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를 보러 가다

2010/03/8 by   ·   No Comments

3월 7일 오후 3시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KBL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보러 갔다. 삼성 썬더스와 대구 오리온즈의 대결이었다. 의미는 많이 다르지만 두 팀 모두 꼴찌였다. 대구 오리온즈는 14승 39패로 정규리그 전체 꼴찌였고, 삼성 썬더스는 27승 28패로 간신히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을 확정지은, 소위 “살아남은” 팀들 중 꼴찌였다. 대구는 이겨도 정규리그 꼴찌를 면하기 어려웠고 삼성 역시 이겨도 살아남은 팀들 중 꼴찌라는 운명은 이미 결정돼 있었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농구 경기를 보러 가는데 하필이면 꼴찌 팀들의 대결을 골라가는 걸까? 이건 선택의 문제는 아니었다. 주말 그 시간에 마침 그 경기가 잠실에서 열렸을 뿐이다. 감기 몸살 때문에 수학 공부할 생각은 집어치우고 그 대신 “꼴찌를 보러” 농구장으로 달려가는 수학자의 마음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그러나 꼴찌끼리의 경기라 하더라도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는 나름대로의 엄숙함과 진지함이 있는 법이니 나는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삼성의 이승준과 대구의 이동준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형제 사이다. 이 둘의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장료는 아깝지 않았다. 뭔가 형이 수비를 느슨하게 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그게 두 형제의 활약을 시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승준 23득점, 6리바운드. 이동준 24득점, 6 리바운드. 수치는 거의 같았지만 출전 시간이 10분 정도 적었던 형 이승준의 플레이가 더 인상적이었다.

대구에는 최고의 가드 김승현이 있다. 그러나 대구는 김승현 때문에 시즌을 망친 것이나 다름없다. 처음엔 샐러리캡 문제로 출장정지, 중간엔 부상으로 한 달 여 결장. 마지막 경기에도 김승현은 나오지 않았다. 전날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19득점을 기록한 것을 보면 아예 못 뛸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굳이 무리할 상황도 아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김승현의 여우같은 플레이를 보고 싶었지만 그 대신 1번을 달고 나오는 정재홍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정재홍은 대담하게 생긴 대로 대담하게 플레이를 하는 건 좋았지만 솔직히 집중력은 조금 부족해 보였다.

김병철이 헤매는 모습을 보는 건 고통스러웠다. 고려대 시절 휘황하게 빛나던 모습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저렇게 헤맬 줄은 몰랐다. 한때 박찬호가 헤맬 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만큼 벌었으면 됐지. 뭘 저렇게까지 하냐?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이젠 그만 두지.”

그러나 나는 박찬호에게도, 김병철에게도, 다른 그 누구에게도 이젠 그만 하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프로 선수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뛰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 그만 두어야 한다. 물론 이건 내 개인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3쿼터까지 접전을 벌이던 경기는 4쿼터 초반 73-63으로 대구가 앞서가면서 승부가 갈렸다. 84-79로 대구가 승리. 스코어는 접전 양상을 띠었지만 경기 내용은 사실 좀 지루했다. 두 팀 모두 순위도 운명도 결정돼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집중력이 떨어지며 어이없는 플레이가 여러 번 나왔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70여 초를 남기고 82-75인 상태에서 삼성이 승부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부담없이(?)’ 경기에 임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6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하고 여러 가지 작전을 시도해보는 평가전처럼.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를 치르는 팀이 취할 태도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쩌다 한 번 구경 온 인간이 바라는 것도 많다. 그러다 지금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기라도 하면 어쩔 거냐?”

뭐, 이렇게 나온다면 나는 그냥 조용히 물러설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운동장을 가든 체육관을 가든 일반 팬들과는 무언가 다른 분위기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학부형들’이다. 이들은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으로 훈수도 두고 심판 판정에 항의하기도 한다. 특히 자기 팀에 불리한, 그런데 애매한 판정이 나왔을 때는 체육관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른다.

“그게 어떻게 오펜스야? 디펜스지!!”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라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에서도 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로 선수에게 ‘학부형’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겠지만 마음가짐은 똑같아 보였다.

대구 오리온스의 21번 김강선은 이번 시즌에 입단한 루키다. 전날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0.2초를 남기고 결승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는 등 54경기 전부 출장하며 맹활약 하고 있다. 나름대로 열성팬들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경기에서는 지나치게 적극적이었는지 초반부터 파울 트러블에 걸리더니 4쿼터 시작할 때 다시 투입되자마자 5반칙 퇴장당하고 말았다. 그때 어느 ‘학부형’이 소리를 질렀다.

“우리 강선이 5반칙이냐? 큰~일했네?”

아아, 나는 그때 왜 마음이 따뜻해졌을까? 아마도 ‘엄마’를 느꼈기 때문이겠지?

바스켓코리아 / 강석진(서울대학교 수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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