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선수 생활 마침표’ 양동근, 그의 1부터 10까지 돌아보다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0-05-30 07:5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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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5월호 웹진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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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은 지난 4월 1일 선수 생활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Intro. 2020.04.01, 믿을 수 없었던 소식


‘KBL 역대 최고의 선수’, ‘모비스의 심장’. 두 가지 어구만으로도 설명 가능한 선수가 있다.
양동근이다. 그런 그가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언제나 선수로서 코트를 뛸 것만 같았기 때문.
게다가 양동근이 은퇴 기자회견을 하기로 한 날은 2020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양동근의 은퇴를 더욱 믿을 수 없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양동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기자회견 장소인 KBL센터에 나타났다. 준비해온 원고를 차분하게 읽었다. 원고를 읽으며, 자신의 농구 인생을 지지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코트에서 항상 냉정하고 밝았던 양동근. 원고를 읽던 중 눈물을 참지 못했다.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과 가족 이야기를 할 때,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감정을 다잡은 양동근은 준비한 원고를 다 읽었다.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을 시작했다.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그리고 양동근의 프로 인생을 함께 했던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이 자리에 앉았다.
유재학 감독은 “시대마다 농구가 달랐고, 선수의 팀 내 역할이나 플레이 스타일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기량만 놓고 보면, (양)동근이를 KBL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하는 게 조심스러운 이유죠”라며 쉽게 말하지 못했다. 애제자의 기량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팬들한테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사례는 (양)동근이가 최고이지 않나 싶어요. 게다가 인격적으로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컸어요. 그런 부분에서도 동근이가 최고죠”라며 양동근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선수 평가에 냉정했던 유재학 감독. 그런 사람이 양동근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양동근은 그런 선수였다. 하지만 양동근은 떠났다. 양동근이 선수로 뛰는 걸 더 이상 볼 수 없다. ‘코로나 19’로 인해 마지막 시즌을 제대로 치르지도 못했다. 은퇴 투어 같은 거창한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기자는 양동근을 이렇게 보내기는 싫었다. 기사 작성에 더욱 신중을 기했다. 이전보다 나은 기사를 적기 위해 노력했다. 기자의 기사가 비록 특별하지 않지만, 어떻게든 레전드를 향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양동근의 ‘1’부터 ’10’까지 돌아보기로 한 이유였다.


#1 : 1순위 그리고 자랑거리


2004년 2월 4일.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가 열린 날이다.
양동근한테 남다른 의미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전체 1순위로 프로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1’은 양동근의 시작을 상징하는 숫자라고 볼 수 있다.
양동근은 전주 KCC의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가 RF 바셋을 KCC에 내주는 조건으로 KCC로부터 1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받았다. 양동근이 울산 모비스로 향한 이유였다.
양동근은 “1순위로 뽑혔을 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 때 최악의 드래프트라 불렸고, 제 아래 학번들이 많이 나온 상황이었거든요. 동기들이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후배들보다 동기 중에 빨리 가는 선수가 나오면 좋겠다고 말이죠.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라며 드래프트를 회상했다.
그렇게 양동근의 프로 생활이 시작됐다. 데뷔 시즌 정규리그 52경기에 나서 평균 33분 10초를 뛰었고, 11.5점 6.1어시스트 2.8리바운드에 1.6개의 스틸로 맹활약했다. 프로에서 한 번만 받을 수 있다는 신인상을 차지했다.
양동근과 ‘1’을 엮어주는 건 또 하나 있다. 아시안게임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가지고 있다. 특히,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금메달 1개는 양동근의 농구 인생에 큰 자랑거리로 남아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딴 이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릴 때까지 많은 경험을 했죠. 아시아선수권이나 농구 월드컵 등 많은 국제 대회를 비슷한 멤버들과 함께 했어요. 거의 같은 멤버들과 오랜 시간 조직력을 맞춰온 게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연결됐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대표해서 아시안게임처럼 큰 규모의 대회에서 우승한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소속 팀에서 우승할 때도 좋았지만, 대표팀 소속으로 1등은 어마어마한 성과라고 생각해요. 아무나 획득할 수 있는 금메달도 아니고, 더군다나 아시안게임이었잖아요. 그래서 더 크게 다가온 것 같아요”

물론, ‘1’과 관련해 좋지 못한 추억도 있다. 양동근의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 횟수가 1회. 양동근이 속한 모비스는 2005~2006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서울 삼성에 4전 전패를 당했다.
그러나 2005~2006 준우승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 경험이 양동근을 성장하게 했고, 양동근은 그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를 얻었다. 역대 최고로 오를 수 있는 발판 같은 느낌이었다.


양동근은 KBL 데뷔 후 2번의 평균 스틸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KBL 역대 스틸 개수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2 : 레전드가 된 이유, 수비


양동근의 수비는 남들과 다르다. 소위 말해, ‘Another Level’이다. 자세와 압박 강도 자체가 다르다. 같은 포지션 대비 스피드와 힘 모두 좋기에, 힘과 스피드로 하는 수비 모두 가능하다.
양동근의 수비 특징은 이렇다. 상대 볼 핸들러를 힘으로 압박한 후, 스피드로 상대 볼 핸들러를 고립시킨다. 아예 드리블 자체를 봉쇄하는 경우도 많다. 빅맨의 스크린도 잘 빠져나오기에, 2대2 수비 또한 능하다.
2009~2010 시즌 KBL에 처음 입성한 전태풍은 양동근의 수비를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양)동근이 수비는 정말 개 같다”고. 물론, 전태풍이 한국어 더 서투른 때였다. 그래서 표현을 다소 격하게(?) 했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계속 압박하는 양동근의 수비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그게 전태풍의 진정한 의도였다.
힘과 스피드에 근성까지 갖춘 양동근이 수비를 잘 하는 건 당연했다. 거기에 경험과 요령을 더했다. 노련한 수비로 상대를 더욱 몰아붙였다.
그 증표는 스틸을 통해 알 수 있다. 양동근은 KBL 역대 선수 중 스틸 2위(981개)를 차지했다. 1위인 주희정(1,505개)와의 누적 개수 차이가 크지만, 경기당 평균 스틸 개수(경기당 1.5개)는 그렇지 않았다. 꾸준함과 효율성 모두 높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양동근은 데뷔 후 두 번의 스틸 1위(2009~2010 : 2.1개, 2014~2015 : 1.8개)를 차지했다. ‘2’와 ‘양동근의 수비’를 함께 엮은 이유. ‘2’와 관련된 양동근의 지표를 알려주고, 양동근에게 스틸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다. 양동근의 대답은 이랬다.
“패스하는 사람을 막는 수비수가 패스를 부정확하게 주도록 유도하면, 저한테 부정확한 패스가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 스틸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리고 빅맨이 골밑 밖으로 볼을 빼줄 때, 볼 핸들러가 돌파하다 빼줄 때, 스틸을 많이 할 수 있어요. 빅맨들이 도움수비하러 3점 라인까지 올라올 때, 제가 볼 핸들러의 볼을 긁는 경우도 있었고요. 결국 동료들의 도움이 있어야, 스틸이 가능해요.
제가 스틸을 많이 한 건 잘 몰랐어요. 그렇지만 스틸을 할 수 있는 상황은 너무 많기 때문에…(동료들이 스틸할 수 있는 상황을 잘 만들어줬기에, 자신의 스틸이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역시 겸손의 제왕다웠다)
(기자가 스틸할 수 있는 상황을 다 생각한 게 아니냐는 추가 질문에) 그런 상황(스틸을 할 수 있는 상황)들을 다 생각하고, 수비에 임하긴 어려워요. 다만, 농구를 오래 하다 보면, 스틸할 수 있는 상황들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가드진이 앞에서 압박을 해주면, 빅맨도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이상민 감독님-(주)희정이형-(김)승현이형 등 잘 긁는 선수들이 많았잖아요. 그 분들의 성향은 다 달랐고, 그래서 그 성향들을 다 보고 배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보고도 배울 수 없는 재능이 있더라고요. 형들이 그걸 깨우쳐줬죠.(웃음) 어쨌든 공격수의 볼을 손질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스틸 역대 2위에 빛나는 양동근은 역시나 자신을 낮췄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더욱 높였다. 그러나 그 말은 양동근의 진의가 아닐 수 있다. 양동근은 경쟁 속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찾았고, 자신만의 노하우로 KBL 최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 아니, 그렇게 이해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양동근이 왜 KBL 역대 최고인지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3 : 플레이오프 MVP & 어시스트


양동근은 플레이오프와 인연이 깊은 사나이다. 양동근이 속한 현대모비스는 KBL 역대 최초이자 유일하게 플레이오프 3연패(2012~2013, 2013~2014, 2014~2015)를 달성했고, 양동근은 플레이오프에서 3번의 MVP(2006~2007, 2012~2013, 2014~2015)를 거머쥐었다.
‘3’을 ‘양동근의 플레이오프’와 엮은 이유였다. 양동근한테 플레이오프와 관련해 질문했다. 우선 플레이오프 3연패의 원동력을 물었다.
“2012~2013 시즌부터 2013~2014 시즌까지 정규리그 1위를 못했어요. 2012~2013 시즌에는 서울 SK와 상대 전적에서 밀렸고, 지지 말아야 할 경기를 졌어요. 2013~2014 시즌에는 창원 LG와 승률과 상대 전적에서 동률을 이뤘지만, 상대 득실차에서 밀렸죠. 정규리그에서의 아쉬움이 커서, 플레이오프에 더욱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게 플레이오프 3연패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3번의 플레이오프 MVP에 관해서도 물었다.
“아마 생각하셨던 대답일 것 같아요.(웃음) 동료들이 잘 해줬기에, 받은 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2006~2007 시즌 때는 제가 뭘 해도 다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때도 동료들이 중요할 때 워낙 잘 받쳐줬어요. 그러면서 제가 중요할 때 한 방씩 터뜨릴 수 있었고요. 그저 팀을 대표해서 MVP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시스트 관련 기록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양동근은 KBL 역대 선수 중 어시스트 3위(3,344개). 그가 말한 어시스트의 비결은 이랬다.
“유재학 감독님께서 선수 성향에 맞게 전술을 잘 짜주셨어요. 거기에 맞는 패스 타이밍도 알려주셨죠. ‘이 타이밍에 주면, 선수들이 슛 쏘기 편할 거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저는 정해진 패턴 속에서 패스를 줬고, 패스 받은 선수들이 그걸 잘 넣어줬어요. 제가 안 좋게 줘도, 선수들이 잘 넣어줬죠.(웃음)
사실 저는 이상민 감독님이나 희정이형, 승현이형처럼 패스를 잘 하지 못해요. 형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날카롭게 패스할 수 있는데, 저는 그렇지 못해요. 저는 패스를 잘 못하는 선수이니, 동료들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죠. 다만, 제가 선배님들보다 1~2분이라도 더 뛰다 보니, 제 어시스트 기록이 좋았다고 봐요. 이상민 감독님과 승현이형이 오래 뛰었다면, 저보다 훨씬 더 좋은 기록을 세우지 않았을까요?(웃음)”

이번 대답 역시 양동근다웠다. 그렇게 ‘3’과 관련한 이야기가 끝났다.


양동근은 플레이오프에서 강한 사나이였다. 플레이오프 MVP 3회를 차지한 게 그 증거다.

#4 : 함께 뛰고 싶은 4명의 선수는?


“선수로서 마지막 1경기를 뛰게 된다면, 함께 하고 싶은 4명의 선수는 누구인가요?”
양동근이 은퇴 기자 회견에서 받은 질문이다. 양동근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양동근의 대답은 김도수(고양 오리온 코치)-조성민(창원 LG)-故 크리스 윌리엄스-이종현(울산 현대모비스)이었다.
“(김)도수가 무조건 1번이에요. 도수는 제 농구 인생의 처음을 같이 한 친구에요. 가장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죠.
저희는 농구를 정말 못할 때부터 만났어요.(웃음) 그 때는 게임도 뛰지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잘 버텼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때로 돌아가서 같이 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서로 못 뛰었고(웃음), 중학교부터 프로 입단 후에는 서로 다른 팀에서 뛰어서 함께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상무에서 다시 만날 때 너무 좋았거든요. 그런 이유로 도수를 안 지 30년이 넘었지만, 도수랑 같이 뛴 건 몇 게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도수를 가장 먼저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조)성민이는 대학교 때 좋은 추억을 공유한 동생이에요. 대표팀에서도 호흡을 잘 맞췄고, 제 장단점을 너무나 아는 동생이죠. 그래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크리스(크리스 윌리엄스)는 아시다시피… 제가 본 4번 포지션 선수 혹은 제가 본 선수 중 무조건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런 선수와 함께 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이)종현이는 고3 때 대표팀 처음 왔고, 저랑 같은 방을 썼어요. 저는 원래 방을 혼자 썼는데, 종현이가 저랑 같은 방을 쓰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혼자 쓰는 게 편하다고 했고 싫다고 했는데(웃음), 종현이가 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하게 됐죠. 소속 팀에서 원정을 다닐 때도 한 방을 썼고요.
종현이가 부상으로 인해서 프로에서는 재활을 길게 했어요. 재활 과정을 지켜보면서, 힘들겠다고 생각했죠. 게임을 뛰면서 추억을 공유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있어서, 종현이를 선택했죠”

‘아쉬움’을 크게 느낀 것 같았다. ‘아련함’이라는 감정도 느껴졌다. 함께 하고 싶지만, 이제는 이루기 힘든 소망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5 : 꾸준함


양동근은 KBL 역대 선수 중 출전 시간 5위(22,007분 41초)를 기록했다. KBL 정규리그 54경기 출전 시즌도 5번(2009~2010, 2011~2012, 2012~2013, 2014~2015, 2017~2018)에 달한다. 그래서 ‘5’와 ‘꾸준함’을 엮어봤다.
※ 양동근은 2010~2011 시즌 1라운드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나서지 못했고, 2015~2016 시즌 1라운드에는 아시아선수권 출전으로 자리를 비웠다. 그런 상황을 제외하고, 2010~2011 시즌과 2015~2016 시즌에도 전 경기를 나섰다. 대표팀 차출을 제외하면, 양동근은 정규리그 전 경기를 7시즌 소화한 셈이다.
본인의 철저한 관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철두철미한 자기 관리가 없이 나오기 힘든 기록이기도 하다.
그 흔하다는 보양식 한 번 찾지 않았다. 그저 끼니를 잘 챙겨먹고, 끼니 때 많이 먹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식사 패턴 또한 정형화된 양동근이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름 특별한 게 있었다.
“남들보다 덜 다쳤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던 거죠. 발목을 살짝 삐고 허리가 아픈 때도 있었지만, 크게 아프거나 못 뛸 정도로 빠진 적은 많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추승균 감독님이나 (이)정현이만큼 강철몸을 지닌 건 아니에요.(이정현과 추승균 전 KCC 감독은 KBL 역대 선수 중 정규리그 연속 출전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많은 매체에 말씀 드렸듯이, 보양식을 따로 먹은 적은 없어요. 대신 밥을 많이 먹어요. 반찬도 많이 먹지만, 밥을 특히 많이 먹어요. 많이 먹는다는 기준이 어떤 기준인지 모르지만, 항상 밥 2공기는 기본으로 먹은 것 같아요. 또, 끼니 중간마다 많이 먹기도 하고요.
와이프를 대학 때부터 만났는데, 놀러가다가 길에서 갑자기 당이 떨어진 적도 있었어요.(웃음) 예를 들면, 잠실까지 가야 되는데, 중간 지점에 내려서 짜장면 먹고 다시 갈 때가 있었어요. 이제 은퇴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살 찌는 체질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음식을 잘 챙겨먹은 게, 힘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남들보다 많은 기초 대사량과 남들보다 많은 식사량. 양동근이 분석한 꾸준함의 원동력이었다. 이는 양동근에게 허락된 유일한 재능(?) 같기도 했다. 허락 받은 한정(?)된 재능으로 ‘꾸준함’과 ‘기량’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얻었다. 그 두 가지 요소는 양동근을 ‘레전드’의 반열로 올렸다.


양동근이 달았던 6번은 이제 현대모비스에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번호다.

#6 : No.6 그리고 우승 반지 6개


6번. 양동근을 상징하는 번호다.
사실 양동근은 ‘6번’을 달지 않을 수도 있었다. 모비스의 부름을 받은 직후, ‘3번’과 ‘6번’ 사이에서 고민했기 때문. 하지만 양동근은 유재학 감독의 한 마디에 ‘6번’을 새기기로 결심했다.
얼떨결에 6번을 달게 된 양동근. 그러나 양동근의 번호는 유니크한 아이템이 됐다. 이제 현대모비스에서 아무도 ‘6번’을 달 수 없다. 양동근의 ‘6번’은 현대모비스의 영구결번이 됐기 때문.
“대학교 1학년부터 3학년 때까지 6번을 달았어요. 그 때 가드들이 보통 5~7번을 달았는데, 가드들이 없어서 그랬는지 6번이 남아있더라고요.
프로에 와서는 ‘3번’과 ‘6번’ 중에 고민했어요. 감독님께서 저한테 ‘6번해’라고 하셔서, 저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죠.(웃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감독님이 현역 시절에 6번을 달고 뛰셨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의미가 있다는 걸 늦게 알았어요”

‘6’은 등번호와 함께 양동근한테 또 다른 의미를 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양동근이 가진 우승 반지 개수가 ‘6’개이기 때문. 이는 양동근의 플레이오프 우승 횟수가 6번에 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2006~2007, 2009~2010, 2012~2013, 2013~2014, 2014~2015, 2018~2019)
프로에 오랜 시간 뛰어도, 우승 반지 한 번 못 끼는 선수가 많다. 하지만 양동근은 한 손에 다 끼기 힘들 정도의 우승 반지를 가지고 있다. 양동근은 그런 의미에서 축복받은 선수다. 양동근 본인도 인정했다.
“우승 반지를 많이 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 관해서는 정형화된 대답을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웃음) 우선 좋은 환경에서 운동했고, 좋은 코칭스태프한테서 운동을 배웠어요. 게다가 좋은 동료들을 만나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과정이 좋았기 때문에, 우승 반지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는 너무나 큰 축복이죠.
원래는 저희 집에 우승 반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정리를 하느라 1년 전부터 부모님 댁에 보관하고 있어요. (효도의 의미가 아니라) 정리하다가 부모님 댁에 놓게 됐어요(웃음). 부모님께서 그런 말씀을 잘 안 하시긴 하지만, 어쨌든 뿌듯해하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6’은 1~10 중 양동근한테 가장 큰 의미로 다가오는 숫자일 것이다. ‘6’이라는 숫자를 등에 달고, ‘6’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7 : 양동근, 그가 생각한 행운의 경기는?


‘7’은 흔히 행운을 상징하는 숫자다. 양동근한테도 ‘7’은 행운을 상징하는 숫자였다. 양동근은 2006~2007 시즌 챔피언 결정전 ‘7’차전에서 첫 우승 반지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행운이 깃든 경기를 2006~2007 챔피언 결정전 ‘7’차전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모로, ‘7’은 양동근에게 행운이 깃든 숫자였다.
양동근은 2006~2007 챔피언 결정전 7차전에서 39분 53초 동안 19점 5어시스트 4스틸에 2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팀 내 국내 선수 중 최다 득점과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데뷔 첫 통합 우승에 데뷔 첫 통합 MVP(정규리그+플레이오프)를 차지하는 영광도 누렸다.
그러나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모비스는 부산 KTF와 챔피언 결정전 4차전까지 3승 1패를 기록했지만, 5차전과 6차전을 연달아 패했기 때문. 모비스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었다.
심리적으로도 쫓겼다. 거기에 예전의 아픔도 떠올랐다. 모비스는 2005~2006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좌절을 맛봤기 때문. 어쨌든 위기였다. 위기를 타개할 대책이 필요했다.
6차전 종료 후의 맥주 한 잔은 위기 탈출구가 됐다. 사연은 이렇다. 양동근은 선배인 김동우와 간식을 먹으러 나갔다. 그러던 와중에 맥주를 먹고 싶다고 매니저한테 건의했고, 매니저는 유재학 감독한테 이를 보고했다.
유재학 감독이 이를 허락했다. 양동근과 김동우가 있는 곳에 나타났다. 결국 선수단 전체가 맥주를 마셨다.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었다. 그 자리는 소통의 장이 됐다. 선수단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 양동근은 그 때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선수단끼리 분위기가 다져진 것 같아요. 결속력이 좋아진 거죠. 그 일을 계기로, ‘단기전은 분위기 싸움’이라고 생각했죠.
7차전 우승을 하고는, 항상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 때 우승을 하지 못했더라면, 저희 팀이 그 후에 우승을 쉽게 못했을 거라고요. 우승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2006~2007 시즌의 경험을 후배 선수들한테 이야기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 우승을 한 양동근. 그 후 잊지 못할 추억을 여러 번 경험했다. 숱한 족적을 남긴 채, 영광스럽게 은퇴했다. 2006~2007 챔피언 결정전 7차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양동근은 공격형 가드의 표본이었다. 그러면서 이타적인 플레이를 보여줬다. 다른 레전드 가드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KBL 최고의 가드가 됐다.

#8 & #9 : 공격형 가드의 표본 & BEST 5


양동근은 이상민 삼성 감독-김승현 해설위원 등 다른 레전드 가드들과 차별화된 스타일을 보여줬다. 포인트가드이기는 하지만, 패스보다 공격적인 성향으로 동료들을 이끌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기적인 플레이를 한 게 아니다. 자기 공격을 먼저 보되, 비어있는 동료를 살폈다. 공격적인 성향을 유지하면서, 패스를 보는 일. 어떻게 보면, 다른 포인트가드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수도 있다.
양동근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자기 공격력과 동료 활용 모두 효과적으로 해냈다. ‘공격형 포인트가드’의 대표 주자가 됐다.
KBL 역대 통산 득점 8위(7,875점)와 역대 3점슛 성공 개수 8위(990개), 역대 필드골 성공 개수 9위(2,936개)는 양동근의 공격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 ‘8’과 ‘9’를 양동근의 공격력과 연관 지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양동근은 또 한 번 주변 사람들에게 공을 돌렸다.
“유재학 감독님께서 제 장점을 너무 잘 아셨고, 제 장점을 잘 살려주셨어요. 그리고 ‘공격력 없는 가드는 죽은 가드’라고 강조하기도 하셨고요.
사실 공격적으로 하는 게 제 장점이기도 했어요. 공격 기회에서는 자신 있게 하려고 했죠. 그게 대학 시절부터 제가 해왔던 거였거든요. 그걸 어색하게 여겼다면, 슛이 들어가지 않았을 거에요. 그리고 계속 말씀 드렸지만, 제가 다른 형님들보다 오래 뛰어서 좋은 기록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웃음)”

‘공격형 포인트가드’로 성공 가도를 달린 양동근은 BEST 5에 9번 선정됐다.(2005~2006, 2006~2007, 2009~2010, 2010~2011, 2011~2012, 2012~2013, 2013~2014, 2014~2015, 2015~2016)
양동근이 데뷔 후 14시즌을 소화한 걸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세월에 관계없이 꾸준함을 보여줬다는 뜻. 시간에 따른 흐름의 변화를 잘 적응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양동근의 생각은 달랐다.
“저는 대학 시절부터 공격적으로 하던 선수였어요. 코칭스태프와 형들께서 자신감을 너무 많이 심어주셨고, 제가 하는 걸 다 믿어주셨어요. 그 때 자신감이 많이 생겼고, 공격 잠재력이 폭발한 것 같아요.
프로 무대에서도 그 스타일을 유지했어요. 그런데 그 때부터 공격적으로 경기 운영을 하는 가드가 NBA에서 많이 나오기 시작했고, 나중에 보니 저는 현재 트렌드에 맞는 선수가 되어있더라고요. 꿈보다 해몽이지 않을까요?(웃음)”


故 크리스 윌리엄스는 양동근에게 최고의 선수이자 최고의 동료였다.

#10 & #33 : 잊을 수 없는 사람, 크리스 윌리엄스


크리스 윌리엄스는 동료를 알고 농구를 아는 선수였다. 이타적이고 영리하게 농구하는 선수였다. 센스와 패스가 부족했던 양동근한테 천군만마였다. 코트 밖에서도 진한 우애를 과시했다. 동료 혹은 친구 이상의 사이였다.
그러나 크리스 윌리엄스는 2017년 3월 15일 부고를 전했다. 혈전으로 인한 심장 이상이 사인이었다.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특히, 양동근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양동근의 마음 속에 ‘크리스 윌리엄스’는 더욱 강하게 남았다.
양동근과 ’10’을 연결한 이유. 양동근에게 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자는 “자신의 선수 인생을 돌아볼 때, 10점 만점 중에 몇 점을 주고 싶은가요?”라고 물었고, 양동근은 “인내심으로 놓고 보면, 10점 만점을 주고 싶어요. 어릴 때로 돌아가서 농구를 하라고 하면, 못 버틸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잘 버텼던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기자는 “10점 만점을 줄 수 있는 선수가 있는가요?”라고 물었다. 양동근은 고민하지 않았다. 곧바로 이유까지 말했다.
“크리스죠. 기량부터 10점 만점이에요. 슛이 약하다고 하지만, 제가 본 크리스의 슈팅 능력은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슈팅 능력을 상쇄할 다른 장점이 많았죠. 코트에서의 마음가짐과 인내심 모두 좋았어요. 그런 마인드를 지닌 친구가 없었어요”
그렇다. 양동근과 ‘10’을 연결한 이유는 ‘크리스 윌리엄스’였다. 그렇게 연결을 지은 후, 33을 바로 떠올렸다.
33은 크리스 윌리엄스의 등번호. 2019~2020 시즌이 정상 재개됐을 때, 양동근은 33번을 달고 싶었다. 시즌 재개 후부터 마지막 홈 경기 직전(마지막 홈 경기에서는 자신의 번호인 6번을 달고 뛰려고 했다)까지 크리스 윌리엄스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양동근은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33은 양동근의 등번호와도 연결된다. 2개의 ‘3’은 곧 ‘6’이기 때문. 양동근과 크리스 윌리엄스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라고 볼 수 있다.
“(기자의 말을 듣고) 그렇게 좋은 인연으로 생각해주신다면,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등번호가 연결되겠다는 생각도 해봤죠. ‘3’과 ‘3’ 사이에 ‘+’를 달고 뛰어볼까 생각도 했어요”
다시 한 번 느꼈다. 크리스 윌리엄스는 양동근한테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크리스 윌리엄스가 부러웠다. 누군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양동근이어서 더욱 그랬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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