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전창진 감독의 든든한 왼팔’ 다재다능 멀티 플레이어, KCC 이상일 전력분석

김준희 기자 / 기사승인 : 2020-04-16 1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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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준희 기자]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3월호에 게재됐습니다(인터뷰는 2월 21일에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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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0 KBL D-리그가 열리는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체육관.전주 KCC의 경기에는 버논 해밀턴 코치와 함께 벤치에 앉아있는 스태프가 있다.


자연스럽게 통역이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의 본업은 통역이 아니었다. 다재다능, 멀티 플레이의 주인공. 바로 이상일 전력분석이다.


1라운더로 프로에 입문했지만, 그의 선수 생활은 길지 않았다.은퇴 후 매니저로 일하던 중 KCC의 부름을 받았고, 전력분석을 맡으며 ‘프런트’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 이상일 전력분석의 이야기를 <바스켓코리아>에서 들어보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전력분석 업무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전주 KCC에서 전력분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일입니다. 전력분석은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라운드가 지나가면 전 라운드에 했던 경기를 돌아보고요. 리뷰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코칭스태프분들께 전달해드리는 게 주요 업무죠. 미팅 자료를 준비하고요. 데이터나 영상을 준비해서 미팅 때 선수단에 전달하고, 코칭스태프에게 보고서를 전달합니다.


경기장을 못 가신다던데, 맞나요?
경기를 직접 가서 볼 수는 없어요. 다음에 상대해야 할 팀의 경기가 있으면 그 경기를 봐야 하거든요. 저희 경기를 볼 때도, 현장에선 안 보이지만 중계로 보면 보이는 부분이 있어요. 전체적인 팀 움직임이나, 수비적으로 잘못된 부분 등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보고 끝나고 나서 보고를 드리죠. 코칭스태프에서 문의하시는 부분도 있고요.


전력분석 업무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지 궁금해요.
팀에서 저에게 기회를 주신 거죠. 감사하게 생각해요. 처음에 매니저를 하다가, 1년 만에 전력분석이 됐죠. 완전 새로운 업무였어요. 선수 은퇴하고,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온 다음에 맡았던 게 매니저 업무였거든요. 그렇게 5년 정도 하다가 KCC로 오게 됐어요. 매니저 업무는 항상 하던 거니까 똑같았는데, 전력분석은 완전 새로운 분야더라고요. 컴퓨터나 영상을 많이 만져야 했어요. 처음 해보는 건데, 팀에서 교육받는 게 있어서 그런 것도 지원해 주시고, 여러모로 서포트를 많이 해주셨어요. 다른 팀 전력분석한테도 많이 물어보고요. 다 형, 동생이고 선수 때 알던 사람들이라서 잘 얘기해줬어요. 재밌더라고요. 제가 분석했던 게 경기에 나오면 뿌듯하기도 하고요. 반대로 뭔가 잘 안되면 제가 놓쳐서 이렇게 됐나 싶기도 하고요.


선수 때 전력분석에 대한 이미지는 어땠나요?
맨날 밤새는 형들이었죠(웃음). 항상 눈이 퀭하고, 피곤해 보였어요. 저런 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생각도 했는데, 어느샌가 그걸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처음 전력분석을 시작했을 땐 어떠셨나요.
저도 밤을 새웠죠. 손에 안 익더라고요. 1쿼터 편집하는 데 1시간씩 걸리고 그랬어요. ‘언제 끝나나’ 하면서 했는데, 라운드가 지나면서 손에 익고 시간도 단축됐죠. 이제는 1쿼터에 15분~20분밖에 안 걸립니다. 하하.


전력분석으로서 가장 공들이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아무래도 데이터 쪽이죠. 팀마다 특성들이 있어요. 팀 컬러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공수에서 패턴이나 자주 쓰는 전술이 많이 바뀌거든요. 그런 걸 최대한 빨리 캐치해서 알려드려야 그 부분에 대해 대비를 하고 경기를 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쪽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특히 지금처럼 브레이크 기간이 있으면 거의 모든 팀이 패턴을 바꿔서 나오거든요. 또 바빠지겠네요(웃음).


힘든 순간도 있으실 것 같아요.
연전이나 격일로 경기가 있을 때 정말 힘들어요. 2~3일 동안 잠을 거의 못 자요. 저희가 특히 3월에 연전이 많이 있어요. 벌써 걱정이 되네요.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가 잡아줬던 상대 패턴을 알고 미리 자르거나 막을 때요. 전력 보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잘한 게 아니라,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숙지하고, 잘 대응을 한 거죠. 저 혼자 만족하는 거예요. ‘막았구나. 다른 팀은 다 당하는데 우리는 안 당했구나.’ 하는 거죠.


전창진 감독님과도 인연이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제가 KTF 매직윙스(현 부산 KT) 당시 마지막 신인이었어요. 추일승 감독님께서 뽑아주셨죠. KT로 바뀌면서 전창진 감독님께서 새로 오셨어요. 그때는 제가 농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어요. 1군 엔트리에는 많이 들지 못했지만, 그래도 감독님께 많이 배웠어요. 힘들기도 엄청 힘들었고요. 군대에 가면서 선수를 그만두고, 매니저로 와서 감독님과 1년 정도 같이 있다가 헤어졌죠. 다시 이렇게 뵙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선수 때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매니저와 전력분석을 하면서 감독님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어요.


D리그에선 통역도 맡고 계시잖아요?
통역이라고 하기엔 정말 민망한 수준이에요. 영어를 좀 하시고 중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통역이 아니에요. 단어만 듣고 얘기해 주는 건데, 그것도 어려운 단어 나오면 조용히 하고 있어요(웃음). 어쨌든 농구 용어는 대부분 공통적이니까요. D리그를 맡은 버논 해밀턴 코치가 알아듣기 쉽게 쉬운 단어로 얘기해줘요. 제가 잘 못 알아들어도, 다시 물어보면 쉽게 풀어서 얘기해주기 때문에 그나마 통역 비슷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 맞게 영어를 구사해줘요.


D리그는 어떻게 다니시게 된 건가요?
제가 시즌 땐 1군 경기에 따라다니지 않고, 전력분석하면서 2군 선수들과 훈련을 같이 하거든요. 아무래도 2군 선수들 성향을 잘 알고 있어요. 버논 코치는 1, 2군을 오가느라 힘드니까, 제가 벤치에서 도와주는 겸해서 D리그를 같이 가게 됐죠. (버논 코치와)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통해요. 외국은 ‘브라더’로 통하잖아요(웃음). 영어는 안되지만,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저한테는 과분한 기회죠. 그동안 기록지만 적고, 구경만 했었는데 언제 또 벤치에서 이런 경험을 하겠어요. KCC에 와서 좋은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선수 출신이시잖아요. 아무래도 D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저도 선수 때 1군, 2군을 오갔었거든요. 2군에 있는 선수들을 보면 올라가고 싶어 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에, 포기하는 선수가 있어요. ‘어차피 2군’이라는 생각으로 낙담해버리는 거죠. 그게 정말 안 좋은 거거든요. 좀 더 간절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농구가 아니면 안 돼야 해요. 하루하루 버틴다는 생각은 본인한테 엄청 마이너스에요. 간절함을 베이스로 1군에 올라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어요. 좋은 케이스 많잖아요. 2군 신화를 쓰는 선수들도 있고요. 저희 팀 선수들은 열심히 해요.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이야기하면 잘 받아들이더라고요. 그 어떤 작전보다, 선수들의 의지가 가장 좋은 작전인 것 같아요. 가장 무서운 무기고요.


얘기가 나온 김에 선수 시절 이야기를 해볼게요. 2009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0순위로 프로에 입단했어요. 2011-2012시즌까지 소화하고 군에 입대한 뒤, 은퇴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선수 시절을 돌아봐 주실 수 있나요.
전창진 감독님께서 오시자마자 발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어요. 전력에서 아예 배제됐죠. 첫 시즌을 통으로 날렸어요. 두 번째 시즌 때, 재활을 다 하고 비시즌 훈련도 다 소화했는데도 콜업이 안 됐어요. 그때 KT 멤버가 워낙 좋을 때거든요. 1군 엔트리 안에 드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다른 2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낙담하고 있었어요.


근데 시즌 중에 주축 선수들이 줄부상을 당한 거예요. ‘빅맨이 필요하다’며 1군에 콜업이 됐죠. SK와 원정 경기였는데, 전날에 연습하잖아요. 감독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네가 1쿼터만 버텨주면 내일 이긴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 듣고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잤어요.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인데, 어떻게 잡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직도 그때 무슨 생각으로 경기장에 갔는지 기억도 안 나요. 그렇게 뛰었는데, 제 입으로 잘했다고 하긴 뭐하고(웃음)… 잘 버텼어요. 9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죠. ‘잇몸으로 버텼다’고 기사도 많이 나왔어요.


그때부터 1군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우승까지 하고, 시즌을 잘 보냈죠. 그다음 비시즌 땐 한 번도 못 가본 해외 전지훈련 명단에도 들어갔었어요. 근데 하필 그때 갈비뼈가 부러진 거예요. 그래서 훈련 소화도 못 하고, 시즌 때도 2군에만 있었죠. 그렇게 3년을 보낸 뒤 군대에 갔고, 갔다 와서 은퇴와 동시에 매니저를 시작하게 됐어요.


정말 우여곡절이 많으셨네요.
선수 시절에 대해 아쉬움은 있어요. 그래도 어떻게 보면, 은퇴하고 나서도 계속 농구장에 있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행운인 것 같아요.


KCC와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되신 건가요?
KT에서 2018-2019시즌까지 매니저를 했어요. 계약이 만료되면서 자연스럽게 팀을 나왔죠.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KCC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그렇게 매니저 생활을 이어가게 됐죠.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매니저 경력도 있고, 최근까지 했었고요. 단장님께서도 좋게 봐주셨어요. 제가 잘해서 온 건 아니고, 구단에서 잘 봐주신 것 같아요.


제2의 삶을 보내고 계신 거잖아요. 어떠신가요?
큰 틀에서 보면 계속 농구장 안에 있는 거잖아요. 선수 외에 세부적인 업무를 배우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전력분석 업무도 힘들긴 하지만 재밌어요. D리그 선수들도 가르쳐보고, 경기에 나가서 이기기도 하고 져보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을 하는 것 같아요.


올 시즌 KCC가 우여곡절을 많이 겪고 있는 것 같아요. 팀의 일원으로서 생각이 많으실 것 같은데.
이긴 경기, 진 경기 나눠서 계속 다시 보고 있어요. 뭐가 문제였는지 빨리 캐치하고, 보고를 드려야 정비할 수 있잖아요.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하니까요. 전략이나 전술은 감독님께서 워낙 잘하시는 부분이니까, 그거 말고 외부적으로 디테일한 부분을 찾으려고 해요. 선수들한테 얘기해줄 부분, 코칭스태프에 얘기해줄 부분을 나눠서 준비하고 있어요.


전력분석 업무를 희망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저도 이제 막 시작한 입장이라 드릴 말씀이 딱히 없지만(웃음)… 데이터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많이 경험해봐야 실력이 나올 수 있는 분야 같아요. 선수 출신이라고 해서 농구를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비선수 출신이라고 농구를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데이터가 대부분 맞긴 하지만, 특히 농구는 경우의 수가 많잖아요. 많이 보고, 케이스를 많이 접해야 할 것 같아요. 어느 일이든 경험이 좋은 무기니까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도 많이 봐야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평소 인터뷰를 많이 하시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이번 기회를 빌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우선 부모님께 제일 감사해요. 제가 늦둥이거든요. 저 학생 때 고생 많이 하시고, 호강도 못 시켜드렸어요. 죄송하면서도 감사해요. 그리고 그동안 선수 생활하면서 가르쳐주신 모든 분께 감사해요. 특히 저를 프로에 뽑아주셨던 추일승 감독님이 기억에 남아요. 경기장 가면 인사도 해주셨거든요. 이제 감독직을 내려놓으셨는데,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수 시절 많이 들어본 질문일 것 같아요. 목표와 각오 부탁드립니다.
선수 때나, 스태프 때나 목표는 똑같아요. 우승이죠. 선수 때는 정규리그 챔피언 티셔츠랑 모자를 받았어요. 스태프로서도 우승을 경험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우승 반지를 껴보는 게 목표입니다.


사진 제공 = KBL,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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