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 역대 최우수 외국선수] 제이슨 윌리포드, KBL 최초 최우수 외국선수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0-03-03 12: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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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KBL이 지난 1일부터 4주 동안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을 계속 주시할 계획이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을 수립했고, 대처법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KBL이 당분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KBL 경기 현장을 갈 수 없고,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사실, 코로나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적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시즌이 재개될 때까지, KBL 역대 최우수 외국선수를 돌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선수는 원주 나래에 있었던 제이슨 윌리포드다.


[제이슨 윌리포드, 1997 시즌 기록]
1. 정규리그 : 21경기 평균 35분 54초, 27.9점 12.8리바운드 3.6스틸 2.7어시스트 1.4블록슛
- 2점슛 성공률 : 약 67.8% (경기당 약 10.2/15.1)
- 3점슛 성공률 : 약 48.8% (경기당 약 1.0/2.0)
* 득점 4위 & 리바운드 1위 & 스틸 2위 & 블록슛 1위
2. 플레이오프(6강+4강) : 11경기 평균 34분 38초, 27.9점 13.0리바운드 2.5어시스트 3.3스틸 2.3블록슛
- 2점슛 성공률 : 약 67.7% (경기당 약 9.5/14.1)
- 3점슛 성공률 : 약 52.6% (경기당 약 0.9/1.7)
* 6강+4강 출전 선수 중 득점 1위 & 리바운드 2위 & 스틸 1위 & 블록슛 1위
3. 챔피언 결정전 : 5경기 평균 32분 24초, 23.4점 9.2리바운드 3.8스틸 2.0어시스트 1.8블록슛
- 2점슛 성공률 : 약 72.3% (경기당 약 9.4/13.0)
- 3점슛 성공률 : 약 25.0% (경기당 약 0.4/1.6)
* 챔피언 결정전 출전 선수 중 득점 2위 & 리바운드 공동 1위 & 스틸 1위 & 블록슛 1위


KBL 원년 시즌인 1997 시즌. 8개 구단이 2명의 외국선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드래프트 제도. 힘과 스피드, 골밑 싸움을 갖춘 클리프 리드(기아)가 전체 1순위로, 화려한 개인기와 폭발적인 운동 능력을 지닌 제럴드 워커(SBS)가 전체 2순위로 KBL에 입성했다.


제이슨 윌리포드(나래)는 2라운드 3순위로 KBL에 입성했다. 16명의 외국선수 중 11번째. 윌리포드를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특히, 1라운드에 선발된 칼 레이 해리스가 있기에, 윌리포드를 향한 주목도는 더욱 떨어졌다.


윌리포드를 주목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운동 능력이 문제였다. 탄력도 스피드도 평범했다. 신체 조건이 특별했던 것도 아니다. 힘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여니, 윌리포드는 평가와 전혀 다른 선수였다. 기록에서 나오듯, 윌리포드는 다 잘했다. 우선 공격. 골밑 득점이면 골밑 득점, 3점포면 3점포. 팀이 원할 때, 윌리포드는 필요로 하는 곳에서 득점했다.


수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학 시절 포워드였지만, 팀에서 원하는 센터 역할을 잘 수행했다. 공격수의 타이밍을 잘 포착해 블록슛을 쉽게 해냈고, 외곽 수비를 한 경험이 있기에 스틸 역시 잘 했다. 센스가 있기에, 스틸과 블록슛 모두 잘할 수 있었다.


동료의 지원도 든든했다. 원년 시즌 득점왕 칼레이 해리스(32.3점)을 필두로, ‘사랑의 3점 슈터’ 정인교와 이인규, 강병수 등 국내 선수의 지원도 컸다. 나래는 정규리그 3위(13승 8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나래는 6강 플레이오프부터 했다. 강행군이었다. 당시 KBL은 6강부터 7전 4선승제로 플레이오프를 치렀기 때문.


하지만 나래는 강했다. 윌리포드가 건재했기 때문이다. 6강에서는 정규리그 6위였던 인천 대우에 4승 2패로 신승했지만, 4강에서는 정규리그 2위였던 안양 SBS를 4승 1패로 격파했다. 그리고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부산 기아를 만났다.


나래는 이변을 일으키는 듯햇다. 1차전을 113-100으로 이겼기 때문. 윌리포드는 39분 동안 27점 12리바운드 4어시스트에 5개의 스틸과 4개의 블록슛을 기록했다. 윌리포드의 공이 분명 컸다. 우승이라는 기쁨도 누리는 듯했다.


하지만 2차전부터 4경기를 내리 졌다. 윌리포드의 부상이 컸다. 윌리포드는 3차전과 4차전에 39분 이상을 뛰는 투혼을 보였지만, 2차전과 5차전에서 23분 이하 밖에 뛰지 못했다. 나래는 결국 1승 4패로 무릎을 꿇었다.


윌리포드는 정상 앞에서 좌절했다. 그러나 윌리포드의 원년 시즌 경기력은 많은 선수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다.


나래의 챔피언 결정전 상대였던 기아도 그랬다. 당시 통합 MVP를 차지했던 강동희 K 농구교실 단장 역시 “KBL이 지금도 만약에 2m 이하의 외국선수를 드래프트로 뽑는다면, 윌리포드는 상위권에 지명될 수 있는 선수다. 그렇게 영리하게 하는 선수를 보지 못한 것 같다”며 윌리포드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윌리포드가 챔피언 결정전 이전에 부상을 당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러면서 우리 팀이 해리스를 집중 견제하는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 윌리포드가 제 컨디션이었다면, 우리가 해리스 수비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며 윌리포드의 위력을 덧붙였다.


원년 시즌 뛰어난 경기력을 보인 윌리포드는 나래와 재계약했다. 1997~1998 시즌에는 43경기에 나서 평균 27.9점 11.7리바운드 3.2어시스트에 2.6개의 스틸과 1.3개의 블록슛을 기록했다. 1998~1999 시즌 전 정인교와 기아로 트레이드됐고, 42경기에서 평균 21.3점 11.8리바운드 3.8어시스트에 2.3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모교인 버지니아대학에서 코치를 하며, 2016 미국대학농구 토너먼트 8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 후, 윌리포드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윌리포드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다. 기자 역시 그 중 1명이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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