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현, 그는 긍정의 연쇄작용을 증명하고 있다

황정영 기자 / 기사승인 : 2021-02-27 10: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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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으로 든든한 사람이 있다.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주는 사람. KGC에서는 우동현이 그런 존재다.

우동현 하면 생동적인 응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동현은 코트에서 팀원들이 좋은 활약을 할 때면 이에 힘찬 모션으로 보답한다. 또한, 무관중일 때는 경기장에 우동현 목소리만 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목이 터져라 팀을 응원하는 그다. 카메라 감독도 이를 아는지, 중계 화면에 득점한 선수보다 우동현을 더 많이 잡아주기도 한다.

팀원들도 우동현의 응원을 믿고 있다. 팀원들은 우동현에게 ‘빠지면 안 되는 중요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동현이 이토록 응원을 열광적으로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동현은 “워낙 성격이 긍정적이고 텐션이 높아서 그런 리액션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뭐든 표출해야 하는 스타일이라 주체를 못 한다. 이번 시즌부터 응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사실 항상 이래 왔다(웃음)”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응원이 주목을 받으며 자연스러움에 제동 아닌 제동이 걸렸다. 그는 “주목을 받으니까 오히려 사리게 되더라. 행동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우동현의 응원에는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언제나 한결같은 텐션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조정에 따라 KGC도 3월 1일부터 관중 입장을 허용한다. 다시금 경기장을 찾게 되는 관중들에게는 우동현의 리액션 역시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우동현은 팀 내 멘탈코치도 자처하고 있다. 수혜자가 많다. 우동현은 “(전)성현이 형, (이)재도 형, (변)준형이, (김)경원이한테 큰 몫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이지만(웃음)”이라며 수혜자 리스트를 열거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시로 이재도를 들었다. “1라운드 때 내가 바라는 재도 형의 플레이가 잘 안 나왔다. 재도 형의 장점은 돌파로 인해 득점을 올리는 공격인데, 그런 모습이 전혀 안 나오더라. 그래서 그런 모습을 많이 요구했다. 연습할 때는 재도 형을 수비하면서 ‘어차피 슛 안 쏠 거잖아’하고 떨어졌다. 일부러 자극한 거다. 시합 때는 벤치에서 2대2 플레이로 미들슛 보라고 많이 말했다. 그래서 재도 형이 2라운드 때 포텐을 터트렸다” 우동현이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말한 이야기다.



눈에 띄는 응원과 멘탈코칭, 모든 것의 근본은 우동현이 가지고 있는 긍정성이다. 이 긍정성의 원천을 알려면 우동현의 농구 인생을 알아야 한다.

우동현은 초등학생 때 6살 터울의 형을 따라 농구를 시작했다. 그의 형은 농구를 취미로 했지만, 엘리트 고등학교에 스카웃 제의를 받을 정도로 잘했다. 형은 그런 자신의 실력을 우동현에게 그대로 전수했고, 우동현은 엘리트 유소년 농구단 취미반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취미반에서 차출돼 엘리트 대회에서 활약하는 우동현을 보고 부모님은 이내 허락했다.

경남중에 입학해 정식으로 농구를 시작한 우동현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느꼈다. 이제까지 해오던 기술 위주 농구와 차원이 달랐다. 계속되는 체력운동에 어려움을 겪은 그는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농구를 그만두게 됐다. 그 시기 금명중에서 농구부가 창단됐다. 아버지의 설득과 금명중의 스카웃 제의로 우동현은 3학년 때 금명중으로 전학해 다시 농구공을 잡았다.

동아고 시절에는 3학년 때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2014년 KBL 캠프에 참여하고, U18 상비군에도 들었다. 고교무대에서 자신을 입증한 우동현은 대학 입학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명지대 입학과 함께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당시 1학년이었던 그는 출전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고, 농구도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동현은 회의감과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였다. ‘부정적’과 ‘우동현’, 지금으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단어 조합이다.

그는 농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부모님. 우동현은 초등학생 때부터 자신을 지지해준 부모님의 정성을 져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그것은 불효였고, 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한 것에 반성했다.

그렇게 우동현은 마음을 바로잡았다. 매 순간 긍정을 되새겼고, 기본기부터 다시 연습했다. 매일 야간 2~3시간가량을 드리블에만 쏟았다.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1학년 2학기 때부터 기회를 잡고 주전으로 올라섰다. 거의 모든 경기에서 풀타임을 뛰게 된 우동현은 그 기점으로 실력이 부쩍 향상됐다.

이에 부모님도 힘을 실어주었다. 우동현은 “어머니가 ‘마음 내려놓고 푹 자라. 무한 긍정의 힘을 믿어보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별말 아닐 수 있는데 그 말을 잊을 수 없다”며 웃었다. 여기까지가 ‘긍정동현’의 탄생 비화다.

그의 긍정은 그때부터 계속되어 4학년 때 결실을 맺었다. 2018년 6월 28일, 건국대와의 경기에서 3점슛 10개 포함 53득점을 하게 된다. 이는 훗날 드래프트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우동현은 201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0순위로 SK에 입단했다. 이후 D리그에서 신인 최초 트리플-더블(21득점 11리바운드 10어시스트)을 기록하는 등, 준수한 성적으로 2군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번 시즌, 그는 KGC로 향했다. 배병준과의 1대1 트레이드가 성사된 것. KGC로 이적한 뒤에는 1군 무대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거의 모든 경기 엔트리에 들며 단 몇 초라도 코트를 밟고 있다.

이렇게 우동현은 긍정을 만들었고, 그 긍정이 다시 우동현을 만들었다.



KGC에서 우동현은 그야말로 사랑둥이다. 선수들은 선후배 할 것 없이 우동현을 아끼고 좋아한다. 우동현의 꾸밈없는 태도 덕분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진한 브로맨스를 자랑하는 선수가 있다. 바로 전성현이다. 만약 프로농구에 베스트 커플상이 있다면 이 두 사람이 따놓은 당상일 것.

전성현은 우동현이 KGC로 이적하고 가장 먼저 다가와 줬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려던 우동현에게 밥은 어떻게 할 거냐 물었고, 우동현이 집에 가서 먹는다고 답하자 같이 먹자며 기꺼이 밥을 사줬다. 이때 우동현과 전성현은 초면이었다.

우동현은 “처음에는 성현이 형 느낌이 무서웠다. 그런데 대화를 해보니까 나랑 성격이 비슷하더라. 그래서 같이 다니는 시간이 많았고, 더 금방 친해지지 않았나 싶다”며 케미의 요인으로 둘의 비슷한 성격을 꼽았다.

 


우동현은 이제 경기 외적인 것보다 경기적인 요소로 인정받고 싶다. ‘응원단장’도 ‘멘탈코치’도 좋지만, 그전에 농구선수로서 각인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우동현에게 FIBA 아시아컵 예선 기간은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만약 일정이 그대로 진행됐다면, 변준형이 빠진 채로 리그가 재개됐을 것이다. 따라서 변준형의 백업 역할을 하던 우동현의 출전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날 수 있었다.

선수의 안전과 팀 전력을 따졌을 때는 국가대표 일정 취소가 다행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울 수 있는 우동현이다. 이에 그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준형이가 있다면 팀 성적이 좋아질 거다. 팀적으로 좋은 일이다”고 팀을 우선시했다.

출전 시간이 많지는 않으나 우동현은 항상 자신 있다. 여전히 긍정적인 마인드를 경기에 대입하고 있기 때문. 우동현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는 어떻게 그 시간을 활용했을까. 그는 “일단 수비로서 존재감을 알리고 공격으로서 자신감을 보여주고 싶다. 여유를 장착해 형들의 체력을 안배해주면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소망을 밝혔다.

우동현은 긍정에 따른 경기 외적 효과로 주목받았다. 이제 경기적인 부분에서 주목받을 차례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그가 주전으로 올라서 ‘응원단장’이 아닌 '농구선수', 그리고 ‘에이스’로 불리길 바란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황정영 웹포터 i_jeong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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