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스키나 스노보드는 잘 알다시피 동계 스포츠이고, 야구나 골프는 하계 스포츠라고 알려져 있고 사람들의 인식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동계 스포츠라고 해서 반드시 겨울에만 즐기는 것이 아니고 하계 스포츠라고 해서 꼭 여름에만 즐기는 시대는 지났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스키나 스노보드를 실내 스키장에서 즐길 수 있고, 실내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추운 겨울날에도 돔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농구는 어떠한가? 농구는 동계 스포츠인가 아니면 하계 스포츠인가?
우리가 잘 아는 대학 농구와 KBL과 같은 프로 농구리그를 생각해보자. 물론 포스트 시즌까지 포함하면 봄이나 혹은 여름 (특히, NBA의 경우 6월까지 최종 챔피언쉽 경기가 열린다)까지 농구 시즌이 이어지지만 일반적으로 가을 늦게 시작해서 겨울 시즌 동안 정식 시즌이 열린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농구는 실외에서 열리는 하계 스포츠라기 보다는 실내에서 경기가 진행되는 동계 스포츠로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왜 농구가 하계 올림픽 종목에 속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농구는 1891년 미국 메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 사는 캐나다 출신 미국인이었던 James Naismith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는데, 이 당시 농구는 당연히 실외 경기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외스포츠였다. 1904년과 1924년에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선보인 농구 경기는 점점 그 인기가 올라가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는데, 1932년 마침내 국제 농구 대회를 관장하는 국제 스포츠 조직인FIBA가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되었고, 이에 힘입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물론 농구 경기는 공식적으로 실외 스포츠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농구 경기는 실내 경기장에서 열렸을 뿐만 아니라 IOC역시 이를 반영하듯 1948년 하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농구 경기가 실내 경기장에서 펼쳐졌는데, 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실내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은 농구가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던1936년부터 1968년까지 금메달을 휩쓸며 승승장구하였으나, 1972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러시아 (당시Soviet Union)와의 결승전에서 많은 판정 시비 끝에 결국 러시아에 우승을 빼앗겨 올림픽대회에서의 연승에 종지부를 찍었다. 미국은 이 결승 경기에서의 경기 판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때 받은 은메달을 아직까지 찾아가지 않고 있다.
이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다시 명예 회복을 하긴 하였으나, 1980년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의 침공에 반대하며 모스크바 올림픽에 보이콧하며 출전을 하지 않았고, 이 기회를 틈타 어부지리겪으로 유고슬라비아가 우승을 하였다.
미국은 다시 1984년 러시아의 불참에 힘입어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오랫만에 만나게 된 미국 과 러시아는 이들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남자 농구 경기에 사활을 걸었다. 많은 농구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집고, 러시아가 금메달을, 유고슬라비아가 은메달을, 그리고 미국은 동메달을 따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서울 올림픽에서의 남자 농구 팀의 패배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미국 농구인들은 미국의 우승을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프로 농구 선수를 보유한 미국이 아마추어 선수들로 이루어진 올림픽에서 졌다는 것은 미국에게 있어서 매우 불쾌한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프로 선수들을 다음 올림픽에 내보내 세계 무대에서 다시 한번 미국이 농구 강국임을 입증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의 기울였다.
‘아마추어리즘의 활성화’라는취지에 따라 설립된 FIBA는 이 때까지 국제 농구대회에 프로 선수들의 출전을 철저히 금지해 온 터라 프로 선수들을 올림픽에 내 보내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서울 올림픽이 끝난 이듬해부터 미국은NBA커미셔너인 David Stern을 위시한 미국 올림픽 위원회원들은FIBA와 IOC위원들의 설득작업에 발 벗고 나서 1989년 마침내FIBA는 올림픽 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 농구 경기에 프로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
나아가 올림픽 Charter에도 “Amateurism”이란 단어를 “Olympic-eligible”으로 바꾸고 ‘비록 프로 농구 선수라고 하더라도 올림픽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올림픽의 대중화와 상업화에 매우 적극적이었던 당시 IOC위원장인 Juan Antonio Samaranch는 미국측의 이러한 제안을 흔쾌히 승락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부터 나타났는데, 누구나 잘 아는 Charles Barkley, Larry Bird, Patrick Ewing, Magic Johnson, Michael Jordan, Karl Malone, Scottie Pippen, David Robinson, John Stockton 등으로 이루어진 일명 “드림팀 I”은 대회 결승전 경기까지 작전타임을 한 차례로 부르지 않고 8전 전승으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대회를 통해 미국은 전세계 농구팬들에게 미국 농구의 진수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제외한 올림픽에서 줄곧 금메달을 미국에 안겨주었다.
바스켓코리아 / 박성배 교수(곤자가 대학교 스포츠 경영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