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가드 출신 기업은행 기업지원센터장 정재섭
그가 말하는 인생 성공기와 후배 농구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농구선수였었던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정재섭씨는 고려대를 거쳐 기업은행에서 활동했던 포인트가드로 작은 키 탓에 ‘다람쥐’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했던 선수이다. 작은 키를 가지고 있지만 똘망똘망한 눈에 빠른 발과 몸놀림은 귀여운 다람쥐를 연상시켰고 당시 많은 소녀팬들을 가지고 있었다.
농구인이었던 정재섭씨는 현재 IBK 기업은행(구 중소기업은행) 본부기업금융센터의 센터장이라는 위치에 올라있다. 이미 언론에도 여러차례 보도된 바와 같이 정씨는 농구를 은퇴한 이후 부임하는 지점마다 전국 최고의 실적을 올리며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30대 최초의 지점장에 등극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정씨는 이러한 성공가도의 비결을 “농구선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 했었을 일들”이라고 단언했다. “농구를 하면서 배운 추진력과 끈기, 그리고 친화력 등이 모두가 결합돼 은행원 생활을 하면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농구에 프로가 도입되기 전, 즉 농구대잔치시절은 실업농구의 시대였다. 농구선수들이라 하더라도 삼성 현대 기아자동차 기업은행 등에 속한 회사원이었다. 특히 금융권 선수들은 오전에는 회사에 출근하고 오후에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생활을 해야했다.
비록 프로선수들만큼 많은 연봉을 받지는 못했지만 당시 실업선수들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농구를 은퇴하면 그냥 일반직으로 전환해서 회사원으로 생활을 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프로선수들은 은퇴가 곧 실직이 되어버린다. 지도자라도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쏟아져 나오는 프로은퇴선수들이 들어갈 수 있는 지도자 자리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정재섭씨는 “후배들이 준비를 미리미리 해야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은퇴 후 회사에 일반사원으로 들어가면 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개인사업을 하던지 어떠한 형태로든 먹고 살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리부터 준비를 해놓아야 하는데,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준비하려하면 그 때는 너무 늦는다. 후배들이 이 점을 정말 귀 기울여 들어줬으면 한다.”
정씨는 기업은행에서 농구선수를 은퇴한 이후 은행원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는데, 악착같은 노력과 농구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승승장구, 은행 내 각종 기록을 경신하며 초고속 승진을 이어가 현재 위치에 올랐다.
정씨는 “농구만 하다가 새로운 은행업무를 한다는 것이 정말 너무나도 어려웠다. 하지만 끈기와 노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고, 농구인 만이 가질 수 있는 추진력과 친화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며 자신의 지나온 날을 이야기했다.
<다음은 정재섭씨와의 인터뷰 전문>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은퇴한 지가 얼마나 되셨나요?
1991년 은퇴했으니 19년… 거의 20년이 됐네요.
은퇴 후 성공한 농구인으로 평가받고 계십니다. 은퇴 이후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를 시작하고 기업은행 농구단에서 까지 농구를 했습니다. 농구인이 농구의 꿈을 갖고 인생을 살다가 은퇴하고 나서 금융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네요.
고려대 다람쥐 정재섭, 기업은행으로 진출해 농구인생을 이어가
대학 졸업하셨을 때 삼성이나 현대로 가실 수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기업은행을 선택한 배경이 있으셨나요?
제가 81학번이고 85년에 졸업했어요. 당시에는 실업팀 하면 기아가 생기기 전이었고 삼성과 현대 밖에 없었습니다. 양 팀에는 이충희 박수교 김현준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많았죠. ‘그 팀에 가서 베스트로 뛸 수 있을 것인가? 농구 이후의 미래는 어떨 것인가?’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농구하던 선배들이 은행팀으로 가서 지점장까지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성실하게 하면 지점장도 가능하겠다’는 판단을 했죠.
그리고 당시 은행 중에선 이민현, 최철권 등이 버틴 기업은행이 가장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주전으로 뛰면서 삼성, 현대를 이길 수 있는 팀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선수생활 하실 때 최단신으로서 명석한 두뇌를 가진 가드로 유명했습니다. 지도자의 욕심은 없었나요?
사실 기회가 왔었습니다. 기업은행이 1997년도에 프로팀으로 출범할 예정이었습니다. 당시에 구단에서 외국인선수 뽑으러 미국까지 갔었어요. 제가 영업2부 과장일 당시에 초대 감독으로 행장으로부터 내정이 됐습니다. 저도 고심 끝에 수락을 했었구요.
그런데 국책은행이다 보니, 그리고 중소기업은행이다보니 ‘프로팀을 창설하는 것이 타당하느냐?’하는 논란이 일어서, 결국 기업은행이 프로팀 창단 포기하고 다른 기업(나산 플라망스)에게 양도를 했죠.
이후 저는 그냥 기업은행에 남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당시에 과장시절이었고 실력도 한참 인정받으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과정이어서 비전이 있다는 판단을 했죠.
실제로 신장이 어떻게 되시나요?
사실 당시에는 178cm까지 적어봤는데 정확하게 172.5cm밖에 안돼요.(웃음)
농구선수로서 키가 작아서 고생했을 것 같습니다.
주식도 종목, 즉 우량주를 잘 선택해야 하는데, 당시 야구 축구 농구에 다 재능 있었던 제가 만약야구를 했으면 작은 키가 아니었겠죠. 축구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농구 선택해서 후회한 적도 정말 많았습니다. 신장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고 마음고생도 너무 심했었죠. 중고등학교 때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때 자랑 좀 해도 되죠?
아, 물론입니다.
허재나 유재학 그런 선수들이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평가받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개인기, 특히 드리블 이런 것들에 대한 테크닉은 내가 대한민국에서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개인적인 생각인가요?(웃음)
그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시절 저에게는 24시간이 농구였습니다. 잠 속에서도 농구가 나타나고… 정말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키로도 농구를 할 수 있게 됐죠. 덕분에 초대 농구대잔치 시절에는 키가 작다 보니 팬들이 귀여워해줬던 것 같습니다.
날쌘 포인트가드에서 초보 은행원으로… 필사의 노력으로 최연소 지점장 등극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루 말로 못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농구에 대해서는 박사겠지만 금융분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고생과 마음고생이 정말 많았습니다. 농구를 은퇴하고 평범한 행원이 된 이후에 1년 넘도록 매일같이 새벽 1-2시가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도 챙기지 못하고… 저는 물론 집사람도 생일을 그냥 건너뛰기 일수였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도와줬습니다.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농구선수였던 이유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죠. 주위 분들, 특히 직원들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많이 알아봐주시고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윗분들도 대견하게 생각하시고 ‘은행에 농구선수 출신이 필요가 있다’라며 지원을 많이 해주셨죠. 책임자도 맡겨 주셔서 기업은행 최연소 30대 지점장도 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자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은행에서는 진급을 위해선 책임자 임용고시라는 것을 합격해야 합니다. 저는 농구를 그만 두기 전부터 고시공부를 시작했는데, 밤새 공부하고 다음날 운동하러 나가고 그런 생활을 했죠.
사실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운동만 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앞이 캄캄했죠. 그 고시가 굉장히 어려운 시험이었거든요. 태어나서 대학교 4학년 때까지 못한 공부를 그때 임용고시 볼 때 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웃긴 에피소드가 밤새 공부를 하고 다음 날 운동을 하러 가면 점프를 많이 안 뛰었어요. 점프 많이 하면 어제 공부한 것들 다 머리 속에서 없어질까봐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 정신자세와 노력이 밑천이 되어 오늘 이자리 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느낀 것이 있죠. ‘공부를 해야한다. 경쟁사회에서 내가 준비가 돼있지 않으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라는 것인데, 그 때 공부한 것은 인생에서 살아남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시절인 것 같습니다.
운동할 때 동계합숙 이런 것도 힘들었지만, 그 때 고시 준비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임용고시 시험이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운동만 했던 후배들이 은퇴 이후, 혹은 은퇴시기가 되어 방황하거나 고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우리가 운동할 때는 아마추어 팀이었기 때문에, 은퇴 후에 장래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프로선수이기 때문에 개인사업자입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지도자를 못할 경우 다른 살 길을 찾아야 하는데, 미리 준비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농구선수이니까 농구만 잘하면 된다’ 이런 생각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이 선수들이 은퇴 이후를 항상 생각하고 대비하여야 하는 것이죠. 다른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금융기관 사람의 한 사람으로써 안타까운 것이, 세상 물정을 너무나도 모릅니다. 그래서 운동하면서 금융기관 사람들을 많이 만나봐야 합니다. 두루두루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많이 만나서 인맥을 쌓으며 정보와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운동한다고 운동하는 친구들만 만나면 사회 나와서 인맥의 한계로 인해 힘든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농구할 때 만들어놓은 인맥이 다양했고 결국 그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은퇴 이후를 위해 친구를 많이 사귀어라는 말씀이시군요.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하고 30살 넘어서 책보고 공부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만약 공부할 엄두가 안 난다면 신문을 읽고 다른 금융분야 사람들 많이 만나세요. 사람들을 만나며 귀동냥으로 듣다보면 상식이 생기고 언젠가부터 제 것이 되어있을 겁니다. 그렇게 쌓인 상식들은 힘들 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생기게 해주죠.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은행에서 농구선수시절, 운동 끝나고 사무실 들어가서 직원들하고 술먹고 그랬습니다. 선수들하고만 어울리지 않고 당시 일반직원들과도 많이 어울렸고, 그로 인해 은행내의 인맥이 형성이 됐습니다. 이 사람들이 은퇴 후 많은 것들을 도와주더군요. 옆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고…
후배들에게 당부해주고 싶은 것은, 정말로 여러 분야에서의 친구를 사귀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농구선수이고 네임밸류가 있기에 남들에게 다가가기가 용이합니다. 농구 공부도 물론 해야하지만, 은퇴이후에는 다른 삶의 인생이 펼쳐지기에 공부도 해야 합니다.
지도자의 길은 프로, 대학 초중고 팀 개수가 정해져 있기에, 다른 일에 대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 준비의 첫 단계는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사회생활 하시면서 농구를 해서 좋았던 점은 어떤 것이 있으셨나요?
은퇴 후 책임자 시험을 합격하고 일선 영업점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여기에서 농구선수로서의 장점을 잘 이용했습니다. 제가 수퍼스타는 아니었더라도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마케팅하기가 수월했죠. ‘농구선수 정재섭이네’라며 호감을 보이신 고객들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실적이 다른 사람들의 2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운동선수가 장점을 가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서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구요. 만약 제가 농구를 안했더라면 그런 실적과 현재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농구인이었기 때문에 이자리 까지 올 수 있었죠.
운동선수들은 한 번 하면 실천하는 추진력이 좋잖아요. 그래서 영업할 때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죠. 그러다 보니 다른 직원들과의 차이점을 인정받았고, 최연소 지점장으로 시작으로 현재 기업금융센터장까지 올라오게 됐습니다.
어려서는 키가 작어서 어머니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키만 더 컸으면 허재를 가지고 놀 수 있었는데…’하면서 말이죠. 농구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보다는, 농구선수였기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기에 농구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농구가 없었으면 제가 어떻게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앞으로도 그 농구를 했던 경험이 좋은 배경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농구인이었던 사실을, 그리고 농구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농구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열심히 나아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농구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스켓코리아 오경진 / 사진 오성두 / 자료제공 IBK 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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