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대학교(Duke University) 농구의 홈인 캐머론 실내체육관(Cameron Indoor Stadium)에 다녀왔다.
그 말로만 듣던 캐머론체육관을 직접 찾아간 나로서는 정말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유명 연예인과 악수를 앞두고 있는 열성팬의 심정으로 이 전통있고 유서 깊은 체육관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
캐머론 실내체육관(Cameron Indoor Stadium)
- 소재지: 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더램(Durham)시 듀크대학교 내
- 건립년월일: 1940. 1. 6
- 본래 이름: 듀크 실내체육관(Duke Indoor Stadium)
- 최대 수용 인원: 9,314명
슈셉스키빌(Krzyzewskiville)에서 바라본 캐머론 실내체육관의 모습. 벽돌로 지어진 다소 작은 모습의 체육관이다. 21,75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라이벌 UNC의 딘 스미스 센터(Dean Smith Center)보다 훨씬 규모는 작다.
그러나 캐머론 체육관은 학교 측이 확장 공사를 할 수 있는 자원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경기장 내의 응원 소리와 함성을 더욱 크게 들리도록 하고, 코트와 관중들과의 거리를 최대한 가깝게 해서 원정팀 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 위압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일부러 확장 리노베이션을 하지 않고 있다.
듀크대와 미국국가대표 농구팀의 현 감독인 마이크 슈셉스키(Mike Krzyzewski) 감독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슈셉스키빌(Krzyzewskiville). 캐머론 바로 앞에 있는 그리 넓지는 않은 작은 잔디밭이다. 바로 듀크 농구팬들이 농구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야영, 이른바 ‘캠프 아웃(Camp Out)’ 을 하는 곳이다.
캐머론 체육관은 9천여명밖에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기가 있을 때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의 숫자도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시즌 티켓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서 야영을 하면서 표를 산다. 캠프 아웃은 듀크대학교 학생들의 또다른 낭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곳에서 캠프 아웃을 할 때에는 듀크대 소속 전세계 각국 출신의 학생들이 와서 각국의 특징을 보여주는 ‘밤새기 문화’가 펼쳐진다.
남미 국가들은 나이트 클럽 조명과 스테레오를 갖고 와 ’1일 클럽’을 연다. 일본 학생들은 캠핑 카를 빌려와 밤을 샐 수 있는 가장 럭셔리한 형태를 보여준다고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당연히 ‘고스톱’이다. 가끔은 트럼프 카드를 갖고 와서 ‘하이로’ 등의 한국적인 포커판을 벌이기도 하는데, 하이로를 옆에서 같이 해 본 미국 학생들은 저마다 너무 재미있는 게임이라며 감탄해마지 않았다는 일설이다. 벌써부터 캠프 아웃을 하게 되는 가을이 기다려진다.
체육관 내부의 모습. 내가 갔을 때는 고교생 농구 캠프가 한창이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여고생 농구 선수들이 이 곳에서 듀크대 여자 농구팀 선수들에게 훈련을 받고 있었다. 듀크대는 남자 농구팀 뿐 아니라 여자 농구팀도 전국 최강이다. 다만 최근의 우승 전적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지지난 시즌에는 시즌 내내 줄곧 전미 랭킹 1위를 달렸었다.
플로어 중앙에는 코치K 코트(Coach K Court)라고 새겨져 있다. 경기장은 그대로 남겨 놓은 채 코트를 리모델링한 후 역시나 K감독님 슈셉스키 감독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명명됐다. 농구 시즌이 시작되면 이 곳은 그야말로 학생과 관중들의 응원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다. 코트 양 끝에는 듀크(Duke)라는 학교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듀크의 홈코트인 이 코치K 코트는 시즌 경기 중 상당히 미끄럽기로 악명이 높다. 특별히 코트 재질이 미끄러워서가 아니라 경기장 안의 열기 때문에 선수들이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게 되기 때문이다.
경기장은 원정팀으로 하여금 경기장 내 온도에 적응하기 힘들게 하기 위해 일부러 난방을 심하게 가동시키곤 한다. 그렇게 되면 경기장 내의 온도는 섭씨 25도 정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이 때문에 ESPN 해설자들까지도 상당히 덥게 느끼곤 한다. 한번은 ESPN의 연로한 해설자인 디키 바이텔(Dickie Vitaile)은 체육관 안이 너무 더워지자,
“Turn on the AC! Turn on the AC!(에어컨을 틀어요! 에어컨을 틀어요!)”
하고 줄곧 외친 적이 있다.
그리고 양쪽 자유투 라인에는 듀크의 소속 컨퍼런스인 대서양 컨퍼런스(Atlantic Coast Conference)의 약자인 ACC가 새겨져 있다. 현재 ACC에는 12개 학교가 소속돼 있다. 듀크와 노스캐롤라이나(UNC),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NC State), 팀 던컨의 모교인 웨이크 포레스트(Wake Forest), 클렘슨(Clemson), 조지아 공대(Georgia Tech), 총격 사건으로 떠들썩 했던 버지니아 공대(Virginia Tech), 버지니아(Virginia), 최진수가 뛰었던 매릴랜드(Maryland), 두 플로리다 학교인 마이애미(Miami)와 플로리다 주립(Florida St.), 그리고 원래 Big East 컨퍼런스 소속이었다가 가장 최근 ACC로 자리를 옮긴 보스턴 칼리지(Boston College) 이렇게 12개 학교가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가 농구에 있어서는 매우 강호들로 ACC는 1위부터 12위까지 그 어느 하나 심한 약체가 없이 엎치락 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농구팬들을 즐겁게 해 준다. 그러나 정작 최근 ACC학교들의 NCAA 토너먼트 성적은 UNC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초라해졌다.
각 미디어들의 중계석. 캐머론 체육관이 그 인지도에 비해 너무나 작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미디어 중계석이다. 코트 근처에 중계석을 놓을 자리가 없어서 아예 중계석들을 천장에 갖다가 붙여놨다. 이 때문에 TV와 라디오 해설자들은 코트를 ‘바라보면서’ 해설을 하는 게 아니라 밑으로 ‘내려다 보면서’ 해설을 한다.
TV 카메라들 역시 거의 코트를 멀리서 ‘내려다보는’ 수준으로 중계를 하게 된다. 따라서 코트 위의 선수들은 옆 모습이 아니라 다소 각도가 위 쪽에서 찍은 ‘윗 모습’이 TV에 나오게 되는 다소 생소한 장면이 연출된다.
듀크는 UNC와 마찬가지로 농구 명문으로 화려한 역사와 전적을 자랑한다. 이같은 역사를 모두 체육관 내에 역시 배너로 장식해 놨다. 그리고 주요 활약 선수들의 번호가 영구 결번되어 있다.
듀크대학교 주요 전적
NCAA 우승: 3회
NCAA 준우승: 6회
NCAA 4강: 14회
ACC 토너먼트 우승: 20회
ACC 정규시즌 우승: 21회
듀크대의 빛나는 우승 배너들. 91년과 92년에는 그랜트 힐(Grant Hill), 바비 헐리(Bobby Hurley), 크리스천 레이트너(Christian Laettner) 등을 앞세워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2001년에는 셰인 베티에(Shane Battier)와 카를로스 부저(Carlos Boozer), 제이슨 윌리엄스(Jason Williams) 등을 앞세워 역시 우승을 차지했다.
듀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몰 포워드 그랜트 힐(Grant Hill)의 등번호가 결번돼 있다. 힐은 모두가 다 잘 알다시피 현재 NBA 피닉스 선즈(Phoenix Suns)에서 활약 중이다. 힐의 활약으로 듀크는 91년과 92년 지금까지 단 두 학교(듀크와 플로리다)만이 달성해 본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그 당시 듀크의 멤버가 얼마나 화려했느냐면 힐이 1학년 때는 주전이 아닌 후보로 뛸 정도였으니깐. NBA의 대스타 힐이 후보로 뛰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힐은 대학시절 3, 4학년 때는 역사상 듀크의 가장 훌륭한 포인트 가드로 평가되는 헐리가 졸업한 이후였기 때문에 혼자서 볼 핸들링까지 맡아서 했다. 이 때문에 공격 때는 포인트 가드, 수비 때는 스몰 포워드의 역할을 모두 소화해 ‘포인트 포워드’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힐의 활약으로 듀크는 94년 또 한번 NCAA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당시 아칸소(Arkansas) 대학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필자가 빼 먹을뻔한 두 명의 위대한 대학농구 선수가 있다. 바로 91, 92년 연속 우승의 주역 바비 헐리(Bobby Hurley)와 크리스천 레이트너(Christian Laettner)이다.
우선 대학농구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손꼽히는 헐리는 대학통산 최다 어시스트 기록인 1,076개를 기록하고 있으며 한 경기 최다 어시스트 기록(16개)도 함께 갖고 있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다지 깨질 성 싶지 않다. 한 명의 포인트 가드에 의존하기 보다는 전체의 조직력에 의존하면서 공을 돌리거나, 한 명의 슈퍼스타 득점원에게 의존하는 현대 대학농구의 추세에서 이같이 어시스트만 무지막지로 하는 포인트 가드가 나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헐리는 4학년이던 92-93시즌 마우이 인비테이셔널(Maui Invitaional)에서도 MVP를 차지해다. 이 때 당시 결승전에서 브리검영 대학교(Brigham Young Univ.)와 붙었었는데 이 경기를 고등학교 때 TV로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이 때 완전히 BYU를 갖고 놀았었다. 헐리는 그러나 NBA 1라운드 7번으로 지명되어 새크라멘토 킹스에 입단한 이후 자동차 사고를 당해 프로에서는 그리 길게 활약하지는 못했다.
다음은 센터인 레이트너. 주지하다시피 레이트너는 올림픽에서 프로선수의 출전이 허용된 이후 처음으로 결성됐던 제 1 ‘드림팀’의 일원이었다. 이 때 당시 레이트너는 마이클 조던, 패트릭 유잉, 찰스 바클리, 칼 멀론 등이 포함된 12명의 라인업에서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였다.
레이트너는 특히 1992년 NCAA 토너먼트 8강전에서 켄터키 대학(Kentucky)과 맞붙어 연장전에서 종료 버저와 함께 말도 안되는 터닝 점프슛을 성공시키면서 104-103 승리를 이끌었다. 이 장면은 NCAA 농구의 명장면에 여지없이 언제나 들어가는 너무나도 유명한 장면이 되었다. 역시나 91년과 92년 듀크대의 연속 우승을 이끈 주역 중의 하나이며 대학농구 사상 가장 훌륭한 센터 겸 포워드로 손꼽히고 있다.
레이트너는 91년 시즌 NCAA MVP를 차지했고 92년 NBA에 전체 3번으로 지명됐다. 이 때 1번은 샤킬 오닐, 2번은 알란조 모닝이었다. 미네소타와 애틀랜타, 디트로이트, 댈러스, 워싱턴, 마이애미 등 여러 팀을 거쳤고 프로에서도 꽤 괜찮은 활약을 보였지만 역시나 대학농구 선수로 더 팬들에게 기억되는 선수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레이트너가 이 노스캐롤라이나 근방에서는 ‘공공의 적’처럼 돼 있어, 작년 ACC 토너먼트가 열렸을 때 휴식시간 도중 공로상 같은 것을 받게 되었는데 모인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이 있다.
듀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순수 슈터(pure shooter)’로 평가되는 제이제이 레딕(J.J. Redick)의 번호. 레딕은 2학년 시즌 내내 모두 150개의 자유투를 던져 단 7개밖에 놓치지 않았다. 이 당시 레딕은 NCAA 미국 전역에서 자유투 성공률 1위였다. 레딕은 그러나 단 한 번도 우승은 달성하지 못했다. 2005년에는 특히 시즌 내내 줄곧 전미 랭킹 1위에 올라 있었지만 NCAA 토너먼트에 가서는 LSU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역시 탈락하고 말았다.
레딕은 1라운드 지명으로 NBA 올랜도 매직(Orlando Magic)에 입단했지만 부상과 주전 경쟁으로 인해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대학교 때의 실력은 말이다. 현재 레딕은 출장 시간을 더 많이 보장해 줄 수 있는 팀으로 트레이드를 요구하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제대로 성사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레딕은 훌륭한 대학 선수는 되지만 NBA 선수로는 다소 포스가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31번 셰인 베티에(Shane Battier)의 번호가 영구 결번되어 있다. 현재 NBA 에서 뛰고 있는 베티에는 그랜트 힐 이후 듀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스몰포워드로 꼽힌다. 베티에는 2학년 때였던 99년 이미 NCAA 토너먼트 결승에 진출해 코네티컷 대학교(UConn)와 맞붙은 적이 있다. 이 당시 듀크의 트레젼 랭든(Trajan Langdon)이 1점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 경기 막판 결정적인 트래블링 반칙을 범하면서 뼈아프게 준우승에 그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2001년 4학년이 된 베티에는 카를로스 부저, 제이슨 윌리엄스, 크리스 두한(Chris Duhan) 등과 함께 다시 한 번 NCAA 타이틀에 도전해 준결승에서 매릴랜드, 결승에서 리처드 제퍼슨(Richard Jefferson)이 버틴 애리조나를 각각 물리치고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베티에는 올해의 선수상과 함께 올해의 수비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고 영예의 NCAA 우승까지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듀크에는 두 명의 위대한 윌리엄스(Williams)가 있다. 이 두 명의 윌리엄스의 번호도 영구 결번되어 있는데 포인트 가드인 22번의 제이슨 윌리엄스(Jason Williams)와 파워 포워드인 23번의 셸던 윌리엄스(Sheldon Williams)가 이들이다. 제이슨이 졸업한 후 셸던이 입학을 했기 때문에 이 둘은 함께 뛴 적은 없다. 그러나 이 두 명의 윌리엄스는 각기 다른 스타일로 듀크 농구 발전에 기여했다.
제이슨 윌리엄스는 듀크 역사상 가장 빠른 포인트 가드로 평가받는다. 과거 91, 9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할 당시의 포인트 가드였던 바비 헐리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스 위주의 백인 포인트 가드였다면 윌리엄스는 개인기가 출중하고 득점력도 뛰어난 스피드와 힘을 고루 갖춘 흑인 포인트 가드였다.
제이슨 윌리엄스는 앞서 얘기 했듯이 2학년 때 셰인 베티에와 카를로스 부저 등과 함께 2001년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특히 윌리엄스는 외곽슛과 골밑 돌파력을 고루 갖춰 2002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ACC내 두번째 라이벌 매릴랜드와의 시즌 원정 경기에서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10점을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적같은 3점슛과 스틸을 연속적으로 터뜨리면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가면서 연장에서 역전 승리를 차지한 경기는 듀크 경기 역사상 고전으로 남아 있다.
윌리엄스는 역시 2002년 NBA 드래프트에서 야오밍에 이어 전체 2위로 시카고 불스에 지명돼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로 꼽혔다. 그러나 1년 뒤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선수 생활을 일찌기 마감하고 현재는 CSTV의 농구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또 다른 윌리엄스는 셸던 윌리엄스이다. 셸던은 ‘집주인(Landlord)’라는 별명을 가진 흑인 파워포워드로서 제이제이 레딕과 함께 뛰면서 듀크의 골밑을 담당했다. 셸던 윌리엄스의 별명은 셸던이 골밑을 마치 자기의 땅처럼 상대방 선수들이 맘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윌리엄스와 레딕이 버틴 듀크는 윌리엄스의 4학년 시절 전미 랭킹 1위에 줄곧 올라가 있었지만 NCAA 토너먼트에서 4강 문턱을 넘지 못하고 탈락해 끝내 윌리엄스와 레딕은 무관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말았다.
현 스탠포드(Stanford) 대학교 감독인 조니 더킨스(Johnny Dawkins) 감독의 번호도 결번돼 있다. 더킨스는 듀크대 선수 시절 제이제이 레딕에 의해 깨질 때까지 듀크 대학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갖고 있었다. 더킨스는 4학년이었던 1986년 NCAA 토너먼트 결승까지 진출해 루이빌(Louisville)과 맞붙었지만 69-72로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더킨스는 84년 LA 올림픽 미국 농구 대표팀에 뽑혀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패트릭 유잉(Patrick Ewing) 등과 함께 뛰면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더킨스는 NBA에는 전체 10위로 샌안토니오 스퍼스(San Antonio Spurs)에 지명됐다. 그리고 나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Philladelphia 76ers)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Detroit Pistons) 등을 거쳤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찰스 바클리(Charles Barkeley), 허쉬 허킨스(Hershy Hawkins) 등과 함께 뛰기도 했다.
그런 후 더킨스는 K 감독에 의해 듀크 농구팀의 코치진에 임명돼 99년 부감독으로 승진했다. 더킨스는 선수 선발과 선수 개발을 맡아 셰인 베티에, 카를로스 부저 등의 선수들을 스카웃해 오면서 2001년 듀크의 우승을 일궈 내기도 했다.
그러던 더킨스 감독이 스탠포드의 트렌트 존슨(Trent Johnson) 감독이 루이지애나 주립대(LSU) 감독으로 옮겨가면서 스탠포드 감독직을 제의받았고 이를 수락했다. 개인적으로 언제나 불평만 늘어 놓는 감독이었던 존슨 감독이 스탠포드를 떠난다는 말에 쾌재를 불렀지만, 그 자리에 듀크의 더킨스 감독을 데려간다고 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 존슨 감독이 스탠포드에 있던 시절 리크루팅을 해놨던 노스캐롤라이나 주 출신 고교 유망주 포워드 마일스 플럼리(Miles Plumlee)가 존슨 감독이 떠나자 듀크로 진학을 급선회하면서 듀크에 전화위복이 되기는 했다.
맺으며…
듀크 대학교로 내 진로가 결정되면서 내가 이제 앞으로 평생 응원하게 될 농구팀도 결정이 되었다.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혹은 그 이후 몇 년 안에라도 듀크가 우승하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꼭 우승은 아니더라도 캐머론 실내 체육관의 응원석에서 소리 높여 응원가를 외치며 듀크 선수들이 코트를 누비는 모습을 바라보게 될 며칠 안 남은 그 날을 손꼽아 본다.
2008.7.5 포스팅
[이 글은 주장훈 씨의 개인 블로그인 <blog.naver.com/labonte>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바스켓코리아 / 글 사진 주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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