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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 인사이드] 추억의 외인(外人) - KBL의 스테픈 커리, 데이비드 잭슨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2015년 NBA 파이널, 스테픈 커리는 말도 안 되는 3점슛으로 세상을 뒤집어 놨다. 키는 작지만 화려한 기술과 놀라운 슈팅력으로 세계 농구를 평정했다.

이로부터 13년 전, 그와 비슷한 활약으로 KBL을 뒤집어 놓은 인물이 있었다. 바로 데이비드 잭슨. 그해 챔프전은 그를 위한 무대였고, TG 삼보가 우승을 차지한 이유는 오로지 잭슨 때문이었다.

그의 신화와 같은 스토리를 <바스켓코리아>에서 되짚었다.

※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11월호 웹진에 게재된 글을 수정/각색했습니다.

데이비드 잭슨, 그는 누구인가? 
2002년 비시즌, TG 삼보의 전창진 감독은 흡족한 표정으로 드래프트 장을 나왔다. 그는 자신이 뽑은 선수에 대해 만족한 눈치였다. 당시 경기운영팀에 있던 이흥섭 홍보차장은 당시의 전창진 감독 멘트를 정확히 기억했다. 

“슛, 돌파, 드리블 모두 좋은 선수라고 하셨다. 공격적으로는 완성된 선수라는 이야기에 다들 기대감이 매우 높았다.”는 이 차장의 말이다.

이 말은 전체 18순위로 선정된 데이비드 잭슨을 두고 한 전창진 감독의 말이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전창진 감독의 말처럼 공격적으로 완벽한 선수가 18순위까지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전미 고교 랭킹 40위 안에도 들었던 인물이었다. 대학에서도 당시 유명했던 유타대학에서 식스맨으로 뛰었다. 이렇듯 그는 어디 내놔도 부족하지 않을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한국에 왔고, 재계약 포함 18번째에 이름이 지명되었다. 이유가 있었다. 무릎 수술 경력이 있었다. 단순히 잠깐 쉰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쉬었다. 1년을 유급한 뒤 2년 동안은 출전을 하지 못하였다. 

또한, 잭슨의 신장은 191cm였다. 프로 초반 가드 외국인 선수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독들의 시선은 빅맨에 꽂혔다. 2쿼터를 제외한 2명의 선수가 뛰었음에도 대부분의 팀은 빅&빅의 조합이 대다수였다. 그런 시대에 TG는 단신(?) 외국인 선수를 선택했다.

잭슨과 KBL의 첫 출발 
우려와 기대의 시선이 공존하던 데이비드 잭슨은 첫 경기에 조용하게 KBL에 안착했다. 20분만 뛰며 8점을 기록했다. 전체적인 야투 시도가 적었다. 2점슛 6개, 3점슛 2개가 전부였다. 

데뷔전을 조용히 치르며 KBL을 탐색한 잭슨은 이후 자신의 진가를 보여줬다. 3점슛 2방 포함 14점으로 몸을 풀더니 다음 경기에서는 29점을 몰아쳤다. 연장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잭슨의 활약에 힘입어 승리를 따냈다. 

제대로 몸이 풀린 잭슨은 11월 6일 여수 코리아텐더 전에서 미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1쿼터부터 3점슛 2개로 11점을 퍼붓더니 3쿼터에도 3점슛 3개 포함 11점을 넣었다. 마지막 쿼터에는 혼자 14점을 집중시켰다. 최종 기록은 39점. 3점슛 7개를 넣었음에도 성공률이 64%에 달했다. 팀은 아쉽게 졌지만 잭슨의 하루는 팬들의 기억에 남기에는 충분했다. 

잭슨의 ‘그날’은 이날 하루만이 아니었다. 종종 30점 이상을 넣는 괴력을 선보였다. 손끝 감각이 좋은 날에는 그야말로 ‘언터쳐블’의 모습이었다. 슛뿐만 아니라 기술도 뛰어났기 때문. 당시에는 흔치 않던 스텝백과 플로터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여기에 헤지테이션과 크로스오버로 수비를 떨어트리는 모습은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종종 ‘역귀’라는 단어에 걸맞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는 에이스에게는 숙명과 같았다. 

시즌 최종 기록 18.5점 3점슛 성공률 46%(157/342). 허재와 김주성 등이 있었지만 데릭 존슨의 부진에도 TG가 정규리그 3위를 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잭슨 덕분이었다.

꽃봉오리를 피우기 전, 예열을 하는 잭슨
2003년 봄, 3위 TG를 기다리는 상대는 울산 모비스. 그러나 모비스는 TG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시리즌 전적 2-0, TG의 완승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잭슨이 두 경기 평균 25점을 터트렸다는 것. 3점슛도 경기당 2개 이상씩을 꼭 넣어줬다.

4강에서도 TG의 기세는 거셌다. 정규리그 1승 5패로 열세였지만 적지에서 2경기를 모두 잡아냈다. 잭슨의 활약이 컸다. 17점, 25점으로 팀의 중추를 담당했다. 득점 대부분도 3점이 아닌 2점이었다. 덕분에 효율적으로 점수를 쌓을 수 있었다. 

너무 기세가 좋았던 탓일까. TG는 홈에서 두 번 모두 패했다. 잭슨이 부진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3,4차전 모두 한 자릿수 득점에 그쳤다. 1옵션 역할을 해주던 잭슨이 빠지자 TG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운명의 5차전, 잭슨이 살아났다. 전반까지 조용했던 잭슨은 3쿼터에만 15점을 몰아쳤다. 4쿼터에도 7점을 더했다. 전반까지 34-49로 뒤지던 TG도 잭슨과 함께 흐름을 탔다. 결국 83-75,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챔프전에 올라갔다.

잭슨의, 잭슨에 의한, 잭슨을 위한 챔프전
챔프전에서 만난 대구 동양은 디펜딩 챔피언이자 그해 정규리그 우승 팀이었다. 김승현-김병철-마르커스 힉스 삼각편대가 굳건했다. 

동양은 잭슨의 위험을 감지해 1차전부터 이지승을 전담 수비수로 붙였다. 그러나 잭슨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3점슛 4개 포함 29점을 퍼부었다. 이지승이 되지 않자 이번에는 박재일을 잭슨의 매치업 상대로 기용했다. 상대는 달라졌으나 결과는 같았다. 똑같이 3점슛 4개로 26점. 

연일 맹활약을 펼친 잭슨에 힘입어 TG는 2연승을 달렸다. 모두가 동양의 우세를 점쳤으나 예상 밖의 스토리가 펼쳐진 것이다. 

독기가 오른 박재일은 3,4차전에 본격적으로 잭슨을 괴롭혔다. 이에 고전한 잭슨은 3차전과 4차전 각각 7점, 10점씩 넣으며 매우 부진했다. 잭슨이 부침을 겪자 당연하게도 TG는 패배를 떠안았다. 

그리고 운명의 5차전. 잭슨은 이날도 3쿼터까지 박재일의 수비에 꼼짝을 하지 못했다. 경기 내내 무리한 공격과 턴오버를 범하기 일수였다. TG 역시 3쿼터까지 한 번도 리드를 가져간 적이 없었다. 

그러나 4쿼터 잭슨이 폭발했다. 12점을 올리면서 분위기가 TG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승기를 잡지 못했고, 아쉽게 승부는 연장으로 흘러갔다. 

1차 연장과 2차 연장 침묵한 잭슨은 승부처에서 살아났다. 3차 연장 종료 1분 전, 94-94 상황에서 잭슨이 좌측 45도 지점에서 공을 잡았다. 그런데 이때 그의 앞에 수비수가 없었다. 명백한 실수였다. 힉스가 뒤늦게 쫓아가 손을 들었지만 공은 이미 잭슨의 손을 떠났고, 잠시 후 림을 통과했다. 이 득점은 결승 득점이 되었고, TG는 우승을 향해 한 발만 남겨뒀다. 

대구에서 열린 6차전. 절실함으로 뭉친 동양의 초반 기세가 무서웠다. 1쿼터에만 26-3으로 완벽히 TG를 압도했다. 잭슨은 야투 4개 실패와 2개의 실책만 남겼다. 전창진 감독은 과감하게 잭슨을 벤치로 불렀고, 2쿼터 내내 코트에 나서지 못했다. 

전 감독의 이 선택은 놀라운 결과를 불러왔다. 잭슨 대신 들어간 신종석이 5개의 3점포를 몰아치며 승부를 원점으로 만든 것. 

10분 동안 벤치에서 마음을 다잡은 잭슨은 3쿼터에 코트에 들어섰다. 그리고 속죄의 6점을 기록했다. 예열을 마친 잭슨은 4쿼터에 ‘잭슨 타임’을 선보였다. 동양이 68-62로 앞선 시점에 3점포 3방을 작렬시켰다. 앞에는 박재일이 있었지만 그의 스텝 하나에 그대로 나뒹굴며 3점슛을 허락해야 했다. 그렇게 연속 13점을 몰아친 잭슨은 우승의 문턱까지 TG를 데리고 갔다.

TG는 남은 시간 동안 동양의 마지막 몸부림을 잘 이겨냈다. 그렇게 잭슨은 TG에게 첫 별을 안겼다. 

2002-2003 챔프전에 신인으로 뛰었던 김주성 현 DB 코치는 당시를 떠올리며 “잭슨 덕분에 우승했다”고 말했다. 반면 상대로 뛰었던 김승현 해설위원은 “잭슨 때문에 우승을 놓쳤다”고 말했다. 

상반되는 두 레전드의 이야기가 당시 챔프전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한다. 2002-2003 챔프전은 잭슨의, 잭슨에 의한, 잭슨을 위한 무대였다. 

이후...
잭슨의 엄청난 임팩트에도 TG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되어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구단 내부적으로 잭슨과의 동행을 원치 않았다. 

TG와 계약이 틀어지자 잭슨은 KBL 트라이아웃에 신청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잭슨은 신청을 철회한다. 서머리그와 일정이 겹쳤기 때문. 며칠 뒤 그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의 계약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개막 직전에 방출되고, 중국과 유럽 등을 떠돌다 커리어를 마무리한다. 

잭슨과 KBL의 인연은 한 시즌이 전부였다. 하지만 잭슨의 임팩트는 훗날 회자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동시대에 활약한 김승현 위원은 잭슨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잭슨은) 현재의 스테픈 커리 느낌이었다. 슛만 쏘면 들어가니 막을 수가 없더라. 잭슨을 막으려고 전문 수비수, 키 큰 선수 등 갖은 방법을 써도 안 되었다. 상대 팀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더라.”

2010년대 세계농구를 떠들썩하게 한 스테픈 커리. 어쩌면 우리는 스테픈 커리를 먼저 만났을지 모른다. 17년 전 KBL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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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KBL

김영훈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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