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 역대 MVP] 유니폼 갈아입은 조성원, 공격 농구의 중심에 서다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0-03-07 10: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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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KBL이 지난 1일부터 4주 동안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을 계속 주시할 계획이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을 수립했고, 대처법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KBL이 당분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KBL 경기 현장을 갈 수 없고,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사실, 코로나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적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시즌이 재개될 때까지, KBL 역대 MVP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번에 이야기할 선수는 2000~2001 시즌의 조성원(현 명지대 감독)이다.


[조성원, 2000~2001 시즌 기록]
1. 정규리그 : 45경기 평균 35분 49초, 25.7점 4.0어시스트 2.2리바운드 1.5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61.0% (경기당 약 4.6/7.6)
- 3점슛 성공률 : 약 40.1% (경기당 약 3.8/9.6)

* 전체 득점 5위 & 국내 선수 중 득점 1위
* 경기당 3점슛 성공 개수 1위 (2위 : 문경은, 3.1개)
2. 플레이오프(4강) : 5경기 평균 37분 56초, 22.2점 3.8어시스트 2.2리바운드
- 2점슛 성공률 : 약 76.0% (경기당 약 3.8/5.0)
- 3점슛 성공률 : 약 34.5% (경기당 약 3.8/11.0)

2. 챔피언 결정전 : 5경기 평균 33분 11초, 21.2점 3.2어시스트 1.6리바운드
- 2점슛 성공률 : 약 56.1% (경기당 약 4.6/8.2)
- 3점슛 성공률 : 약 39.4% (경기당 약 2.6/6.6)


조성원은 현대 왕조의 일원이었다. 이상민(현 삼성 감독)과 추승균(전 KCC 감독)이 각각 경기 조율과 공수 공헌도에 힘을 실었다면, 조성원은 폭발적인 득점력을 뽐냈다. 특히, 큰 경기에서의 천금 같은 3점포로 현대를 이기는 팀으로 만들었다.


현대는 1997~1998 시즌부터 3시즌 연속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3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 진출. 1997~1998 시즌부터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두 번의 통합 우승을 달성한 팀이었다.


그러나 1999~2000 시즌 이후, 현대는 결단을 내렸다. 현대 핵심 중 한 명이었던 조성원을 창원 LG로 트레이드한 것.


조성원은 “현대에서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트레이드가 돼서 서운함이 많이 있었다. 현대에서 ‘(조)성원이를 잘못 보냈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며 당시 상황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이를 갈고 있었다.


이를 간 조성원은 2000~2001 정규리그부터 폭발력을 뽐냈다. 김태원 감독이 ‘공격 농구’를 추구하는 가운데, 조성원은 에릭 이버츠-오성식-조우현 등 공격력 뛰어난 자원과 함께 득점 쟁탈전을 펼쳤다. LG의 해당 시즌 평균 득점은 103.3점. 2위(안양 SBS, 95.5점)와는 약 8점에 가까운 격차를 보여줬다.‘


LG에서의 조성원의 비중과 역할. 현대에서와는 많이 달랐다. 조성원은 현대에서 이상민-추승균과 역할을 분담했지만, LG에서는 주축 역할을 맡았다. 특히, 에릭 이버츠와의 2대2와 빠른 공격 전개는 조성원의 가장 달라진 점 중 하나다.


조성원은 “현대에 있을 때는, (이)상민이와 (추)승균이, 맥도웰 등 해결할 선수가 많았다. 벤치 멤버도 화려했다. LG에서는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자원이 많았다. (오)성식 선수가 많은 양보를 해주면서, 내가 편안하게 공격을 했던 것 같다”며 현대에서의 자신과 LG에서의 자신을 비교했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물론 있다. 조성원은 자신의 팀을 강하게 할 줄 알았다. LG의 정규리그 2위(30승 15패)를 견인했다. 조성원은 데뷔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규리그 MVP가 됐다. 플레이오프에서만 잘 한다면, 모든 게 완벽했다.


[조성원, 2000~2001 챔피언 결정전 일자별 기록]
- 1차전 : 22분 38초, 20점(3점 : 3/5) 4어시스트 1스틸 -> LG 패
- 2차전 : 40분, 24점(3점 : 3/8, 자유투 : 9/12) 3리바운드(공격 1) 3어시스트 -> LG 승
- 3차전 : 39분 35초, 37점(3점 : 5/12) 3어시스트 2리바운드(공격 2) 2스틸 -> LG 패
- 4차전 : 30분 55초, 7점 4어시스트 2리바운드(공격 1) -> LG 패
- 5차전 : 32분 46초, 18점 2어시스트 1리바운드 1스틸 -> LG 패


그러나 조성원은 4강 플레이오프부터 난관을 겪었다. LG가 서장훈-재키 존스가 버틴 청주 SK에 고전했기 때문. 5차전까지 가는 끝에 SK를 잡았지만, 체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 챔피언 결정전 상대인 수원 삼성(4강 플레이오프에서 안양 SBS를 3승 1패로 격파)의 상황과는 너무나 대조됐다.


하지만 조성원은 끝까지 힘을 짜냈다. 특히, 2차전과 3차전에서 투혼을 보였다. 2차전에서는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3차전에서는 양 팀 선수 중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는 3차전까지 1승 2패로 삼성에 밀렸다.


마지막 두 경기. 조성원도 힘이 부친 듯했다. 4차전 야투 성공률은 20%도 되지 않았다. 장기인 3점슛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2점 : 2/7, 3점 : 0/4) 5차전에서는 분투했지만, 삼성의 아티머스 맥클래리(44점 20리바운드 2어시스트 1블록슛)와 무스타파 호프(25점 16리바운드 3어시스트)의 활약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LG의 화끈한 경기력을 기억한다. 조성원도 “LG가 공격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팀이었다. 나 또한 공격적으로 농구하는 스타일이었기에, 그런 면에서 LG와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며 자신과 LG의 궁합을 말했다.


조성원의 옛 동료였던 추승균은 “나와 포지션이 달라서, 직접 매치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점수도 많이 넣고, 2대2에 이은 공격 전개도 많이 해줬다. (조)성원이형이 공격을 주도했기에, LG가 많은 점수를 넣을 수 있었다고 본다. 그 때가 성원이형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한다”며 조성원의 2000~2001 시즌을 추억했다.


2002~2003 시즌까지 LG에서 뛴 조성원은 해당 시즌 중반 서울 SK로 트레이드됐다. 2003~2004 시즌까지 뛰다가, 시즌 중반 친정 팀이었던 전주 KCC(전신 대전 현대)로 트레이드됐다. KCC에서 또 한 번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고, 2005~2006 시즌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지금은 모교인 명지대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조성원, 2000~2001 시즌 하이라이트]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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