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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 인사이드] 잊혀진 인물들 - ‘미스터 빅뱅’ 방성윤

[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누군가 ‘KBL 최고의 스코어러’를 묻는다면 이 선수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전성기는 짧았지만 임팩트는 대단했던 선수. 안티팬도 많지만 그 이상의 팬을 보유했던 선수. 바로 ‘Mr. Bigbang’ 방성윤이다.

방성윤은 프로 데뷔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 하승진 이후 NBA에 가장 근접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은 모든 것을 주지 않았다. 방성윤은 잦은 부상과 팀과의 마찰로 인해 6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했다.

바스켓코리아는 방성윤을 만나보았다. 미국 진출 이야기부터 은퇴 결정, 최근 3x3 복귀까지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7월호 웹진에 게재된 글입니다.

[선수 생활]

어떻게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이모님이 은퇴한 배구선수였어요. 초등학교 때 내가 운동에 소질이 있으니 선수를 시키자고 부모님께 제안했고, 농구를 시키셨어요. 배구가 아닌 왜 농구를 시켰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제가 농구를 잘하는지 몰랐어요. 그냥 열심히만 했어요. 위치에 상관없이 골 넣는 것에는 자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위에 선배들을 보고 어떻게 하면 농구를 더 잘할까 생각했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연세대에 진학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많았어요. 수능을 보자마자 연세대 전지훈련을 따라갔어요. 저랑 진상원, 이정석, 이상준 심판 등이 하와이 행 비행기를 탔어요. 갔는데 멤버들이 어마어마했죠. 선배들도 김동우, 박광재, 최승태, 전병석 등이 있었죠. 항상 대회에서 우승을 생각하고 갔어요. 결승전에서도 긴장을 하지 않았어요. 회식을 어디로 갈지부터 생각했습니다(웃음).

연세대 재학 중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렇죠. SK의 문경은 감독님이 주장을 맡으셨고, 그 밑에 엄청난 선수들이 있었어요. 황홀했죠. TV에서 보던 선수들과 뛸 수 있다는 생각에 꿈만 같았어요. 사실 결승에서는 우승을 못할 것 같았어요. (서)장훈이 형도 죽어도 중국 이기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경기를 해보니 희망이 생기고, 잘하면 우승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형들이 기적 같은 활약을 하면서 우승을 했죠. 

연세대 고학년 시절 미국에 진출했습니다. 
연세대 다닐 때 하와이를 간 뒤 미국 진출에 대한 꿈을 꿨어요. 시설이 너무 좋아서 한 번 가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 미국에 가서 잘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제가 활약할 때 에이전트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일을 안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NBA에는 10일 계약이 있어요. 나와 같이 뛰던 동료들이 이를 통해 NBA에 진출했어요. ‘나도 조금만 더 하면 NBA 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콜업이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쉬워요.

돌아와서는 SK에서 뛰었습니다. 어땠나요? 
데뷔 두 번째 경기가 기억나요. 창원 원정이었는데 제가 플레이하던 대로 슛을 던졌죠. 잘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방난사’라는 별명이 따라다녔어요. 저와 평생을 함께 하는 이름이죠(웃음). 이후에는 아팠던 기억밖에 없어요. 팀이 잘 나갈 때만 되면 부상이 찾아왔어요. 정말 여러 방법으로 다쳤죠.

[은퇴]

빠른 시기에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많이 후회되죠. 어린 나이에 잘못된 선택을 했어요. 부상 때문에 은퇴를 결심했어요. SK에서 뛰면서 안 다친 적이 없었거든요. 몸 관리를 안 하거나, 재활을 안 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누구보다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FA 시장에 나왔죠. 그런데 선택받지 못했고, 또 다치면서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는 농구공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이후 말도 안되는 일을 하겠다고 정신 못 차리고 다른 일을 시작했습니다.

언제 가장 돌아가고 싶었나요?
다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어요. 3년째였어요.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면서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린 뒤였습니다. 때늦은 후회였죠. 2014년도에 다시 해보려고 SK를 찾아갔어요. SK에서는 사건이 해결되면 하자고 답을 해줬는데 이후 더 큰 사건에 휘말리면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죠. 

나와서 보니 저를 좋아 해주시는 분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더라구요. 그때는 몰랐죠. 철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은퇴하고,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생기면서 싫어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나를 아껴주시는 분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복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다른 선택을 했겠죠. 은퇴하지 않고 1년을 쉬거나 팀에 소속되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을 것 같아요. 너무 혼자 생각하고 결정내리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농구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나요?
있죠.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예전 같지는 않지만 지금이라도 농구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나에 대한 관심에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몸을 만들어서 농구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3x3에 복귀했습니다. 대중의 관심도 많았어요.
솔직히 놀랐어요. 플레이오프 중인데 내 기사가 나오는 거예요. ‘내 기사가 나오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를 아직도 좋아해 주시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첫 경기는 얼떨떨했어요. 에어볼도 날렸어요. 다행히 1라운드 잘 치러서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3x3 국가대표를 꿈꾸시나요? 
저를 뽑아 주시면 정말 영광이죠. 그런데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을까요. 사건사고에 휘말렸고, 문제가 많은 사람이잖아요. 국가대표는 국가를 대표해서 나가는 선수인데 제가 나가도 되는지… 국제 대회를 나가서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선발전에 우승해서 국가대표 자격이 주어져도 내가 태극마크를 달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Epilogue…

인터뷰 내내 방성윤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잘나가던 아마추어 시절과 부상 등으로 고생 많았던 프로, 이른 나이의 은퇴, 불미스러운 일들과 3X3로의 복귀까지. 그의 이야기는 한 권의 책으로도 부족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렸다.

이렇듯 굴곡이 많았지만 그가 불혹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지켜온 것이 있었다. 농구에 대한 애정. 과거 일들의 후회와 팬들에게 미안함을 농구로 갚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세월을 잊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방성윤, 그의 미래를 응원해본다.

※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으시다면? ☞ 바스켓코리아 7월호 웹진 보기

사진 = 신혜지 기자, KBL 및 본인 제공 / 영상 = 이현규 기자

김영훈  kim95yh@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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