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빅맨을 넘어 장신 포워드를 꿈꾸는 대전고 이규태

김영훈 기자 / 기사승인 : 2021-01-21 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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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11월에 진행되었으며,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0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현대농구에서 빅맨은 골밑 플레이만 강요받지 않는다. 해외에는 2m 넘는 빅맨도 3점슛을 쏴야하는 시대가 온지 오래되었다.

자연스레 한국 농구에도 점점 빅맨들이 외곽포를 던지는 추세가 많아지고 있다. 대전고의 이규태(2학년, 200cm)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2m의 신장에도 골밑 플레이만 하지 않고, 포워드 못지않은 3점슛 능력을 자랑한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장신 포워드도 꿈꾸고 있다. 바스켓코리아에서는 트렌디한 빅맨 이규태의 이야기를 다뤄보았다.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얼마 전부터 주말리그가 시작되었어요. 그래서 계속 운동하고 있죠.

1년 만에 대회라 반갑겠네요.
오랜만에 뛰어서 그런지 긴장이 되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기쁘고 설레기도 했어요. 그래도 지난해 보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는데, 경기에서 나오는 것 같아 좋아요.

대전고 최병훈 코치님은 골밑에서 몸싸움이 좋아진 거 같다고 칭찬하시더라고요.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나요?
네. 아무래도 저희 권역에 있는 팀들이 신장 좋은 센터들이 없어요. 그런 점들을 활용하기 위해 더 골밑에서 하려고 해요. 몸싸움도 강하게 하고요. 포스트에서 하는 모습을 코치님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당연히 주말리그 목표는 우승이죠?
그럼요. 저희 코치님이 아직 우승 한 번도 해보지 못하셨어요. 그래서 우승 한 번 시켜드리고 싶어요(하지만 이규태의 꿈은 현실로 이뤄지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면서 중고농 구연맹은 남은 주말리그 일정은 물론, 왕중왕전 역시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상황을 볼 때 올해에 다시 주말리그가 재개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가장 견제되는 우승팀은 어디에요?
당연히 홍대부고와 용산고요. 여준석도 있는 용산고가 가장 강해 보이기는 해요.

그럼 대회 전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어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어요. 그동안 살짝 좋지 않았던 부분도 치료하고 휴식도 취했어요. 마냥 쉰 게 아니라 웨이트도 하고 슈팅 훈련도 했죠. 평소에도 오후 운동이 끝나고 슈팅을 던지기도 하는데, 야간과 주말에도 시간을 내서 슈팅을 키우려고 했죠.

한국 유소년 농구에서 2m의 신장에 3점슛은 무언가 어울리지 않아요. 센터라면 사실 골밑에만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떻게 3점을 던지게 되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故박광호 코치님이 너도 나중에 프로 가서 포스트에서만 할 수 없으니 3점을 던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던지기 시작했죠. 코치님이 도움도 많이 주셨어요. 매우 감사하죠.


그럼 시간을 조금 더 돌려서 농구 초창기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시작이 남들보다 많이 늦었어요.

그렇죠.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어요. 동아리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제 키를 보시고 대전중에서 스카우트가 들어왔죠. 제가 그때 벌써 190cm 였거든요.

키가 어렸을 때부터 컸다면, 그전에도 농구 제의를 받았지 않았나요?
사실 농구를 시작한 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스카우트가 왔죠. 법동초에서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학원 빠질 생각에 바로 농구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만에 그만뒀어요(웃음).

한 달 만에 포기했던 농구를 다시 시작한 이유는요?
중학교 1학년 때 동아리 농구를 했어요. 그런데 재미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드리블도 못했어요, 단순히 키가 커서 리바운드 잡고 골밑슛만 넣었죠. 그러면서 점점 농구의 맛을 알았어요. 그러다가 대전중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고,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겠다고 결심했어요.

늦게 시작했으니 유급을 했겠네요.
네. 바로 코치님이 유급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었죠. 그래서 1년 동안 학교도 나가지 않고 오후에 팀 운동만 계속 같이 했어요. 체력적으로 따라가기 힘들었는데 코치님이 배려해주셔서 쉽게 적응했죠.

1년 동안 농구를 알아간 이규태는 2017년 열린 협회장기에서 처음으로 공식 대회에 출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규태에게 혹독한 신고식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그는 4경기 평균 22.5점 18.7리바운드를 기록하는 괴력을 뽐냈다. 또한, 팀도 준결승까지 이끌었다.

첫 대회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첫 경기가 아직도 생각나요. 금명중과의 경기였는데, 엄청 긴장했어요. 점프볼 뜨고 나서부터 긴장이 풀렸죠. 확실히 동아리 농구를 하다가 전국대회를 나가니 기본기가 좋고 선수들 높이도 좋아서 처음에는 겁을 먹었죠. 몸싸움도 힘들었고요. 그런데 경기를 하니까 조금씩 늘었어요. 그러면서 점점 농구를 알아갔죠.

첫 대회 3위를 하면서 주목을 받았어요. 갑작스 러운 이슈가 부담도 되었나요?
첫 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오르고, 왕중왕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어요. 그러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죠. 기사도 나가고 하면서 다른 팀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지나가면서 ‘쟤가 걔다’고 하는 이야기가 들리더라고요. 당황도 하고 부담도 되었어요. 한편으로는 기분도 좋고,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생겼죠.

그런데 아직 우승 경험이 없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소년체전에서 호계중을 만났어요. 우승을 할 수 있는 기회였죠. 그런데 결승에서 친구가 2분 만에 부상을 당하면서 전력이 약해졌어요. 그래서 삼선중에게 졌어요. 물론, 제가 조금 더 잘했다면 우승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아쉬움이 있죠. 두고두고 아쉬운 순간이죠.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눈물을 삼켜야 했던 이규태. 그는 무대를 고등학교로 옮겼다. 대전고에 진학한 이규태는 2019년 1학년임에도 눈에 띄는 기량을 선보이며 순조롭게 고등학교 무대에 적응했다.


고등학교 무대는 어땠어요?
힘에서 많이 밀린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특히, 지난해에 (김)형빈이 형, (이)원석이 형, (차)민석이형 등 좋은 빅맨 형들이 많았어요. 형빈이 형과는 힘에서, 원석이 형에게는 높이에서 밀렸죠. 중학교 때는 키로 할 수 있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웨이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것만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전술적으로도 훨씬 체계적이었죠. 팀이 얼리 오펜스를 추구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거든요. 전술적으로 녹아들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최병훈 코치님이 도와주셔서 이제는 적응을 마친 상태에요.

적응을 마쳤으니 이제 보여줄 일만 남았는데, 대회가 없어졌잖아요.
그러니까요. 동계 훈련 때 연습경기도 하면서 열심히 준비했는데, 끝나고 나니까 집에서 쉬라고 하더라고요. 집에서 푸쉬업, 복근 운동같이 간단한 운동 밖에 못했어요. 그리고 학교로 돌아와서 대학 팀과 많이 붙어봤는데, 하면서 점점 경기력이 올라오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코로나로 대회만 계속 취소되면서 아쉬움만 삼켰죠.

만약 대회를 치렀다면 대전고의 전력은 어느 정도 되었을까요?
솔직히 4강 안에는 들었을 거 같아요. 운만 잘 따랐다면 결승 또는 우승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었던 전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앞으로 이규태 선수가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은 어떤 선수인가요?
내외곽 가리지 않고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굳이 따지면 장신 포워드가 되고 싶죠. 송교창, 양홍석 선수처럼요. 코치님도 제가 3번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세요. 지금은 팀 사정상 4번이나 5번을 보고 있지만, 계속 3번 포지션도 연습하고 있죠. 개인적으로 외곽에서 플레이하는 게 더 재밌는 거 같아요.

끝으로 미래의 목표가 있다면요?

우선 내년에는 전국체전 우승이 목표에요. 앞으로더 열심히 해서 나중에 프로도 가고 성인 국가대표도 해보고 싶어요. 지금 생각한 꿈은 이 정도에요.

사진 = 본인 제공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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