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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교수의 '농구공 위의 수학자'] 기억에 남는 스코어와 스타들 #2

83-75 허 재


내가 이 스코어를 기억하는 이유는 순전히 ‘농구 천재’ 허 재 때문이다. 그가 은퇴한지도 이미 5년이 지났건만 나는 아직도 그의 플레이를 추억하며 그리움에 잠긴다. 그의 전성기는 과연 언제였을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가 중앙대학교 학생 시절이던 1984년부터 1988년까지가 그의 전성기였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도전정신이 강하고 정신적으로 기술적으로 최절정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그때였다는 말이다. 그 이후 그에겐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 이외엔 뚜렷한 도전 의지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 최고’에 도전할 길이 막혀버린 천재에겐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1995년 3월 1일 그날도 허 재는 오로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오기로 똘똘 뭉쳐 있었다. 이상민, 우지원, 현주엽, 문경은, 서장훈 등 ‘X세대’ 스타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고, ‘서른 즈음에’ 접어든 허 재는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허 재는 결코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농구대잔치 결승 4차전 기아와 삼성의 경기. 64-60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13분부터 4분여 동안은 농구의 신이 허 재를 위해 마련한 불꽃놀이와 같았다. 허 재는 3점 슛 3개를 포함하여 무려 17점을 연속으로 터뜨리며 기아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날 허 재가 기록한 득점은 41점. 경기가 끝났을 때 스코어보드에는 83-75라는 숫자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경기는 내게는 아직까지도 가장 감동적인 경기로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허 재와 함께 다시 한 번 이 스코어를 마주치게 된다. 지난 2003년 3월 31일 프로 농구 4강 플레이오프 5차전 창원 LG와 원주 TG의 경기. 그때 허 재는 이미 은퇴를 눈앞에 둔 ‘흘러간 전설’이었다. LG는 김영만, 블랙, 조우현의 활약을 바탕으로 3쿼터가 시작할 무렵 55-37, 무려 18점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허 재는 ‘위대한 전설’이었다.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코트를 누비기 시작했다. TG 선수들은 허 재의 집념과 오기 때문에라도 승리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특히 LG가 65-55로 도망갔을 때 20미터 이상을 내달아 단독 돌파 레이업 슛을 성공시켰을 때 희망사항은 실천사항이 됐다. 4쿼터에 접어들어 허 재가 3점 슛으로 67-67 동점을 만들고, 4쿼터 중반 양경민의 골밑슛으로 스코어가 뒤집히자 LG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기적 같은 대역전극이 벌어진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의 스코어는 83-75. 8년 전 허 재가 휘황하게 빛나던 순간의 스코어였다.


무하마드 알리가 ‘위대한 전설’이 된 이유는 물론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화려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을 완성한 것은 조 프레이저의 강력한 레프트 훅을 정통으로 맞고도 카운트 4에 일어난 터프함이었다. 허 재가 ‘위대한 전설’이 된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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