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KBL이 지난 1일부터 4주 동안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을 계속 주시할 계획이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을 수립했고, 대처법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KBL이 당분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KBL 경기 현장을 갈 수 없고,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사실, 코로나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적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시즌이 재개될 때까지, KBL 역대 최우수 외국선수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번에 이야기할 선수는 크리스 랭(S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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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랭, 2004~2005 시즌 기록]
- 정규리그 : 54경기 평균 37분 35초, 22.9점 11.6리바운드 2.3블록슛 1.2어시스트 0.9스틸
1) 2점슛 성공률 : 약 61.1% (경기당 약 9.2/15.1)
2) 자유투 성공률 : 약 71.8% (경기당 약 4.2/5.9)
* 블록슛 1위
* 득점 7위 & 자유투 성공 개수 5위 & 2점슛 성공 개수 4위
* 리바운드 5위
KBL은 1997년 창설 후 드래프트로 외국선수를 선발했다. 2004~2005 시즌 전 큰 변화를 줬다. 외국선수 선발을 자유계약제도로 돌린 것. 각 구단은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외국선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서울 SK의 선택은 크리스 랭이었다. 크리스 랭은 202cm에 체격 조건이 좋은 빅맨. 백인이라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받았지만, 골밑 수비와 박스 아웃에서 강점을 보여줬다. 베이스 라인 부근에서의 훅슛과 자유투 라인 부근에서의 점퍼가 정확했다.
랭의 최대 강점은 ‘성실함’과 ‘꾸준함’이다. 체력 소모가 심한 빅맨을 맡고 있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시즌 내내 큰 기복 없이 경기했다. 팬들을 대하는 매너 역시 좋았다.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였다.
당시 서울 SK의 사령탑이었던 이상윤 감독은 랭을 “팀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와 팀 플레이도 좋다”며 랭을 칭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SK는 1라운드 첫 5경기에서 4승 1패를 기록했다. 개막전에서 원주 TG 삼보에 78-84로 패했지만, 그 후 4연승을 달렸다. 4연승 기간 동안 평균 득실 마진은 +11.5에 달했다. 랭은 해당 기간 동안 17.8점 10.8리바운드 2.4블록슛으로 맹활약했다.
그러나 SK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랭의 파트너였던 레너드 화이트가 1라운드도 마치지 못하고 이탈했다. 세드릭 핸더슨이 대체 외국선수로 왔지만 부진했다. 핸더슨을 대신해 투입된 케빈 프리맨도 큰 승부수가 되지 못했다.
[크리스 랭, 정규리그 주요 활약 경기]
- 2004.11.21. vs 부산 KTF : 36분 53초, 34점 11리바운드(공격 2) 1어시스트 1스틸
- 2004.12.05. vs 창원 LG : 36분 47초, 41점 14리바운드(공격 4) 2스틸 1블록슛
- 2005.01.02. vs 서울 삼성 : 40분, 27점 20리바운드(공격 4) 1블록슛
- 2005.02.18. vs 울산 모비스 : 45분, 28점 16리바운드(공격 2) 10블록슛 2스틸
- 2005.03.10. vs 서울 삼성 : 40분, 33점 7리바운드(공격 2) 2어시스트 2블록슛
SK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전희철(서울 SK 코치)-조상현(현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코치)-임재현(배재고 코치) 등 국내 선수들이 분전했지만, 외국선수 1명의 부진은 SK에 악영향을 미쳤다. SK는 패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지만 랭은 돋보이는 선수였다. 시즌 중반 KBL을 대표해, 한중 올스타전에 나가기도 했다. 랭은 김승현(SPOTV 해설위원)과 뛰어난 호흡을 자랑했다. 특히, 김승현의 앨리웁 패스를 덩크로 마무리하는 일이 많았다. 한국 농구를 응원한 팬들에게 큰 힘이 됐다.
랭과 호흡을 맞췄던 김승현 위원은 “상대 팀 선수였던 랭과 뛰는 일은 행복했다. 여러 가지를 떠나, 정말 재미있게 뛰었던 하루하루였다”며 랭과 같은 유니폼을 입었던 일을 추억했다.
소속 팀에 돌아온 랭은 계속 꾸준함을 보였다. 2005년 첫 경기에서 KBL 데뷔 후 20-20을 달성했다. SK는 잠실 라이벌인 서울 삼성을 97-89로 격파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인 2005년 2월 18일. 랭은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KBL 역대 최초 두 자리 득점-두 자리 리바운드-두 자리 블록슛으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것. 팀은 비록 연장 접전 끝에 87-89로 패했지만, 랭의 기량은 압도적이었다.
상대의 슈팅 타이밍을 예측하지 않고서는, 많은 블록슛을 할 수 없다. 수비 센스가 있어야, 랭처럼 많은 블록슛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역 시절 KBL에서 블록슛 1,000개를 달성한 김주성 DB 코치도 “나머지 9명의 상황을 읽어야, 블록슛을 할 수 있다. 전체적인 공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랭은 그런 센스가 좋았던 선수였다”며 랭의 블록슛 능력을 인정했다.
랭은 2004~2005 시즌 39번의 더블더블을 기록했고, 해당 시즌 선수 중 가장 많은 평균 37분 35초를 소화했다.
그렇지만 SK는 24승 30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랭은 KBL 최우수 외국선수가 됐다. KBL 최초 플레이오프 탈락 팀 최우수 외국선수가 됐다. 그만큼 랭의 기량이 뛰어났다는 뜻이다.
랭을 상대편에서 만났던 김주성 코치는 “백인 선수치고는, 운동 능력이 좋았던 선수다. 2대2 상황에서 패스를 받고 원투스텝 이후에 날라가서 덩크할 수 있는 선수였다. 우리 나라 가드들이 좋아할만한 빅맨이었다”며 랭의 경기력을 회상했다.
SK는 랭과 함께 하고 싶었다. 재계약을 원했다. 그러나 랭은 “한국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겠다”는 작별 인사를 남겼다. ‘NBA 선수’라는 꿈을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랭은 ‘NBA 리거’가 되지 못했다. 계속 두드렸지만, NBA는 랭을 허락하지 않았다. 랭은 2008~2009 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터키리그에서 뛰었다. 2010~2011 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이탈리아리그에서 뛰었다. 그 후, 베네주엘라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 했다.
2012~2013 시즌 전 KBL 외국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신청서를 냈다. 많은 팬들의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랭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랭을 KBL에서 볼 일은 없었다. 랭은 그렇게 추억 속의 인물이 됐다.
[크리스 랭 참가, 2005 한중 올스타전 하이라이트]
사진 제공 = KBL
영상 출처 = 점프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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