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KBL이 지난 1일부터 4주 동안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을 계속 주시할 계획이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을 수립했고, 대처법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KBL이 당분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KBL 경기 현장을 갈 수 없고,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사실, 코로나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적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시즌이 재개될 때까지, KBL 역대 최우수 외국선수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번에 이야기할 선수는 찰스 민렌드(전주 KC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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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민렌드, 2003~2004 시즌 기록]
1. 정규리그 : 54경기 평균 35분 1초, 27.1점 11.3리바운드 2.2어시스트 1.6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58.1% (경기당 약 9.4/16.3)
- 3점슛 성공률 : 약 34.6% (경기당 약 0.8/2.4)
* 득점 1위 & 리바운드 4위
2. 플레이오프(4강) : 3경기 평균 39분 14초, 30.7점 11.0리바운드 3.7어시스트 1.7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55.1% (경기당 약 9.0/16.3)
- 3점슛 성공률 : 약 28.6% (경기당 약 0.7/2.3)
* 4강 출전 선수 중 득점 1위 & 리바운드 1위
* 4강 출전 선수 중 자유투 시도 횟수 및 성공 회수 1위 (경기당 평균 10.7/13.7)
3. 챔피언 결정전 : 7경기 평균 33분 21초, 20.6점 7.1리바운드 2.3어시스트 1.0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50.6% (경기당 약 6.3/12.4)
- 3점슛 성공률 : 약 53.8% (경기당 약 1.0/1.9)
* 챔피언 결정전 출전 선수 중 득점 1위 & 리바운드 3위
대전 현대는 1997~1998 시즌부터 3번의 정규리그 우승과 2번의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이상민(삼성 감독)-조성원(명지대 감독)-추승균(전 KCC 감독)-조니 맥도웰로 이어지는 라인업으로 전성기를 달렸다.
2001~2002 시즌부터 전주 KCC로 다시 달렸다. 그러나 KCC의 위용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특히, 2002~2003 시즌. KCC는 20승 34패(9위)로 플레이오프조차 올라가지 못했다. 분위기 쇄신이 필요했다.
2003~2004 시즌 전. KCC는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 KCC의 선택은 찰스 민렌드. 민렌드는 프랑스와 이스라엘 등 수준 높은 리그에서 뛴 외국선수였다. 트라이아웃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보여줬다. KCC의 기대감은 컸다.
민렌드는 시범 경기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규리그에서 달라진 경기력을 보였다. KCC가 시즌 중반부터 이상민-조성원(트레이드로 KCC 합류)-추승균 라인을 다시 가동했고, 슈팅이 정확했던 민렌드는 빠른 농구에도 힘을 실었다. KCC는 정규리그 2위(39승 15패)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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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민렌드, 2003~2004 챔피언 결정전 일자별 기록]
- 1차전 : 38분 37초, 25점 6어시스트 5리바운드(공격 2) 3스틸 -> KCC 승
- 2차전 : 23분 58초, 13점(자유투 : 7/8) 6리바운드(공격 4) 2어시스트 -> KCC 승
- 3차전 : 37분 9초, 32점(2점 : 12/18, 3점 : 2/3) 8리바운드(공격 3) 3스틸 -> KCC 패
- 4차전 : 27분 32초, 10점 5리바운드(공격 3) 1어시스트 -> KCC 패
- 5차전 : 40분, 33점(2점 : 10/16, 3점 : 3/3) 8리바운드(공격 4) 4어시스트 1블록슛 -> KCC 승
- 6차전 : 36분 31초, 15점 8리바운드(공격 2) 3어시스트 1스틸 -> KCC 패
- 7차전 : 29분 41초, 16점 10리바운드(공격 1) -> KCC 승
민렌드는 큰 경기에 집중할 줄 아는 남자였다. 4강 플레이오프 첫 경기부터 42점을 퍼부었다. 2점슛 성공률 75%(12/16)와 자유투 성공률 90%(18/20)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민렌드를 막을 이는 아무도 없어보였다.
민렌드가 4강 플레이오프 내내 20점 이상을 넣었다.(2차전 : 20점, 3차전 : 30점) 민렌드가 맹활약한 KCC는 창원 LG를 3전 전승으로 완파했다. 정규리그 1위였던 원주 TG 삼보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났다.
민렌드는 기선 제압의 선봉장이 됐다. 1차전에서 양 팀 선수 중 최다 득점. 2차전에도 영리한 파울 유도로 팀 승리에 힘을 실었다. KCC는 원정에서 2전 전승을 거뒀다.
KCC는 3차전과 4차전에서 패했다. 2승 2패. 2승이 더 필요했다. 민렌드는 5차전에서 양 팀 선수 중 최다 득점을 기록했고, 승부를 가리는 7차전에서도 더블더블을 기록했다. KBL 데뷔 후 첫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름이 바뀐 KCC에 첫 우승을 선사했다. 해당 시즌 최우수 외국선수 역시 민렌드의 몫이었다.
민렌드는 다음 시즌에도 KCC의 챔피언 결정전을 이끌었다. 더 나아진 득점력으로 또 한 번 TG를 괴롭혔다. 하지만 KCC는 이를 갈고 나온 TG에 2승 4패로 패했다. 민렌드는 2005~2006 시즌에도 KCC를 4강 플레이오프로 끌고 갔지만, KCC는 4강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에 1승 3패로 패했다.
민렌드는 2006~2007 시즌부터 창원 LG 소속으로 뛰었다. KCC에서 함께 했던 신선우 감독과 재회한 것. 당시 현주엽(LG 감독)-박지현(휘문중 코치)-이현민(고양 오리온) 등 뛰어난 국내 선수가 많았고, 퍼비스 파스코라는 궂은 일에 특화된 파트너가 있었다. 민렌드는 장점인 공격에 치중할 수 있었다.
민렌드는 또 한 번 4강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그러나 파스코가 3차전에서 장영재의 도발에 흥분했고, 심판을 밀치며 퇴출됐다. 민렌드가 홀로 뛰어봤지만, 외국선수의 수적 열세를 메우지 못했다. 또 한 번 챔피언 결정전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민렌드는 발을 잘 쓰는 선수였다. 마지막까지 공을 놓지 않는 집중력도 갖췄다. 적극적인 리바운드 가담과 영리한 수비 등 궂은 일도 잘했다. 빠른 스피드나 폭발적인 탄력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KBL 정상급 외인으로 자리잡은 이유였다.
2003~2004 시즌 민렌드를 상대했던 김주성(원주 DB 코치)도 “정말 똑똑한 선수였다. 농구를 스텝으로 할 줄 아는 선수였다. 터닝 슛이나 페이더웨이, 스텝 백 점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슈팅할 줄 아는 선수였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이어, “다른 선수들보다 반 스텝을 길게 뺀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페이더웨이할 때 그랬다. 수비 상황에 따라 보폭을 조절할 줄 아는 선수였다. 블록슛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민렌드의 슈팅을 막지 못했던 것 같다”며 민렌드를 막기 힘들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조용하지만 강한 선수. 팀을 이기게 할 줄 아는 선수. 화려하지 않은 듯, 화려한 기록을 남긴 선수. 알고도 막기 힘든 선수. 찰스 민렌드는 위의 조건을 모두 갖춘 선수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민렌드를 기억하고 있다. 민렌드의 근황을 궁금하게 여기는 이도 꽤 많을 것이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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