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6월에 진행됐으며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7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고등학교를 평정하던 소년에서 고려대 대들보로. 박무빈(187cm, G)은 고려대에 없어서는 안 될 주축으로 성장했다. 에이스 그리고 또 에이스. 앞으로도 계속 에이스일 박무빈. 그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펼쳐진다.

농구밖에 모르던 아이, 농구 찾아 삼만리
살면서 처음 흥미를 느껴본 게 농구였다. 박무빈은 농구선수 말고는 생각해본 게 없었다. 오로지 농구뿐이었다.
“아버지께서 동호회 농구를 하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농구공을 튀기며 놀았다. 그러다 때마침 원주 DB 유소년 농구 교실이 생겼다. 친구들이 모두 다니길래 나도 다니기 시작했다”. 농구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러나 농구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날 뻔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광신중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반대하셨다. 내가 농구를 좋아하는 건 아셨지만 선수까지는 시킬 마음이 없으셨다. 직업으로 삼기엔 고되기에 운동은 취미로만 하라고 말씀하셨다”며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박무빈은 농구만 잘했던 게 아니었다. 공부 머리도 비상했다. 이에 부모는 자식이 힘든 길을 걷지 않길 바랐다. “수학 빼고는 공부를 나름 잘했다(웃음).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공부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부모님 뜻을 따랐는데 꿈을 포기할 순 없더라. 막상 공부를 계속했다고 해도 무엇을 했을지 모르겠다”며 농구에 일편단심이었다.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돌아왔다. 박무빈은 농구와 끊어질 수 없는 필연이었다. “신입생으로 들어온 (김)재현이가 나랑 같은 농구 교실을 다녔다. 그리고 재현이는 스카우트 제의로 광신중으로 떠났다. 그런데 재현이가 원주에 올 때마다 실력이 늘어있더라(웃음). 재현이를 보면서 부러웠다. 농구를 계속하고 싶었다. 나도 꿈이 농구선수였는데…”.
독기로 부모의 허락을 받아냈다. “중학교 2학년까지 평균 90점을 넘기면 부모님께서 농구선수를 시켜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평균 90점을 넘겨 홍대부중을 갔다(웃음). 그러면서 부모님께서는 운동선수라고 운동만 하고 무식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고 하셨다”며 부모의 교육 철학을 밝혔다.
박무빈도 부모의 가르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에 4.2라는 좋은 학점까지 거뒀다. “부모님 생각에 동의한다. 대학교에 왔다고 공부를 놓으면 안 된다. 여기서 배우는 게 다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열심히 하려 한다”며 농구와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내고 있다.

기어이 이뤄낸 모험, 그러나 쉽지만은 않은 여정
항상 맑게 갠 날씨일 수만은 없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존재한다. 박무빈은 고려대에 적을 둔 이후, 단 한 번의 우승 트로피도 품어보지 못했다. 숙명의 라이벌인 연세대에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이 여정 속, 박무빈은 많이 부딪히고 깨졌다.
쓰라림은 컸다. “작년 2차 대회 결승 때 마지막 오픈 찬스에서 내가 슛을 넣지 못해서 졌다. 그 이후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올해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말이다. 그런데 올해도 지고 말았다”며 아쉬움에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흐린 날씨가 있기에, 맑은 날씨가 더 창창해 보이는 법이다. “원래는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런데 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무리했던 게 있었다. 중요한 경기일수록 침착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많이 배웠다”며 반성을 성장의 어머니로 삼았다.
연세대 이정현(189cm, G)을 꼭 한번 이기고 싶다. “여태까지 (이)정현이 형에게 다 완패했다(웃음). 내가 이긴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정현이 형이 졸업하기 전에 꼭 한번은 형을 이기고 싶다”며 마음을 독하게 다잡았다.

안암골 사령관은 호랑이들만을 생각하고 있다
팀 성적에서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박무빈이 한 단계 아니 그 너머 성장한 건 사실이다. 박무빈은 올해 대학리그 9경기 평균 19.4점 8.6리바운드 5.2어시스트를 작성. 지난해 리그 11경기 평균 12.4점 4.9리바운드 3.2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에 비해 확연히 높은 수치였다.
현장을 방문한 KGC 김승기 감독은 박무빈이 당장 프로에 와야 한다고 엄지를 치켜든 만큼, 박무빈의 존재감은 눈에 띄었다. 폭발적인 공격력은 기본. 팀을 이끄는 조율자로서도 그 존재가치를 더했다.
스스로도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여태까지 농구를 해왔던 것보다 고려대에 와서 배운 게 훨씬 많다. 특히 어느 타이밍에 패스하고 어느 타이밍에 패턴을 불러야 할지 많이 배웠다”며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동료의 빈자리는 박무빈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20학번 동기들끼리 시합을 같이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작년에는 (이)두원이가 아팠다. 그리고 올해 두원이가 복귀하자 (문)정현이가 부상을 당했다. 정현이가 말은 안 해도 팀이 지면 많이 미안해했다”며 고려대의 완전체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에 재능에 노력을 더했다. 평균 8.6리바운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박무빈은 공이 어디로 튈지 안다. 감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료의 빈자리를 메우겠다는 일념이었다.
“정현이가 팀에서 잘해줬던 부분들을 반씩이라도 채운다면 정현이의 빈자리를 조금은 메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정현이가 리바운드에서 잘해줬던 걸 하려 했다. 그래서 힘들지만 리바운드를 잡으려고 한 발 더 뛰어다니려 노력했다”며 노력의 가치를 알았다.
박무빈은 팀만을 바라보고 있다. “고려대에 온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팀을 끌어가고 있는 게 좋다. 그래서 내 기록이 0점이라도 괜찮으니 팀이 우승하는 걸 경험해보고 싶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웃음). 이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지는 거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며 자신보다는 팀을 더 생각하고 있다.
박무빈이 한국농구의 현재이자 미래인 이유는 그가 단순히 농구만 잘하기 때문이 아니다. 항상 팀만을 생각하는 그의 이타적인 마인드도 한몫한다.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 팀을 위해 한 발 더 뛰는 박무빈. 재능에 노력을 더한 자는 이길 수 없다.
사진 제공 = 한국대학농구연맹(K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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