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KBL이 지난 1일부터 4주 동안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을 계속 주시할 계획이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을 수립했고, 대처법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KBL이 당분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KBL 경기 현장을 갈 수 없고,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사실, 코로나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적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시즌이 재개될 때까지, KBL 역대 MVP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번에 돌아볼 선수는 1998~1999 시즌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한 조성원(현 명지대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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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원, 1998~1999 시즌 기록]
1. 정규리그 : 44경기 평균 27분 15초, 11.3점 1.5어시스트 1.3리바운드 1.1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58.9% (경기당 약 2.2/3.7)
- 3점슛 성공률 : 약 35.8% (경기당 약 1.8/5.1)
2. 플레이오프(4강) : 3경기 32분 22초, 22.0점 2.0어시스트 2.0리바운드
- 2점슛 성공률 : 약 68.8% (경기당 약 3.7/5.3)
- 3점슛 성공률 : 약 46.7% (경기당 약 4.7/10.0)
3. 챔피언 결정전 : 5경기 평균 33분 44초, 16.4점 1.8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62.5% (경기당 약 2.0/3.2)
- 3점슛 성공률 : 약 34.0% (경기당 약 2.6/7.6)
KBL 초창기. 대전 현대는 1997~1998 시즌부터 3시즌 동안 전성기를 보낸다. 3시즌 연속 정규리그 우승과 3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 진출, 그리고 두 번의 통합 우승. 많은 팬들이 ‘현대 왕조’라고들 했다.
이상민(현 삼성 감독)과 조니 맥도웰이 왕조의 주축이었다. 이상민은 ‘컴퓨터 가드’라는 별명에 맞게 정교한 패스와 넓은 시야, 상황에 맞는 템포 조절 등 포인트가드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줬고, 맥도웰은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득점력과 골밑 장악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추승균(전 KCC 감독) 역시 공수 기여도가 높았다.
조성원 역시 왕조의 일원이었다. 키는 180cm에 불과하지만, 이를 커버하는 스피드와 점프력을 갖고 있었다. 폭발적인 슈팅 능력과 승부처에서의 자신감과 해결사 기질까지. 통통 튀는 점프슛으로 ‘캥거루 슈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팀이 필요로 할 때, 조성원은 단비 같은 3점포로 현대를 승리로 이끌었다. 1997~1998 시즌 챔피언 결정전 3차전도 마찬가지였다. 현대는 당시 부산 기아와 시리즈 전적에서 0-2로 밀렸고, 3차전 역시 경기 종료 18초 전까지 92-93으로 밀린 상황. 자칫 시리즈를 내줄 수 있었다. 마지막 공격권을 잡은 현대는 무조건 점수를 따내야 했다.
조성원이 그 역할을 했다. 경기 종료 4초 전 자신 있게 슈팅했다. 조성원의 슈팅은 림을 관통했다. 현대는 95-93으로 역전승했다. 조성원은 ‘KBL판 4쿼터의 사나이’임을 과시했고, 현대는 그 후 4승 3패로 극적인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1998~1999 시즌. 현대는 탄탄대로였다. 33승 12패로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를 제패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원주 나래를 3승으로 완파했다. 또 한 번 정상에 도전했다. 조성원은 정규리그보다 두 배 가까운 득점력을 보였다. 마지막 무대인 챔피언 결정전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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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원, 1998~1999 챔피언 결정전 일자별 기록]
- 1차전 : 30분 3초, 13점(3점 : 3/10) 5스틸 1어시스트 1리바운드(공격) -> 현대 승
- 2차전 : 32분 14초, 17점(3점 : 5/8) 1리바운드(공격) 1스틸 -> 현대 패
- 3차전 : 36분 34초, 14점(3점 : 2/6) 2스틸 1리바운드 -> 현대 승
- 4차전 : 34분 58초, 16점(3점 : 4/7) 1리바운드 1어시스트 1스틸 -> 현대 승
- 5차전 : 34분 51초, 22점(3점 : 2/6) 1어시스트 -> 현대 승
현대의 상대는 또 다시 기아. 그러나 기아의 전력이 많이 달라졌다. 허재(전 KCC 감독)과 클리프 리드 대신 정인교(현 숭의여고 코치)와 제이슨 윌리포드가 기아의 주축 자원이었다. 그러나 김유택의 부상 변수가 현대를 웃게 했다.
조성원은 더욱 뛰어난 슈팅 감각을 보였다. 시리즈를 치를수록, 더 많은 득점력을 보였다. 우승을 결정하는 마지막 경기에서 시리즈 최다 득점을 달성했다. 현대는 4승 1패로 두 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조성원이 플레이오프 MVP가 됐다. 이상민-추승균-조니 맥도웰-재키 존스 등 기라성 같은 멤버를 제치고,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가 됐다. 조성원은 “멤버들이 워낙 좋았고, 그래서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컨디션이 딱히 더 좋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며 20년 이전의 상황을 즐겁게 말했다.
그리고 “게임하는 것 자체가 정말 좋았다. 한창 몸이 좋을 때여서, 슛을 쏘면 안 들어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중들이 많은 무대가 오히려 신이 나는 것 같다”며 큰 경기에 강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조성원의 플레이를 지켜봤던 추승균도 “슈터라면 자신 있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찬스면 던져야 하고, 안 들어가면 안 들어간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 성원이형은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경기에 임했고, 큰 경기여도 정말 편하게 한 것 같다. 1998~1999 파이널이 (조)성원이형의 위력과 성향이 잘 드러난 무대라고 생각한다”며 조성원의 큰 무대 기질을 이야기했다.
조성원은 다음 시즌(1999~2000)에도 현대를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서장훈-재키 존스-로데릭 하니발이 버틴 청주 SK에 2승 4패로 무릎을 꿇었다. 현대 왕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조성원도 현대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다른 팀에서 옛 동료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성원은 빛났다. 오히려 날개를 단 듯했다. 1998~1999 시절의 폭발력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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