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선수들이 농구공을 잡기까지의 사연은 다양하다.
어린 시절에 외국을 나가는 것이 꿈이었다던 프로농구 통합 MVP 모비스의 함지훈은 “농구선수를 하면 외국에 나갈 수 있다”는 할머니 말씀을 듣고 부모님을 졸라 농구공과 인연을 맺었다.
현재 여자농구 최고의 슈터인 국민은행의 변연하 역시 운동회 때 손자를 보러 온 해운대 초등학교 코치의 눈에 띄여 스카우트 됐다.
여기에 이들과 같은 우연한 일화로 농구공을 잡은 선수가 있다. 바로 대구광역시청 휠체어농구단의 가드 정순태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선수로서 20년을 보낸 그에게 휠체어농구는 어떤 의미일까?
- 휠체어농구를 시작한 계기는?
선배의 권유로 시작을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을 했지만 지금은 잘했다고 생각이 됩니다.
- 휠체어농구를 하면서 본인에게 생긴 변화는?
선수를 하기 전에는 휠체어농구가 있는 것도 몰랐고 집과 학교가 제 생활에 전부였어요. 운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이것을 계기로 직업도 갖게 되었습니다.
- 우정사업본부장배 대회를 앞두고 특별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우승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은 선수를 하면서 국가대표를 해보고 싶은 목표가 있었는데 지금은 국가대표를 하기에는 나이도 좀 있고, 기량이 월등한 선수들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대표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고, 저희가 우승을 경험한 것이 8년 가까이 흘렀는데 은퇴를 하기 이전에 우승을 하고 싶습니다.
- 휠체어농구를 주변에 있는 지인들에게 추천을 하고 싶나?
적극적으로 권유를 하고 싶습니다.
- 그 이유는?
모두가 같이할 수 있거든요. 제가 농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용인대 특수체육과 학생들이랑 경기를 했어요. 처음엔 휠체어를 타서 같은 장애인들인 줄 알았는데, 넘어졌다 일어나는 동작이 저희보다 빠르더라고요. 그때 ‘아! 휠체어농구는 정해진 자격이 없구나’란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농구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이렇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 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제가 농구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에는 점수가 전반과 후반을 합쳐서 20점에 불과했어요. 지금은 1경기를 하면 70득점이 나와요. 그러니 경기장 많이 찾으셔서 박수와 격려 보내주시고 성원을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스포츠는 팬들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바스켓코리아 오세호 / 사진제공 대구광역시청 휠체어 농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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