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제주도로 정착한 정락영, 스킬 트레이너로 변신하다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0-12-01 15: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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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10월호에 실렸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독 링크)


정락영, ‘선수 정락영’을 되돌아보다


정락영 트레이너는 1998년 KBL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2라운드 5순위(전체 15순위)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 선발됐다.
그 후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와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부산 KTF(이상 현 부산 kt)를 거쳐 서울 SK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1시즌 동안 총 477경기에 나서 평균 22분 5초를 뛰었고, 5.3점 3.4어시스트 2.5리바운드에 1.4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파이팅 넘치는 수비와 빠른 경기 운영 등으로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은퇴 후 정락영의 소식을 아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9월 9일 정락영과 연락이 닿았고, 정락영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 정락영에게 우선 자신의 선수 시절을 돌아봐달라고 말했다.

농구 팬들과 오랜만에 인사하실 것 같은데요. 우선 자기 소개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저는 현재 제주도에서 농구 관련 일을 여러 가지 하고 있습니다. 국제학교에 농구 강사로도 나가고, 개인적으로 농구교실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스포츠클럽(JSC)에서 강사로도 일하고 있고요. 지금도 농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선수 정락영’을 잘 모르시는 팬들을 위해, 본인의 선수 시절을 간단히 돌아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998년이었을 거에요. 동양 오리온스에 2라운더로 드래프트됐고, 3년차 때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로 이적했습니다. 팀명이 코리아텐더로 변경됐고, 팀 사정이 좋지 않아 어렵게 생활했습니다. 그러다가 팀이 KTF로 인수됐고, 2005년도에 서울 SK로 트레이드됐습니다. SK에서는 2009년에 은퇴를 했고요.

많은 분들이 여수 코리아텐더 시절을 떠올립니다. 본인 스스로 그 때를 돌이켜본다면 어떠셨는지요?
성적은 둘째치고, 농구 인생을 제일 재미있게 보낸 시기 같아요. 농구를 가장 재미있게 했었죠. 어릴 때 좋아하는 마음으로 농구를 시작했었는데, 그런 마음이 또 한 번 느껴졌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제가 재미있고 제가 즐거워하니까, 팬들도 즐거워하셨던 것 같아요.

‘재미있게 했다’. 인상적인 말입니다.
제가 원하는 농구를 했고, 제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농구할 수 있었어요. 그게 농구를 즐기면서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봐요.

팀에서 원하는 농구 스타일과 본인 스타일이 맞지 않았다면, ‘재미’라는 단어를 꺼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팀에서 추구하는 건 ‘빠른 농구’와 강한 수비’였어요. 수비와 리바운드에 먼저 집중하고, 리바운드 후 5명 모두 달렸죠. 공격에서는 찬스 나면 3점이든 2점이든 자신 있게 공격했죠. 관중들이 보기에 엄청 빠르고 보는 재미가 있었을 것 같아요. 선수들도 그런 농구를 좋아했죠. 어떻게 보면, 요즘 농구 트렌드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정락영이라는 농구 선수를 떠올릴 때, 기억에 남는 게 또 하나 있습니다. 부산 KTF 시절 독일 K1X사에서 ‘Rock-Young’이라는 시그니처 농구화를 지닌 유일한 국내 선수였는데요.
선수의 사인까지 넣어서 농구화를 만드는 건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선수들도 많았는데, 저한테 그런 제안을 해주신 건데 감개무량했죠. 감사한 마음이 컸어요. 회사에서 저에게 해주신 만큼, 저도 열심히 신고 뛰었죠.

은퇴 그리고 제주도행

정락영은 2009년 은퇴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러나 아쉬움만 안을 수 없었다.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락영은 은퇴 후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여러 경험을 쌓았고, 제주도로 정착했다. 제주도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를 계속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은퇴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것 같은데, 은퇴 과정과 심경이 궁금합니다.
은퇴라는 건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물론, 아쉬운 건 맞아요. 거의 반평생을 농구장에서 산 사람이 코트에서 더 이상 뛸 수 없다는 게…
그렇지만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면서 수긍을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금방 편해졌어요.

은퇴 후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은퇴 직후에는 SK에서 2년 정도 전력분석원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농구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기회가 와서 배움과 경험을 얻었죠.
영업 관련 일을 4년 정도 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에도 있었죠. 제 밑에 있는 직원들을 교육도 시켜보고, 제가 교육시킨 직원들을 현장에 보내보기도 했죠. 농구와 다른 인생을 처음 살면서, 사회인으로서 갖춰야 할 것들을 배웠던 것 같아요. 그 때 경험했던 게 지금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고요.
그리고 2018년에 제주도로 내려왔어요. 예전부터 내려오고 싶었는데, 기회가 찾아왔고 제주도에서 농구 관련 일을 하게 됐죠.

하필 제주도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예전에 전지훈련으로도 온 적이 있고, 여행도 온 적이 있습니다. (제주도가)너무 괜찮다고 생각했죠. 제가 술이나 유흥을 좋아하지 않아서, 제주도 같은 환경에서 살면 좋겠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제주도가 농구 불모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가 제주도 농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막상 와보니, 제주도는 농구 불모지가 아니었어요. 사람들의 열정이나 관심도가 생각보다 높더라고요. 다만, 인프라가 부족한 것 같아요. 농구를 가르쳐줄 사람도 부족하다고 느꼈고요. 제가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제주도에 온 정락영, 그의 지도 철학은?

정락영은 제주도에서도 농구를 하고 있다. 엘리트 선수들이 아닌 일반 동호인을 상대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스킬 트레이닝을 통해 이전보다 농구를 더 많이 공부했다. 농구를 대하는 태도 역시 이전보다 진지해진 듯했다. 자신의 지도 철학도 확립한 것 같았다.

제주도에서의 일과가 궁금합니다.
예전의 일상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코로나19’ 때문이죠. 현재 제주스포츠클럽(JSC)에서 하는 일을 못하고 있고, 제가 운영하는 농구교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보통 12시에 농구교실로 출근해서 개인 레슨을 소화하고, 오후 5시에 농구교실 스케줄을 시작합니다. 그 후에 단체 수업을 하죠. 보통 오후 8시 30분에서 9시 정도에 일정을 마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중간에 NLCS라는 국제학교에서 농구 강사 일을 하기도 합니다. 주 3회(화목토)에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학생들을 가르치죠.

주로 어떤 분들을 가르치시나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일반 동호인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제주스포츠클럽에서는 성인 스킬 트레이닝을 많이 했었고, 국제학교에서는 고등학생과 중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농구교실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반 동호인을 가르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본인이 그 동안 해왔던 농구와는 분명 다를 건데, 어려운 건 없으셨나요?
분명한 건 제가 배웠던 대로 가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수강생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공부했습니다.
선수 시절의 경험에 의존하거나 막무가내로 가르치면, 절대 좋은 내용을 알려줄 수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경험에 공부한 내용을 보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도 ‘저 사람은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경험에 의해서만 가르치는구나’고 생각하죠.
물론, (공부 없이도) 처음에는 어느 정도 가르칠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러나 갈수록 밑천이 드러나죠. 그리고 사람들이 농구 전술이나 농구 용어 등 많은 걸 공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제가 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해요. 또한, 요즘 많이 쓰는 용어를 알아야 하고요.
무엇보다 실제로 해야 하는 것과 실제로 쓸 수 있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수준에 따라 프로그램 내용과 레벨도 달라야 하고, 목표 지점이 어디냐에 따라 엘리트 수준으로 가르칠지 동호인 수준으로 가르칠지도 판단해야 합니다.
재미있게 가르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농구는 멋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한테 농구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멋있고 재미있게 해야, 하는 사람도 재미있으니까요.
궁극적으로 위에 말씀 드린 목적과 취지에 맞추려면,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 면에 가장 많이 중점을 맞추고 있죠.

감독이나 코치는 아니지만, 어쨌든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트 농구, 나아가 프로 팀 지도자를 꿈꿔봤을 것 같기도 한데요.
엘리트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과 일반인들을 가르치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진로입니다. 특히, 엘리트 선수들을 지도하는 사람은 담당 팀 선수들의 진로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게 엘리트 팀의 감독이나 코치가 지녀야 할 책임감이자 부담감이라고 봅니다. 일반인을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아무래도 그런 부담감이 덜합니다.
그리고 엘리트 팀을 맡을 기회가 없었어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보다 뛰어난 지도자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엘리트 선수들을 지도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농구를 좋아하는 동호인이나 학생들, 혹은 스킬 트레이닝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게 저한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킬 트레이닝을 개인 실력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트 선수든 일반 동호인이든 말이죠. 육체적이고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숙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도 봐요. 그런 방향에 맞게 스킬 트레이닝을 발전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농구 발전에 기여하겠다”


제주도에 정착한 정락영. 정락영의 목표는 확고했다. ‘제주도 농구의 발전’이었다. 해야 할 일이 많고 어려움이 많지만,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고 싶었다. 목표 실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지금의 생활에도 만족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사실 농구와 관련되지 않은 일을 할 때도, 농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중국이나 베트남에 있을 때도 농구할 곳을 찾았어요. 쉬는 시간에도 농구를 하곤 했죠.
이것저것 다 해보니,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농구더라고요.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하듯(웃음), 제가 평생 해왔던 농구를 직업으로 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스킬 트레이닝을 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농구 기술을 알려주는 걸 즐거워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내가 농구를 정말 많이 좋아하는구나’라고 새삼 느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제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게 정말 만족스러워요. 농구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했죠.

농구는 본인의 인생에 큰 의미로 다가오겠군요.
그렇죠. 뗄래야 뗄 수 없죠. 학창시절과 대학교, 젊었던 시간들.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기를 농구와 함께 했으니까요
그래서 농구는 제 인생이에요. 식상하게 느끼실지 몰라도, 어쩔 수 없어요.(웃음) 어린 시절부터 하루에 10~12시간을 농구와 함께 했어요. 농구를 빼면 제 인생을 생각할 수 없죠.
또한, 농구 때문에, 제주도에서 저를 많이 알아봐주시고 챙겨주신다고 생각해요. 농구 덕분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도움도 많이 받고 있어요.
농구가 아니면, 정락영은 없어요. 정락영의 인생도 지금과 같진 않았을 거에요. 그만큼 농구는 제 인생의 핵심이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코로나19’가 조금 사그러든다면, 제가 운영하고 있는 농구 교실을 조금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제주스포츠클럽(JSC)에서 하고 있는 성인 스킬 트레이닝도 마찬가지고요.
많은 분들이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강습료는 저렴하지만, 퀄리티가 높거든요.(웃음) 많은 분들이 퀄리티 높은 트레이닝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주 농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요. 현재 제주농구협회나 제주농구심판협회에도 소속이 됐는데, 시간을 많이 못 냈어요. 협회 관련 일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는데, 그 점은 죄송스러워요. ‘와주시기만 해도 감사하다’는 말로 저를 편안하게 해주시지만, 저는 많이 죄송스러워요.
제주도에서 평생을 살 건데, 제주도에서도 육지처럼 다양한 농구 인프라를 접할 수 있게 돕고 싶습니다. 그게 제주도 농구를 발전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 소망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자신을 보고 싶어하는 농구 팬들에게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를 정말 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습니다.(웃음) 하지만 만약에 있다고 하면, 코리아텐더 시절을 추억하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과 농구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정락영이라는 선수가 있었구나’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농구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새로운 시작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분들과 새로운 만남으로 제2의 농구 인생을 살고 있죠. 제2의 농구 인생을 잘 보낼 수 있도록 팬들의 많은 응원 부탁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주스포츠클럽(JSC)를 통해 향후 제주 생활스포츠의 저변 확대 및 발전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려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수업 및 활동이 중단된 상태지만, 농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브레인 바스켓' 이라는 유튜브 채널로 농구를 알리고 있습니다. 끝으로 타지에서 온 저에게 언제나 따뜻함으로 맞아주시는 제 주위 모든 제주도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사진 = KBL 제공, 정락영 본인 제공

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sdh2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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