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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 농구, 그 태동과 발전 그리고 현재①
30년 넘게 연중 리그를 이어오고 있는 YMCA 동호인, 직장인 농구 대회

[바스켓코리아 = 김우석 기자] 2010년대로 접어들며 ‘농구’는 많은 변화를 요구 받고 있다.

키워드 중 하나는 관람 스포츠와 참여 스포츠 형태 변화다. 

관람 스포츠로서 농구는 그 인구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반면, 참여 스포츠로서 농구와 프레임은 양적, 질적 향상이 이뤄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농구는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닐 정도로 관람 스포츠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2010년 대로 접어들어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엘리트 선수가 2,000명이 조금 상회할 만큼 숫자도 줄어 들었다.

참여 스포츠로 농구를 즐기는 인구는 정확히 산출할 수 없지만, 적어도 20만 명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KBL과 WKBL에서 운영하는 유소년(녀) 클럽이 활성화 되어 있고, 교육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중, 고등학교 스포츠 클럽 리그와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에서 운영 중인 대학 동아리 리그, 마지막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시행 중인 각 시도 별 리그 등에 참여하고 있는 농구 동호인 숫자는 적어도 20만 명을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만큼 건전한 신체 활동과 여가 선용의 일환으로 농구는 많은 국민이 즐기고 있다. 참여 스포츠로 가장 인기가 있는 축구와 등산 인구를 넘어서고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에 그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신년을 맞이해 생활체육 농구에 대해 알아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대학 모임, 선수 출신 중심으로 출발한 생활체육 농구 

생활체육 농구 태동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답을 주진 못했다. 1970년대 후반이나 1908년대부터 조금씩 대학교 동아리 팀이 탄생했고, 몇몇 선수 출신이 팀을 구성해 농구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 시초인 듯 하다.

1970년대 초반 창단한 페가수스를 시작으로 배화, 파랑새, 까망 정도의 동아리가 존재했다. 까망은 산업은행 출신 장철수 등 다수의 선수 출신들이 포진했던 팀으로, 당시 가장 활발한 교류전을 가진 팀이었다. 이후 오성과 역풍, UFO, 펜타곤과 같은 팀도 탄생, 동아리 농구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팀이 창단되면서 대회도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종로 YMCA에서 직장인부와 동호인부로 나눠 대회를 치렀고, 송파구 둔촌동에 위치한 사회체육센터(SAKA)에서도 동아리 팀을 중심으로 한 대회를 만들었다. 그렇게 농구 동호인들을 위한 대회가 탄생했다.   

이 이름 중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팀은 페가수스 정도가 유일하다. 최근 역풍이 해체를 선언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배화, 파랑새, 까망은 제한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 동아리는 더욱 활발하게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2년 시작된, 대학 동아리 대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민대 총장배를 시작으로 연세대 총장배, 경기대배, 한성대배 등이 줄줄이 탄생했다.

당시 활동했던 대학 동아리 숫자는 일반 동아리를 훨씬 상회했다. 연세대 볼케이노, 고려대의 농연과 서우회 등을 시작으로 한양대 15ERS, 성균관대 농성회와 사바, 중앙대의 자이언트와 청룡, 서강대 농구반, 건국대 아농, 국민대 쿠바, 경기대 요농, 명지대 돌핀스 등 20개가 넘었다고 전해진다.

볼케이노와 서우회 그리고 농구반과 쿠바는 현재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농구가 키워드가 된 참여 스포츠는 시작을 알렸다.

1990년대 후반, 체계를 잡아가는 ‘생활체육 농구’ 

1998년, 서울의 한 식당에서 ‘국민생활체육 전국농구연합회’라는 조직이 발족되었다. 이건재 초대 회장을 시작으로 생활체육 농구 활성화를 목적으로 탄생한 자생적인 조직이다. 98년 6월 인천에서 첫 대회를 시작으로 많은 대회를 주관, 주최하며 최근까지 이어졌다. 

4년 전 문화체육관광부의 체육계 통합 정책의 일환으로 대한농구협회와 통합을 이루면서 대한민국농구협회로 이름을 변경, 세월의 흔적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전국농구연합회(NABA) 발족과 함께 많은 팀들도 탄생했다. 대학 동아리 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팀 등록제로 인해 많은 팀 들이 생겨났고, 생활체육 농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또, 인터넷 발달도 한 몫을 했다. 온 라인을 통해 각 시도 별 팀 등록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고, 각종 대회를 쉽게 검색하고 참가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기 때문.

전국농구 연합회 발족과 함께 많은 대회들이 생겨났다.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대회는 ABL 토너먼트와 스포티즌 대회였다. 2000년대 초반이었다. 이전까지 종로 YMCA 직장인 농구대회와 둔촌동 사회체육센터에서 진행하던 대회 정도에서 본격적인 생활체육 대회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또, 스포츠러브 리그도 존재했다. 자율리그 형태로 진행된 이벤트로 각 지역별로 예선전을 치른 후 결선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한 대회였다. 앞선 대회만큼 큰 반응은 얻지 못했다.

두 대회는 생활체육 최초로 스폰서십이 적용된 이벤트로 많은 관심을 모아졌고, 당시 서울 경기지역에서 내노라하는 팀들이 참가해 자웅을 겨뤘다.

당시 ABL을 주관했던 당시 농구닷컴 김정염 대표는 “12개 팀을 모아 팀 별로 각 개 회사와 스폰서십을 적용했다. 유니폼에 회사 로고를 부착했고, 일정 수준의 대회 참가비를 지원했다. 또, 상금 1,000만원과 경인 방송에서 중계도 했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스폰서를 유치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스포티즌은 당시 신생 스포츠마케팅 회사였다.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스포티즌과 폴리티즌이라는 회사를 동시에 탄생시킨 심찬구 대표는 스포티즌의 첫 번째 이벤트로 농구 대회를 진행했다.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는 심찬구 대표의 농구 사랑이 대단했기 때문. 스포티즌은 현재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진행된 대회는 당시까지 경험하기 힘들었던 상품 등에서 차별화된 규모로 진행되었다.

스포티즌 대회는 MSA가 우승을 차지했다. ABL 대회에 앞서 열린 스포티즌 대회에서 결승전까지 모든 경기를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승리를 우승을 차지, 생활체육 농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ABL에서 당시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토파즈가 결승전에서 MSA를 물리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당시 MSA는 내부 분열로 인해 팀 워크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하며 생활 체육 역사 상 가장 큰 대회였던 ABL 토너먼트에서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그렇게 두 팀은 서울, 경기 지역을 대표하는 라이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생활체육 농구대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전국농구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연합회장기 등을 시작으로 각급 시도 단체에서 생활체육 농구 동호인을 위한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또는 자체적으로 대회를 운영하는 시,군,구도 존재했다. 

매년 대회와 동호인 숫자는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고, 현재는 주말마다 각급 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제는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그 만큼 생활체육 농구는 참여 스포츠로 적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2부에서 계속.

사진 제공 = 서울 YMCA 홈페이지

김우석  basketguy@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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