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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박선영 심판 “자신감 말고 가진 게 없어요”②
2017~2018시즌부터 활약할 KBL 박선영 심판

[바스켓코리아 = 이재범 기자] KBL는 지난 1일부터 15명의 심판들과 함께 2017~2018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시즌 활약했던 심판 13명(객원심판 제외) 중 12명과 재계약을 하고, 새로운 심판 3명(김병석, 박선영, 조철휘)을 뽑았다. 

신임심판 중 WKBL에서 15시즌 동안 활약하고, 여자농구 국가대표까지 지낸 박선영 심판이 포함되어 화제를 모았다. 박선영 심판은 삼성생명, 신한은행, 신세계(현 KEB하나은행), KB스타즈에서 선수 생활을 한 뒤 2012~2013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올해까지 실업팀 김천시청에서 선수 생활(플레잉코치)까지 한 박선영 심판을 지난 2일 만나 KBL 심판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그 일문일답이다.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2년 전에 심판 자격증을 땄지만, 올해까지 김천시청에서 선수 생활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 심판 활동은 어떻게 하셨나요? 

올해 5월까지 김천시청에 있었어요. 플레잉 코치라서 선수들 연습 경기할 때 심판을 봤는데 규칙대로 본다고 해도 욕을 먹었죠. 그게 안 되니까 주말에 심판들이 못 나가는 생활체육에서 심판을 보고, 또 심판들이 날짜가 겹쳐서 못 가는 경기도 심판을 보러 다녔어요.

어땠나요? 

처음에는 힘들었죠.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 욕 먹었는데 욕 먹을 만 했고, 지금까지 2년이라는 값진 시간이었어요. 좋은 추억이었고. 그 때 다니면서 KBL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을 굳힌 계기가 되었어요. 

KBL에서 2년 전부터 심판캠프를 열었는데 그곳에서 교육을 받아봤나요? 

전 못했어요. 소속이 김천시청이라서 김천시청만의 규칙이 있어서 운동에 집중해야 했어요. 김천에 있어서 기회가 안 되었어요. 또 플레잉 코치가 심판 과정을 듣겠다고 하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어요? 심판에 매진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딱 올해 1월부터예요. 진짜 ‘내가 더 이상 선수로서도, 코치로서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치의 준비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실업팀은 WKBL과 달리 코치와 선수들이 하루 종일 다 같이 지내요. 다 같이 자고, 다 같이 먹고, 다 같이 생활을 하기에 선수와 코치의 선이 없죠. 
그런데 코트에선 코치가 되어야 해요. 제가 혼돈이 오는데 선수들도 혼돈이 오죠. 어린 아이들이기에 힘들어하고, 저도 힘들었어요. ‘내가 코치, 감독이 되기에는 부족하고, 체계적으로 더 배우지 않는다면 내가 여기 있는 게 무의미하겠구나.’ 나이 들었다고 선배나 코치 노릇은 아니거든요. 준비 과정이 없었기에 아이들을 가르칠 게 제가 가진 경험 말고는 없었어요. 

1월부터 심판이 되기 위해 매진했다고 하셨고, 인터뷰 초반에도 KBL 심판이 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협회에서 나눠준 규칙서 두 권 안에 모든 심판 메커니즘이 다 들어있어요. 룰 케이스북인데 2급 심판을 딴 뒤 그걸 받았어요. 선수에서 심판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몸소 뛰는 건 알겠는데 (규칙서에는) 몸으로 뛰는 걸 글로 표현한 거예요. 모든 걸 해석한 이 책 한 권을 읽는데 이틀이 걸렸죠. 몸으로만 하던 농구를 글로 표현된 걸로 재해석 하려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차라리 모르면 외우면 되는데 그게 또 아니거든요. WKBL에 심판 친구가 있어요. 너무 답답하고 열 받아서 그 친구를 괴롭혔죠. “이거 뭐냐?” “이거 왜 이래?” 이걸 계속 전화로 물어보면서 해석했어요. 그랬더니 “너 그래서 심판 되겠냐?”는 자극을 많이 받았죠. ‘내가 이 두 권을 해석하지 못하면 심판이 못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이건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 못하는 거예요. 
케이스북 정말 얇거든요. 아직 몇 조 몇 항까지 자연스럽게 나오진 않지만, 그걸 밤낮으로 외웠어요. 외운 걸 또 코트에서 불어야 하잖아요? 아마 경험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오른발 왼발 슛이라고 코치들이 가르치는데 처음에 몸으로 하면 단 시간에 되지 않거든요. 또 외운 걸 최단시간에 적용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벼락치기도 맞지만, 수험생들도 이런 벼락치기를 할까 할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시즌을 치르면서도 느꼈는데, 하루가 길어요. 이틀, 10일도 길고 한 달은 진짜 길어요. 그런데도 KBL 심판만 생각하고 준비를 하니까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여겨서 ‘적당히 좀 하라’고 해도 ‘KBL 심판이 되려면 이건 아니야, 이 정도 아니야’라고 여겼어요. 여자이기에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 스스로 타협을 안 했어요. 1월부터 6월 시험보기까지 저에겐 짧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떨어졌다면) 매년 시험을 다시 봤겠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도전을 했어요. 

이재민 본부장은 박선영 심판만의 장점도 있다고 하셨어요.

있죠. 저는 자신 있어요. 물론 경험으로 부족해서 현실적으로 제가 욕을 먹겠지만, 소위 심판들이 말하는 배짱, 판단력, 정말 정확한 판정으로 선수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자신감이 통했다고 봐요. 심판 테스트 첫 날, 시험 보는 과정이 너무 생소해서 긴장했어요. 마지막 날에는 내가 보여줄 걸 못 보여줘서 박선영이라는 이름에, 박선영 심판이 붙기는 힘들겠지만, 제 걸 못 보여줘서 창피한 게 있었어요. 그래서 자신있게 불었죠. 거기서 보여진 게 인정을 받은 게 아닌가? 제 나름대로 뿌듯하고, 후회 없어요. 제가 자신감 말고는 가진 게 없어요. 

KBL 총재, 경기본부장, 장준혁 심판부장께서 해준 말씀이 있나요? 

심판들의 신념과 철학에 관해 말씀해 주셨는데, 그건 제가 선수시절부터 가지고 있었거든요. “심판들도 반공인인데, 심판이 가진 자신만의 규칙을 정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KBL 심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해서 찌릿찌릿하고 소름 끼쳤어요. ‘내가 가고 있는 길을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출근 후 아주 잠깐이지만, 심판교육을 처음 받아봤을 거 같은데요. 

선수시절 비디오 미팅을 해도 자연스럽게 다리 올려놓고 보곤 했는데, 인터뷰도 이렇게 차려 입곤 책상에 앉아서 하진 않았죠. 잠깐, 아주 잠깐 (심판교육에서) 느껴본 소감이에요. 잠깐이지만 너무 좋았어요. 제일 앞에서 듣는데 앞으로 이 책상에 앉아서 앞으로 더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잖아요. 배우는 걸 머리 속에 다 넣어야 하는데 몇 개 안 들어왔어요. 저게 제 머리에 다 들어올 때까지 안 떨어지고 싶어요. 
저는 안 가는 거였는데 (KBL 심판들이 파견된 생활체육대회가 열린) 영월에 따라가겠다고, 심판들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라서 “저도 해보겠습니다”라며 그곳에 가서 2박3일 지냈어요(종별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어 심판 부족으로 협회에서 KBL 심판 파견을 요청함). 장준혁 심판부장님도, 협회 관계자도 ‘저거 뭐야?’ 했겠죠(웃음). 심판을 안 보더라도 따라갔는데 배정을 해주셨어요. 가서 KBL과 협회 심판들이 경기를 어떻게 진행하는지 보고 싶었어요. 제가 빨리 적응해서 알아가는 게 중요하니까 영월대회에서 쓸데 없는 열정을 불태웠는데, 영월대회가 저에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지금 딱 (합격해) 들어와서 영월 대회를 갔다면 많이 경직이 되었을 텐데 그렇지 않고 영월에서 만나 밥도 같이 먹으면서 심판들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니까 더 좋았어요. 
딱 합격한 뒤에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니까 ‘이게 프로구나’라는 걸 이틀 동안 알았어요. 본부장님께서 처음에 모였을 때 할 말이 없는지 물었는데 제가 “참 프로답습니다”라고 했어요(웃음). 제가 느끼는 머리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말로 나왔는데 프로다웠어요. 

처음 프로선수가 되었을 때와 KBL 심판이 되었을 때 느낀 프로답다는 게 차이가 있을 거 같아요. 

나이가 들었어요(웃음). 프로에 입단할 때 자유계약 선수라서 그 전에 계약을 했어요. 삼성생명으로 간 건 운이 좋았고, 제가 한 것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아서 삼성생명으로 갔어요. 지금 그걸 비교해봤거든요. 초심! 첫 날부터 오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요. 선수와 심판의 분위기는 달라도 제 마음가짐은 똑같아요. 제가 농구를 처음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해서 5학년 때 죽기살기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 때의 느낌, ‘멋 모르고 즐겨야 하는구나, 이거 해봐야겠는데 재미있다’고 여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때의 느낌과 비슷해요. 이제 나이가 들었고, 성숙해졌는데 이걸 최대한 장점화 시켜나가야죠. 그 도전하는 과정이 똑같이 힘든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이걸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좋은 거 같아요. 그 때(선수시절)는 ‘사람들이 이래서 도망을 가는구나’ 이런 걸 느꼈거든요. 지금은 그렇지 않고 제가 온전히 객관적인 평가 받을 수 있는 심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꿈을 이룬 거잖아요. 이제 시작인데 어떤 심판이 되고 싶은가요? 

면접 때 이야기를 했는데, 심판은 혼자가 아니에요. 저 혼자가 아닌, 한 경기에 배정된 세 명의 심판이 모두 잘 봤으면 좋겠어요. 근데 제 첫 이미지가 경험이 없고, 여자 심판이라 안 좋은 것에서 시작이에요. 저로 인해서 오심이 나올 수 있지만, 떳떳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동료 심판이나 더 나아가 피땀 흘린 선수들이 상처 받으면 안 된다는 걸 매번, 항상 생각하고 있고, 그런 마음 가짐으로 심판에 임할 거예요. (앞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변하지 않도록 해야죠. 

사진제공 = KBL 

이재범  1prettyj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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