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 역대 MVP] 이상민, KBL 최초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0-03-04 07: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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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KBL이 지난 1일부터 4주 동안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을 계속 주시할 계획이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을 수립했고, 대처법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KBL이 당분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KBL 경기 현장을 갈 수 없고,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사실, 코로나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적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시즌이 재개될 때까지, KBL 역대 MVP를 돌아보기로 했다. 두 번째 선수는 1997~1998 시즌부터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를 차지한 이상민(현 삼성 감독)이다.


[이상민, 1997~1998 시즌 기록]
1. 정규리그 : 43경기 평균 35분 51초, 14.3점 5.2어시스트 5.0리바운드 2.2스틸
* 어시스트 2위 & 스틸 6위
2. 플레이오프 (4강) : 3경기 평균 33분 15초, 20.7점 6.3어시스트 5.7리바운드 3.3스틸
3. 챔피언 결정전 : 7경기 평균 35분 16초, 14.9점 5.7어시스트 4.9리바운드 1.7스틸
[이상민, 1998~1999 시즌 기록]

1. 정규리그 : 34경기 평균 36분 54초, 14.4점 7.9어시스트 4.9리바운드 2.1스틸
* 어시스트 1위 & 스틸 5위
2. 플레이오프 (4강) : 3경기 평균 36분 23초, 10.3점 8.0어시스트 5.0리바운드 3.0스틸
3. 챔피언 결정전 : 5경기 평균 37분 17초, 15.4점 6.8리바운드 6.0어시스트 1.2스틸


이상민은 대한민국 포인트가드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우선 운동 능력이 좋다. 키는 180cm로 크지 않았지만, 스피드와 탄력으로 이를 커버했다. 정교한 패스와 넓은 시야, 코트 밸런스 및 템포 조절, 적시적소에 터지는 외곽슛과 리바운드 가담까지. 포인트가드로서 교과서적인 기량을 보여줬다.


이상민은 1990년대 중반 오빠부대의 대표적인 수장(?)이었다. 연세대 시절 뛰어난 외모와 뛰어난 기량으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또한, 문경은(현 SK 감독)-우지원-서장훈 등 기라성 같은 멤버와 대학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KBL이 1997년에 창단하면서, 이상민도 프로 무대에 진입했다. 이상민의 소속 구단은 대전 현대 다이냇. 이상민은 1997~1998 시즌부터 합류했고, 조성원(현 명지대 감독)-추승균(전 KCC 감독) 등과 함께 현대 왕조의 중심이 된다.


조니 맥도웰-제이 웹, 두 외국선수가 이상민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힘과 탄력, 받아먹기에 능한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이상민의 패스 센스가 더욱 미쳐 날뛰었다.


이상민이 속한 대전 현대는 1997~1998 시즌 독보적인 팀이 됐다. 45경기로 바뀐 KBL에서 31승 14패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2위 경남 LG(28승 17패)와는 3게임 차. 이상민은 해당 시즌 정규리그 MVP가 됐다.


대전 현대의 행진은 정규리그에서 끝나지 않았다. 현대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정규리그 우승으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현대. 현대는 6강 플레이오프를 거친 대구 동양을 3-0으로 완파했다.


이상민은 시리즈 내내 최고의 득점력과 수비력, 패스 센스를 돋보였다. 4강에서만큼은 맥도웰(4강 평균 득점 : 19.3점)보다 더 많은 득점을 쌓았고, 시리즈 동안 19개의 어시스트와 10개의 스틸로 양 팀 선수 중 최다 어시스트와 최다 스틸을 기록했다. 그 정도로, 이상민의 경기력은 강렬했다.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 허재(전 KCC 감독)-강동희(K 농구교실 단장)-클리프 리드 등이 버틴 부산 기아와 만났다. 6강부터 강행군을 치른 기아였기에, 현대가 체력적으로 앞설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현대는 고전했다. 첫 2경기를 내줬다. 허재의 맹활약에 7차전까지 갔다. 그러나 현대는 마지막에 웃었다. 시리즈 첫 번째 경기에 28점을 넣은 이상민은 마지막 경기에서 20점 5어시스트 4리바운드 3스틸로 팀에 첫 번째 통합 우승을 안겼다.


프로 두 번째 시즌. 이상민을 포함한 주축 멤버가 현대에 그대로 포진했고, 재키 존스라는 수준급 외인이 들어왔다. 이상민-조성원-추승균-조니 맥도웰-재키 존스. 현대의 우승을 예측하는 게 당연할 정도였다.


현대는 33승 12패로 또 한 번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상민은 더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존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와 지속적으로 합을 맞췄기에, 더 많은 어시스트를 남겼다. 이상민은 KBL 최초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가 됐다.


현대는 또 한 번 4강 플레이오프 직행했다. 현대의 4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원주 나래였다. 나래에는 현대의 첫 우승을 괴롭힌 허재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더욱 강했다. 시리즈 내내 평균 100.3점 득점. 그 중심에는 공격을 조합하는 이상민이 있었다.


두 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 직행. 이상민이 첫 경기부터 위력을 뽐냈다. 18점 12리바운드 11어시스트로 KBL 포스트시즌 사상 첫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것. 그 후, 조성원이 폭발했고, 현대는 4승 1패로 두 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이상민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강동희 단장은 “패스나 기본기, 경기를 풀어나가는 역량이 다른 선수와는 달랐다. 외국선수만 잘 받쳐주면, 자기 센스를 충분히 보여줬던 선수다”며 이상민의 능력과 센스를 높이 평가했다.


이상민의 동료였던 추승균도 “개인적으로는 포인트가드 중 가장 잘했던 선수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어떤 걸 잘 하는지 알고, 그걸 활용할 줄 알았다. 시야가 워낙 넓고, 패스 센스도 뛰어났다. 현대가 잘 나가던 1990년대 후반을 전성기라고 보지만, 개인적으로는 2004년에 우승할 때까지 전성기를 보냈다고 생각한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이상민은 1999년 후에도 오랜 시간 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꾸준히 자기 기량을 유지했다. 오랜 시간 자기 경기력을 보여줬기에, 가지고 있는 기록도 많다. KBL 최초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도 그 중 하나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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