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KBL이 지난 1일부터 4주 동안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을 계속 주시할 계획이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을 수립했고, 대처법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KBL이 당분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KBL 경기 현장을 갈 수 없고,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사실, 코로나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적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시즌이 재개될 때까지, KBL 역대 MVP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번에 돌아볼 선수는 1997~1998 시즌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한 허재(전 KCC 감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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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 1997~1998 시즌 기록]
1. 정규리그 : 37경기 평균 27분 44초, 15.0점 3.5어시스트 3.4리바운드 1.4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50.8% (경기당 약 3.6/7.1)
- 3점슛 성공률 : 약 32.3% (경기당 약 1.7/5.2)
2. 플레이오프(6강+4강) : 8경기 36분 20초, 14.3점 3.6리바운드 3.1어시스트 1.4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48.3% (경기당 약 3.6/7.5)
- 3점슛 성공률 : 약 22.6% (경기당 약 1.5/6.6)
3. 챔피언 결정전 : 7경기 평균 39분 33초, 23.0점 6.4어시스트 4.3리바운드 3.6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60.4% (경기당 약 4.6/7.6)
- 3점슛 성공률 : 약 37.9% (경기당 약 3.6/9.4)
* 챔피언 결정전 출전 선수 중 평균 득점 2위 (1위 : 조니 맥도웰, 26.0점)
* 챔피언 결정전 출전 선수 중 평균 어시스트 1위 (2위 : 이상민, 5.7개)
* 챔피언 결정전 출전 국내 선수 중 평균 리바운드 2위
* 챔피언 결정전 출전 선수 중 평균 스틸 1위 (2위 : 조니 맥도웰, 2.0개)
‘농구대통령’. 이 단어면 모든 게 정리된다.
허재의 별명이다. 스피드와 탄력, 힘 등 동 포지션 대비 모든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이 뛰어났다. 슈팅과 돌파, 패스 모두 할 줄 알았다.
각 분야에 특화된 선수가 많았다. 그러나 허재처럼 다 잘 하는 선수는 없었다. 게다가 허재는 포기하지 않는 마인드와 지기 싫어하는 승부 근성을 갖췄다. 그게 허재를 한국 농구 역대 최고 선수로 만들었다.
허재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기아를 농구대잔치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다. 김유택-강동희 등 최고의 동료가 있었다고 하지만, 승부처를 지배한 건 허재였다. 이는 팀원 모두가, 그리고 농구계에 있는 모두가 인정할 정도였다.
KBL이 창설됐다. 외국선수 2명이 들어왔다. 단신 테크니션이 많이 들어왔기에, 허재가 이전보다 큰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이도 어느덧 30대 초중반. 허재의 전성기가 그대로 끝나는 듯했다.
허재는 이러한 평가를 뒤집고 싶었다. 그리고 1997~1998 시즌. 하지만 허재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외국선수 저스틴 피닉스가 태업을 하면서 기아의 골밑 전력이 흔들린 것. 그리고 허재는 플레이오프에서 오른손 손등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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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 1997~1998 챔피언 결정전 일자별 기록]
- 1차전 : 40분, 29점(3점 : 5/11, 자유투 : 10/10) 6어시스트 5리바운드 5스틸 -> 기아 승
- 2차전 : 40분, 30점(3점 : 5/10) 11어시스트 5스틸 2리바운드 -> 기아 승
- 3차전 : 21점(3점 : 3/9) 5어시스트 3리바운드(공격 2) -> 기아 패
- 4차전 : 27점(3점 : 4/13) 5스틸 3리바운드(공격 1) 1어시스트 -> 기아 패
- 5차전 : 17점(3점 : 2/6) 8리바운드(공격 2) 3어시스트 2스틸 1블록슛 -> 기아 승
- 6차전 : 22점(3점 : 3/7) 6어시스트 4스틸 3리바운드(공격 1) -> 기아 패
- 7차전 : 15점(3점 : 3/10) 13어시스트 6리바운드(공격 4) 4스틸 -> 기아 패
챔피언 결정전. 상대는 대전 현대였다. 당시 현대는 이상민(현 삼성 감독)-조성원(현 명지대 감독)-추승균(전 KCC 감독)으로 이어지는 국내 라인업에, ‘조니 맥도웰-제이 웹’이라는 확실한 외국선수 조합도 갖췄다.
그러나 허재에게 상대방의 전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 경기력이 중요했을 뿐이다. 허재는 챔피언 결정전 중 눈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지만, 시리즈 내내 현대를 괴롭혔다.
허재가 활약한 덕에, 기아는 7차전까지 승부를 끌고 갔다. 그러나 체력 부담이 컸다. 저스틴 피닉스가 거의 코트에 나서지 않았고, 당시 기아 주축 선수(허재-강동희-김영만 등)가 현대 주축 선수(이상민-조성원-추승균 등)보다 활동량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기아는 웃지 못했다.
그렇지만 파이널 무대를 가장 빛낸 이는 허재였다. 모두가 허재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다. 허재는 KBL 역대 최초이자 유일하게 ‘준우승 팀 파이널 MVP’가 됐다. 그만큼 허재의 경기력은 눈부셨다.
허재와 그 시절을 함께 했던 강동희 K 농구교실 단장은 “상대는 맥도웰과 웹의 조합이 좋았다. 우리는 클리프 리드 1명만으로 경기해야 했다. 외국선수 2명 다 뛰어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전문가들도 현대의 우승을 예상했다”며 당시 상황을 말했다.
그리고 “허재 형이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였다. 허재 형이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갔다고 보면 된다. 다만, 외국선수 수적 열세가 컸고, 현대처럼 젊은 팀을 체력적으로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3차전 마지막에 조성원한테 3점만 내주지 않았어도, 시리즈를 잡았을 것 같은데 아쉽다. 그 때가 우리 마지막 전성기이지 않았나”며 허재의 퍼포먼스와 기아의 상황을 회상했다.
허재를 수비했던 추승균 역시 “상대편에서 보기에 경이롭다고 할 정도의 경기력이었다. 농구를 정말 간단하게 하셨다. 떨어지면 쏘고, 붙으면 팠다. 협력수비가 오면 빼주기까지 했다”며 허재 감독의 당시 경기력에 감탄했다.
이어, “(이)상민이형과 (조)성원이형, 나와 다른 선수들이 번갈아 허재 형을 막았다. 1대1로 번갈아 막으며, 체력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물론, 허재 감독님을 1대1로 막는 게 어려웠지만, (신선우 감독님께서는) 이쪽저쪽 다 막다보면 오히려 다 터질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줄 건 줘도, 우리가 넣을 공격력이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며 당시 허재 수비 전략을 세부적으로 말했다.
특히, “정규리그와 가장 다르셨던 부분은 마음가짐이셨던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제대로 마음 먹고 나오신 것 같았다. 정규리그 때와는 몸이 또 다르다고 생각했다”며 정규리그와 달랐던 점도 덧붙였다.
허재의 기량, 허재의 투지. 모든 게 전설로 남아있다. 코트에서의 불꽃 같은 열정과 카리스마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허재는 최근 예능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이제는 허웅(원주 DB)과 허훈(부산 kt)의 아버지라는 인식도 강해졌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들이 많다. 1997~1998 KBL 챔피언 결정전도 그 중 하나다.
[1997~1998 챔프전 5차전, 허재의 붕대 투혼] : https://sports.news.naver.com/basketball/vod/index.nhn?category=kblclassic&tab=&listType=season&season=kblmatch&id=610884&page=4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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