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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역대 MVP] 강동희의 센스, 원년 시즌 통합 우승을 안기다

[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KBL이 지난 1일부터 4주 동안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을 계속 주시할 계획이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법을 수립했고, 대처법에 따른 매뉴얼을 수립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KBL이 당분간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모든 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KBL 경기 현장을 갈 수 없고, 경기에 관한 기사를 적기도 어렵다. 사실, 코로나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적는 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시즌이 재개될 때까지, KBL 역대 MVP를 돌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선수는 원년 통합 MVP였던 강동희다.

[강동희, 1997 시즌 기록]
1. 정규리그 : 21경기 평균 37분 51초, 15.6점 7.3어시스트 3.1스틸 3.0리바운드
 - 2점슛 성공률 : 약 60.8% (경기당 약 3.6/6.0)
 - 3점슛 성공률 : 약 42.7% (경기당 약 2.2/5.2)
  * 어시스트 1위 & 스틸 5위
2. 챔피언 결정전 : 5경기 평균 36분 36초, 18.0점 6.0어시스트 3.0리바운드 2.4스틸
 - 2점슛 성공률 : 약 69.0% (경기당 약 4.0/5.8)
 - 3점슛 성공률 : 약 36.7% (경기당 약 2.2/6.0)
  * 챔피언 결정전 출전 선수 중 득점 4위 & 어시스트 1위 & 스틸 2위

강동희는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은 그리 좋지 않지만, 농구를 보는 눈과 패스 센스는 독보적이었다. 독특한 타이밍을 지녔음에도 정교한 슈팅, 속공 상황에서의 다양한 슈팅 동작으로 팬을 즐겁게 할 줄 아는 선수였다.

허재-김유택과 중앙대 시절부터 허동택 트리오를 결성했다. 기아에 입단한 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농구대잔치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KBL이 1997년 원년 시즌을 시작하면서, 강동희는 자연스럽게 KBL로 넘어갔다.

기아의 강세는 KBL 원년 시즌에도 이어졌다. 김유택과 한기범, 두 빅맨이 노쇠화를 겪었지만, 클리프 리드-로버트 윌커슨이 골밑 수비와 리바운드에서 에너지를 실었다.

‘농구 대통령’ 허재와 ‘사마귀 슈터’ 김영만도 건재했다. ‘수비 전문’ 이훈재와 식스맨으로 전업한 이훈재가 자기 역할을 했다.

강동희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최고 포인트가드임을 증명했다. 외국선수를 만나면서, 강동희의 패스 센스가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최고의 기량에 외국선수라는 날개까지 단 강동희를 막기는 힘들었다.

기아는 정규리그 16승 5패로 2위 안양 SBS(14승 7패)를 2게임 차로 따돌렸다. KBL 원년 정규리그 우승.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기아는 정규리그 4위였던 동양을 4-2로 꺾었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정규리그 3위였던 나래를 4승 1패로 제압했다. 플레이오프 우승. KBL 첫 번째 시즌에서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MVP 역시 한 명의 선수에게 돌아갔다. 강동희. 감각적인 패스와 빠른 공격 전개로 동료들을 하나로 묶었다. 무엇보다 정규리그부터 챔피언 결정전까지 일관된 활약을 보여줬다. 강동희는 통합 MVP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강동희에게 원년 시즌을 돌이켜달라고 했다. 강동희는 “(한)기범이형과 (김)유택이형이 노쇠화되면서, 골밑 싸움이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 두 외국선수가 골밑에서 젊은 에너지를 실어줬다. 그러면서 기아가 프로 초창기에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며 두 외국선수의 기여도를 높이 생각했다.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나래의 해리스를 어떻게 막느냐가 문제였다. (이)훈재(현 부천 하나은행 감독)가 전담 마크했는데, 그게 잘 이뤄졌다. 공격에서는 (김)영만이와 클리프 리드, 윌커슨 같은 외국 선수들이 제 역할을 해줬다”며 동료들에게 우승의 공을 돌렸다.

하지만 강동희가 선수들을 하나로 묶지 않았다면, 기아는 우승하기 힘들었다. 강동희는 “내 역할은 볼 배급이다. 거기에 집중하려고 했다. 리바운드를 빨리 받아 속공으로 처리하는 게 중요했고, 2대2에서 어시스트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국내 선수들도 잘 해줬지만, 외국선수들이 패스를 잘 받아줬기에 쉽게 농구할 수 있었다”며 당시 자기 역할을 말했다.

특히, “클리프 리드는 전체 1순위로 KBL에 입성한 선수다. 그 때 당시에는 그 키에 빠른 스피드와 높은 탄력을 갖춘 선수를 찾기 쉽지 않았다. 나에게 날개를 달아준 선수였고, 내가 패스를 자신 있게 뿌리게끔 도와준 선수였다. 골밑을 잘 지켜줬기에, 국내 선수들이 편하게 자기 역할을 한 것도 있었다”며 클리프 리드를 떠올렸다.

강동희는 그 후 2003~2004 시즌까지 8시즌을 활약했다. 336경기에 나서 경기당 평균 11.1점 6.6어시스트 2.8리바운드에 1.7개의 스틸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전성기가 지난 상태에서 프로 무대를 치렀음에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지도자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은퇴 후 원주 동부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고, 2009~2010 시즌부터 원주 동부의 사령탑을 맡았다. 2010~2011 시즌부터 두 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특히, 2011~2012 시즌에는 KBL 역대 정규리그 최다승(44승)이라는 업적도 남겼다.

강동희 감독이 보여준 ‘수비 농구’가 KBL의 대세로 거듭나기도 했다. 특히, 김주성(현 DB 코치)-윤호영(DB)-로드 벤슨(은퇴)를 필두로 한, 3-2 드롭 존은 난공불락의 전략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동희는 불명예를 안고 있기도 하다. 원주 동부 감독 시절 승부 조작으로 KBL에서 제명됐기 때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 다양한 문화-체육 봉사 활동을 하고 있고, 춘천시 휠체어농구단 고문을 맡고 있다. ‘팀 K 농구 교실’ 단장도 역임하고 있다.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원년 시즌 통합 MVP라는 점. 포인트가드로서 팀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지, 어떻게 팬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를 모두 보여줬다. 강동희의 원년 시즌 퍼포먼스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사진 제공 = KBL

손동환  sdh2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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