 BEST를 뽑았다. 몇 가지 기술 분야와 경기에 미친 영향력을 통해 직접 비교해봤다. 우선 가드 부분 선수들부터 살펴보려고 한다.
포인트가드
6070 : 강동희, 이상민, 신기성, 김승현
8090 : 양동근, 김태술, 김선형, 허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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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 - 이상민 vs 양동근
초창기 KBL에서 수비는 이슈가 되는 키워드가 아니었다. 수비는 수비 전문선수들만의 영역이었고, 슈퍼스타들은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프로 초기 가드들에게 수비를 매우 잘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선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명의 선수를 꼽는다면 이상민이다. 그는 신장과 힘이 좋아 수비에서 발군의 능력을 자랑했다. 조성원과 뛸 때는 포지션 대비 큰 신장을 앞세워 상대 2번과 매치업을 하기도 했다.
이상민은 스틸 능력도 좋았다. 1997년 경기당 2.2개의 가로채기를 해냈고, 이후에도 1.5개 가까운 스틸 숫자를 꾸준히 기록했다.
이상민은 또한 운동능력도 매우 좋아 세로수비도 뛰어났다. 1997년 그는 0.7개의 블록을 기록할 정도였다.
김승현은 재치있게 상대 패스 길을 읽고 공을 빼앗는 수비수였다. 그는 프로 통산 4번의 스틸 1위를 차지했고, 2001-2002시즌에는 평균 3.2개의 가로채기를 기록했다. 총산 스틸도 경기당 2.0개에 달할 정도이다.
물론 스틸과 수비와는 연관이 있지 않기는 하나, 김승현은 다른 느낌으로 수비를 했던 선수였다.
시대가 변할수록 에이스들에게도 수비가 점점 중요시됐다.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를 잘해야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8090에는 가드 수비로 역대 넘버원인 선수가 있다. 바로 양동근이다. 그의 수비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정평이 났다. 그는 수비에 필요한 빠른 발, 엄청난 활동량, 포지션 대비 강한 힘과 수비 센스까지 모든 것을 갖췄다.
당대 내로라 하는 선수들도 양동근 앞에서는 고전하는 일이 많았다. 2000년대 후반 김승현이 그랬고, 이어서는 전태풍이 양동근을 만날 때마다 힘들어했다.
양동근의 장점은 과감하게 빼앗는 수비를 하지 않는 것. 그는 실린더만 지키면서 공격수를 최대한 방해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그는 가로채기 개수가 적지 않다. 커리어 평균 1.5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스틸 1위도 2번이나 차지했다.
8090에 김승현과 같은 느낌은 김태술이 있었다. 김태술 역시 수비를 잘한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스틸을 잘하는 선수였다. 데뷔 시즌 2.0개를 빼앗은 현재는 기록이 많이 낮아져 커리어 통산 1.4개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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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 - 신기성 vs 김선형, 허훈
6070의 가드들은 모두 돌파를 잘했다. 강동희가 보여준 특유의 파워넘치는 드라이브인, 센스 하나로 상대 골밑을 헤집어놓는 김승현 등이 존재했다.
하지만 돌파에 있어서는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이 있다. 남들에 비해 월등한 스피드를 지닌 신기성을 막아낼 선수는 많지 않았다.
물론, 그는 스피드로만 수비수를 상대하지 않았다. 슈팅력도 매우 좋았다. 미들레인지 점퍼뿐만 아니라 3점슛도 수준급이었다. 여기에 어시스트와 스틸 능력도 좋았다. 한 시즌 스틸 1위, 3점슛 성공률 1위 2회 등의 기록이 이를 반증한다.
이렇듯 다재다능한 그는 2004-2005시즌 MVP까지 수상했다.
하지만 신기성이 역대급 포인트가드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빠른 발을 앞세운 돌파가 밑바탕이었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8090에서는 돌파하면 김선형이었다. 데뷔 초반 김선형이 슛에서 약점을 보였음에도 엄청난 공격력을 자랑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돌파가 큰 몫을 했다. 빠른 발을 자랑한 김선형은 돌파 기술도 매우 다양했다. 유로스텝에 이은 플로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김선형의 돌파는 클러치 상황에서 더욱 빛났다. 마음 먹고 뚫어내는 그의 돌파를 막을 수 있는 수비수는 없었다.
가장 빛났던 경기는 18-19시즌 부산 KT전에서 보여준 한 경기 49점 퍼포먼스. 그는 경기 내내 드라이브인으로 엄청난 득점을 퍼부었다. 당시 경기는 KBL 역대 국내 선수 득점 3위에 해당한다.
또한, 아시아 무대에서도 김선형의 돌파는 통했을 만큼 대단했다. 국내 농구팬들이필리핀 가드들을 보며 느꼈던 갈증을 김선형이 해소해줬다.
김선형도 어느새 33세의 나이가 됐다. 여전히 돌파는 녹슬지 않았으나, 이전에 비해 폭발력은 떨어졌다.
그의 대를 이어 받을 만한 선수는 허훈. 그는 김선형처럼 빠른 발을 앞세운 스타일이 아닌 경쾌한 리듬을 앞세운 돌파로 KBL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센스 있는 드라이브인을 통한 득점은 ‘농구대통령’ 허재 전 감독을 떠오르게 했다.
허훈은 이번 시즌도 바이런 멀린스와의 2대2를 통해 돌파 능력을 뽐냈다. 허훈이 이번 시즌 득점 2위를 한 것에는 3점슛 능력 발전이 있었으나, 그 바탕에는 돌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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