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제1회 세계군인 올림픽이 열린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대학 운동장에서의 사진이다.
전 세계의 군인들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창설된 이 대회는 4년 마다 전 종목이 올림픽처럼 펼쳐진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 연합국의 우의를 다지기 위해 종목별로 만든 대회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종합대회이기에 유럽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고 관심도 높았다.
이 대회준비를 위해 국방부에서 참가종목 감독들이 모두 모여 몇 차례의 회의를 했었는데,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종목별 목표를 발표하라고 하면 핸드볼이나 배구 감독들이 금메달을 이야기할 때, 농구 감독이었던 나는 페어플레이상을 타겠다고 했고 모두의 웃음거리가 됐다. 그 만큼 우리 농구는 국제대회 경쟁력이 없었다.
김병철, 김태진, 김희선, 윤제한, 박재일, 정재훈 등 전부 숏다리로 구성된 우리는 예상을 깨고 동메달을 땄다. 선수들이 너무도 잘 해냈다. 더불어 우리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던 김병철은 베스트 5에 선정되기도 해서 그 기쁨이 두 배였다. 특히나 출국 전 금메달을 자신하던 배구, 핸드볼 등이 전부 노메달에 그쳐, 우리의 동메달은 더욱 값지고 진가가 빛났다. 아마도 농구가 세계대회 나가서 딴 최초의 메달 이 아닐까?
주력종목이 예선에서 모두 탈락하자 국군 체육부대장님을 비롯한 우리군 관계자들은 농구장에만 응원을 왔다. 함께 참가했던 북한은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집단 난투극으로 몰수게임을 당하고 매일 아침 군기훈련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그 몰수경기에서 우리나라 권기복 심판이 주심을 보았다.
분단 국가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북한 선수들이나 우리 선수들이나 전부 똑같아 보였기에, 우리는 대한민국 국군임을 강조하기 위해 꼭 태극마크를 단 모자를 쓰고 선수촌을 다녔다.
그로부터 3년 뒤, 세계 군인올림픽에 참가했던 북한 농구 선수단이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그 당시 선수들과 비교해서는 딱 2명만 교체되고 모두 같은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것이다. 물론 선수들 모두 나이는 바뀌었지만 말이다.
현재 김태진, 김희선, 정재훈, 이상영, 김정인은 지도자생활을 하고 있고, 김병철은 여전히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고 있다.
빛 바랜 우리 군복의 정장을 보며 그 날의 생생한 기억이 다시 살아난다.
바스켓코리아 / 사진제공 추일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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