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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박선영 심판 “자신감 말고 가진 게 없어요”①
2017~2018시즌부터 KBL 심판으로 활약할 박선영 심판

[바스켓코리아 = 이재범 기자] KBL는 지난 1일부터 15명의 심판들과 함께 2017~2018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시즌 활약했던 심판 13명(객원심판 제외) 중 12명과 재계약을 하고, 새로운 심판 3명(김병석, 박선영, 조철휘)을 뽑았다. 

신임심판 중 WKBL에서 15시즌 동안 활약하고, 여자농구 국가대표까지 지낸 박선영 심판이 포함되어 화제를 모았다. 박선영 심판은 삼성생명, 신한은행, 신세계(현 KEB하나은행), KB스타즈에서 선수 생활을 한 뒤 2012~2013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올해까지 실업팀 김천시청에서 선수 생활(플레잉코치)까지 한 박선영 심판을 지난 2일 만나 KBL 심판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그 일문일답이다. 

처음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합격 발표를 2주 정도 뒤에 한다는 문자를 받은 뒤 그 2주 동안 엄청 떨었어요. 밥을 먹어도 밥을 먹는 게 아니고, 잠을 자도 잠을 자는 게 아니었어요. 2주 지난 뒤에도 연락이 안 와서 불안했어요. 정말 후회없이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안 되면 나이가 있어도 내년에 다시 해보자(고 마음 먹었어요). KBL 심판을 해보자고 어렵게 다짐했기에 한 번 탈락한다고 쉽게 포기할 건 아니었어요. ‘안 되면 다시 도전하지’하는 찰나에 연락이 온 거예요. 
아직도 시간이 기억나는데 (7월 21일) 저녁 6시 12분에 (KBL 심판에) 합격했다는 연락이 와서 “감사합니다. 잘 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끊고 난 뒤에 조울증처럼 막 좋았다가 왜 이제서야 연락이 온 거야 이랬어요(웃음). 그 동안 “연락이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던 가족이나 친구들,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죠. 나를 기대해주고 걱정해줘서 “고맙다. 드디어 합격했다”고요. 그날은 진짜 잊을 수 없어요. 금요일이었는데, 주말을 잘 보냈죠. 제가 주말부부였거든요. 남편(휘문중 최종훈 코치)도 얼굴보고 “장하다”고 해주니까 그제서야 “내가 진짜 (KBL 심판이) 되었구나!” 그랬어요.

1일 계약과 함께 첫 출근하기 위해 KBL센터에 들어왔을 때 KBL 심판이 된 걸 실감 했을 거 같은데요. 

집이 조금 먼 오산이에요. 오산에서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쭉 직진으로 올라와요. 출근시간에 맞추려면 새벽부터 와야 하는데 오는 길이 하나도 안 피곤했어요. 출근이란 게 생소한데 농구와 관련된 일이라서 기대했어요. 사무적인 일은 처음이잖아요. 출근해서 보고를 하고, 프로그램이나 오늘의 일정, 이 주의 일정을 듣고, (이재민) 본부장님께 인사 드리고, (김영기) 총재님께 인사 드리면서 실감을 하죠. 이런 걸 해보고 싶고, 꿈꿔왔거든요. 
농구를 오래 했기에 농구와 관련된, 심판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어요. 저도 모르는 긍지 같은… 심판이 갖춰야 할 요건과 운동을 하면서 배운 게 일맥상통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나름 준비 과정을 거쳐 KBL 심판이 되니까 모든 게 설레고, 내가 가진 모든 걸 보여주고, 배울 거 배우고, 할 거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심판 실기 테스트에서 나온 기사를 보면 심판의 정직한 이미지가 좋았다고 했어요. 

심판이 보는 위치와 관점이 정말 중요해요. 심판들끼리도 소통을 하는 이유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예요. 이 규칙서 안에는 수비자와 1대1 상황에서 어느 정도 접촉이 가능하나 90도에서 조금만 넘어가면 모두 파울이거든요. 그런 걸 다 불면 (경기가) 안 되니까 세 명의 심판이 평균을 정하는 거죠. 이렇게 심판들이 불면 선수들은 억울할 수 있지만, 심판들이 보면 그 날 기준에서 정당하게 보는 거죠. 선수들 입장에선 억울해해요. 그런데 이 친구의 성향을 분석하면 쇼맨십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억울해할 수 있어요. 우리는 억울한 걸 최대한 줄여야죠. 인정할 건 인정하고. 잘 하면 본전이고 못 하면 욕먹고(웃음). 

꿈을 막 이룬 분께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게 죄송한데요. KBL 여성 심판 두 분은 WKBL에서 경력을 쌓고 KBL 심판이 되었음에도 KBL 적응에 애로점이 있었습니다. 그 두 분과 달리 심판 경험도 거의 없어서 우려의 시선이 있습니다. 

많죠. 아주 많죠. 그런데 박윤선, 홍선희 심판이 시간과 연륜에서 쌓은 심판의 이미지는 50대50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최고의 여성 심판하면 홍선희 선배인데 저에게는 대선배예요. 객관적으로 볼 때 100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걸 못 보여주는 게 있어요. 그런 말을 자꾸 들으면 위축되고요. 요즘 들어 심판들도 ‘심리치료를 받는 이런 시스템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심판들도 (좋지 않은 평가를) 귀담아 들을 수도 없고, 안 들을 수도 없어요. 여성 심판이 약하다는 그런 인식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있게, 당당하게 보여드려야 인정받을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욕은 먹겠죠. 물론 칭찬도 받겠죠. 

제 생각엔 일단 불고 보는 게 낫지 않나요? 

선배들도 그러세요. “불고 표정 관리해!” 당연히 자신 있어서 부는 거고, 자신감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불고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요(웃음). 애매하다고 안 불면 오히려 욕 먹으니까요. 

KBA 심판 자격증을 딴 이후 왜 KBL 심판이 되려고 마음을 먹으셨나요? 

이게 어떻게 보면 왜곡될 수 있어서 잘 적어주세요. 98년 WKBL에 입단했는데요. 삼성생명이나 신세계에서 (선수들이) 코트를 안 쓸 때 심판들이 시그널 연습하고, 러닝을 하며 몸을 만들었어요. 운동하며 (심판들의) 몸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막연하게 저도 하고 싶었어요. 제가 운동을 할 때 거리감이 있지만, 심판들의 각 잡힌 태도와 비디오 미팅, 분석하는 걸 보면서, 선수 시절 “아~ 심판들, 심판들”이라고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아~ 그렇게 보였겠지” 나중에는 그렇게 되요. 
그러면서 제가 심판을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농구가 좋아서 이 구단 붙잡고, 저 구단 붙잡고 계속 선수 생활만 한 거예요. 딱 다친 뒤 (프로에서 은퇴하고) 나와서 실업팀 김천시청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심판 자격증을 따보지 않겠냐고 추천했어요. 그걸 따면 주말에 생활농구 심판을 볼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농구 밖에 없었고, 심판이 농구 안의 다른 분야이기에 하고 싶다고 여겨서 2년 전에 심판 자격증을 딴 뒤에 “나는 KBL 심판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왜 WKBL이 아니고 KBL이에요? 

WKBL은 제가 쭉 봐왔잖아요. 또 4팀을 다녔어요. WKBL 가면 여기저기 인사 드려야 하고, 한 명 걸러 한 명 아는 분이 있는데 객관적인 평가에서 욕을 먹어도 WKBL보다 KBL에서 먹고 싶었어요. 욕을 크게 먹어도 KBL이고, 작게 먹어도 KBL이었어요. 그래도 (KBL이) 우리나라의 최고이고요. 예전에 인터뷰한 것처럼 WKBL(심판 지원)이었으면 마음가짐에서 조금은 더 해이해질 수 있었던 부분 중 하나인데 KBL에 도전을 하면서 제 스스로에게 정신무장이 되었어요. 실수를 하겠지만,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면서 객관적으로 평가 받고 싶었어요. 

②편에서 계속됩니다.

사진제공 = KBL 

이재범  1pretty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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