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4년 간 동행 결정’ 원주 DB 이상범 감독, 유연한 리더십과 장미빛 미래

김우석 기자 / 기사승인 : 2020-04-29 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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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우석 기자] 원주 DB가 이상범(51) 감독과 4년 동안 동행을 결정했다.


DB는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2017년 젊은 선수들을 발굴, 육성해 리빌딩과 새로운 팀 컬러 구축과 성적 모두 성과를 보인 이상범 감독과 4년 동안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느 누구도 지난 세 시즌 동안 이 감독이 DB 헤드코치로 일궈낸 성과에 대해 이견이 없었기 때문.


부임 첫 시즌이었던 2017-18시즌 DB는 약체로 꼽혔다. 특히, 국내 선수 라인업에 의문 부호가 많았다. 핵심 선수였던 김주성의 노쇠화가 뚜렷했고, 윤호영도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드 진 역시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감독은 국내 선수 기용과 관련해 용병술과 효율성을 키워드로 단점을 상쇄시켰고, 디온테 버튼이라는 외국인 선수 활용을 극대화 시키는데 성공,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일궈냈다.


믿기 힘들었던 정규리그 결과와 함께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했던 DB는 서울 SK에게 두 경기를 먼저 따내며 통합 우승을 일궈내는 듯 했지만, 이후 4경기를 내리 내주며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DB를 비난하는 일을 없었다. 그 만큼 객관적인 전력 열세를 뛰어넘고 만들어낸 결과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스포츠 본질 중 하나인 ‘각본 없는 드라마’를 완성시킨 이 감독이었다.


감독 부임 첫 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한 시즌을 보냈던 이 감독과 DB였다.


지난 시즌 DB는 8위로 주저 앉았다. 김주성 은퇴와 윤호영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을 절감해야 했다. 앞선 시즌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던 두경민도 상무에 입대하며 전열에서 이탈했던 부분도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부상마저 적지 않았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 해였다.


하지만 매 경기 접전 끝에 패했고, 간혹 강 팀을 잡아내는 등 완전히 전력이 흐트러진 상황 속에도 선전했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지난 시즌의 아픔은 바로 보상으로 돌아왔다. 1위를 차지하며 한 시즌을 정리한 것. 적극적인 FA 시장 공략으로 창원 LG에서 김종규를 영입하는데 성공했고, 김태술과 김민구가 합류하며 가드 진의 깊이를 더했다.


김종규는 LG 시절에 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량으로 DB 인사이드에 힘을 보탰고, 새로 합류했던 두 가드 역시 자신들을 둘러싼 모든 의문 부호를 떨쳐내는 활약과 함께 한 시즌을 지나쳤다.


화룡점정(火龍點定)을 찍은 선수는 두경민이었다. 시즌 중반을 넘어선 시점 상무에서 복귀한 두경민은 경희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종규, 김민구와 함께 DB가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를 받는데 있어 자신의 이름을 제일 먼저 떠오르게 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


그렇게 또 한번의 기억에 남을 만한 시즌을 보냈던 이 감독은 4년 재계약이라는 기분 좋은 현실과 조우하며 DB를 농구 명가 반열에 올려 놓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감독 이상범’은 무엇이 달랐을까?


선수 시절 이 감독은 아주 클래식한 단어인 ‘민완 가드’에 어울리는 선수였다. 3점슛과 수비에 장점이 있는 무난한 가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전고, 연세대 출신인 이 감독은 1992년 SBS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2000년 안양 SBS 스타즈(현 KGC 인삼공사)에서 은퇴했다. 프로 생활을 했던 4년(1997-2000) 동안 통산 기록이 16분 17초 출전에 4.5점 0.9리바운드 1.1어시스트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1997년 2월 1일. 이날은 한국에 프로농구가 첫 선을 보인 날이다. 당시 ‘선수’ 이상범은 개막전에서 3점슛으로 첫 득점을 기록함과 동시에 KBL 역사 상 첫 3점슛을 성공시킨 선수로서 기록을 남겼다. 자신의 프로 커리어에 가장 화려했던 장면이었다.


은퇴 후 잠시 미국 연수를 가진 이 감독은 SBS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후 무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코치 생활을 가졌다.


2008년부터 감독 대행으로 1년 동안 또 다른 ‘책임’을 경험한 이 감독은 이후 5년 동안 감독으로서 KGC인삼공사를 이끌었다.


정규리그에서 8-9-2-4-9라는 성적을 남겼다. 절반이 성공이었다. 2011-12시즌에는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고, 열세라고 여겼던 원주 동부(현 원주 DB)를 격파하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김주성(원주 DB 코치)과 윤호영 그리고 로드 벤슨으로 이어지는 마천루는 당시 상대 팀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정규리그 평균 실점이 67.8점에 불과했을 정도로 강력한 수비를 자랑하는 팀이었다. 하지만 3대7 정도로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업고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KGC는 인삼신기로 불리웠던 김태술(원주 DB), 박찬희(인천 전자랜드), 이정현(전주 KCC), 양희종이 존재했고, 대형 신인 오세근이 합류하며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은 승리였고, 우승이었다.


먼저, 수비로 맞불을 놓았다. KGC는 젊은 선수들의 장점인 체력이 바탕이 된 프레스 디펜스로 동부의 템포 바스켓을 흔들었다. 1차 공격 저지에 성공했다. 동부 산성과 결합된 세트 오펜스에 강점이 있던 동부는 젊음을 키워드로 강력한 수비를 펼치는 KGC 수비 전술에 어려움을 겪으며 챔피언 트로피를 내주고 말았다.


이 감독이 구상한 전략은 그렇게 100%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 우승이라는 결과물로 바뀌게 되었다. 젊은 선수들의 에너지를 극대화 시켰던 이 감독의 능력이 빛을 발했던 순간이었다. 주축 선수들이 자신의 모교인 연세대 출신이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고, 오랜 코치 생활로 얻은 경험이 결합된 산출물이기도 했다.


우승 이후 KGC는 주력 선수들 군 입대로 인한 공백기를 거쳐갔고 순위도 추락했다. 이 감독은 구단과 불화설까지 돌면서 감독 직에서 물러났고, 이후 3년이라는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야인이 된 이 감독이 향했던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의 각급 학교에 머물면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키워드는 눈높이와 창의성 그리고 신뢰였다. 전통적인 한국의 지도 방법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는 단어들이다.


DB 취임 후 인터뷰에서 이 감독은 “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을 이끌었던 하세가와 켄지 감독과 인연이 있어 일본으로 향했다. 지도 보다는 휴식 차원이었다. 하지만 한 고등학교와 연을 맺게 되었고, 학교 코치들을 대상으로 지도 방법을 알려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일주일 정도였는데, 그게 2년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당시 2년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지도법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그들의 실력에 맞는 수준의 지도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연이어 이 감독은 “감독 말이 다 정답은 아니다. 공격이 풀리지 않을 때 방법을 달리 적용했다. 몇 차례 작전 지시를 했는데 공격에 실패하면 선수들 스스로 방법을 찾도록 했다. 일본에서 창의적인 농구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또, 나만의 방식을 고집하며 선수들과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지도 철학에 변화를 가한 이 감독의 리더십은 적중했다. 서민수라는 스타를 발굴했고, 김태홍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유성호라는 핵심 백업도 탄생했다. 또, 열세였던 가드 진도 변화가 생겼다. 두경민은 MVP에 오르기까지 했다. 사실 두경민이 이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코트에 들어선 선수들은 확실한 동기 부여와 함께 벌떼처럼 뛰어 다녔다. ‘열심히 훈련하면 언제든지 기회는 주어진다.’라는 명확한 이 감독의 생각은 그들을 움직였다. 그들의 활동량은 결국 DB를 순위표 상단에 올려 놓았다. 그렇게 DB는 2017-18시즌 가장 ‘핫’ 했던 팀이 되었다.


이번 시즌, 이 감독을 향한 DB 선수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감독님은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신다. 연습이 끝날 때쯤 한 마디를 툭 던지고 가신다. 그게 귀에 쏙 박힌다. 그리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언제든지 시합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DB 감독으로 부임 후 3년 동안 이 감독은 동기 부여와 절제된 관리를 통해 선수단 전체를 바꿔 놓았다.


또한, 명확한 테스크를 주고 본인 스스로 해결하고 올라설 수 있도록 한다. 선수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이 감독의 새로운 지도 방법에 선수들은 어렵지 않게 녹아 들었고, 매 시즌 최선의 결과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 들며 지금에 이르렀다.


팀 뿐만 아니라 개인에 있어서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코칭 스텝과 선수 사이에 적당한 거리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했던 이 감독의 지난 세 시즌이었다.


이 감독은 “내가 선수들에게 해주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동기 부여다. 경기에 나서 집중해서 뛸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일본에서 느낀 것 중에 하나다. 몰아 부치는 것은 동기 부여가 될 수 없다. 경기 전 선수와 약속했던 시간은 지킨다. 그들의 가족이 보는 앞에서 채찍을 가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시간 약속 또한 매우 중요한 ‘관계’ 중 하나다.”라고 이야기했다.


위에 언급한 대로 이 감독은 선수 매니지먼트에 있어 밀착 관리를 하지 않는다. 선수 개개인에 대한 세밀한 관찰은 있지만, 지도 방법에 있어 대화는 최대한 절제하는 편이다.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다. 선수들은 긍정적인 긴장감 속에 스스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율 야간 운동의 횟수가 많아진 이유다. 어느 누구도 예전같이 수동적으로 야간 자율 훈련에 임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 DB의 현재다.


마지막으로 이 감독에게 절실함이 있었다. 이 감독은 “일본에 있을 때도 꼭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 야인으로 지내면서 꼭 코트에 서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선수가 아닌, 감독에게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이 감독은 어렵지 않게 절실함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감독 이상범은 업그레이드 된 지도 철학과 함께 DB에 복귀했고, 지난 3시즌 동안 괄목상대에 어울리는 과정과 성적을 그려내며 향후 4년 동안 DB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물론, 4년 모두를 채울 수 없는 상황이 그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KGC인삼공사 시절 좋지 못했던 경험마저 이 감독에게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원주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DB와 이 감독의 궁합은 현재까지 최고다. 그의 조금은 색다른 지도 철학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을 지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장미빛 미래'라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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